KB금융 '이사회의 반란'…李 '부패한 이너서클' 경고에 응답했나
최대 실적 양종희 회장, 현직 프리미엄에도 연임 불발
'부패한 이너서클·참호 구축'비판 속 지배구조 쇄신·세대교체 선택
- 전준우 기자, 한병찬 기자
(서울=뉴스1) 전준우 한병찬 기자 = 연간 영업이익 6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역대 최대 실적을 이끈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이 연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친 현직 회장이 차기 회장 최종 후보군에서 경쟁한 끝에 교체된 것은 KB금융 출범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윤종규 전 회장 시절부터 이어져 온 '현직 회장 연임 공식'도 깨지게 됐다.
탁월한 실적과 현직 프리미엄을 갖춘 양 회장의 연임이 유력하다는 금융권의 예상을 뒤엎은 결과다. KB금융 이사회의 독립성을 보여준 ‘반란’이라는 평가와 함께, 정부의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혁 요구를 의식한 선택이라는 해석도 동시에 나온다.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11일 회의를 열고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이재근 KB금융지주 부문장을 추천했다. 이 부문장은 윤종규 전 회장의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KB국민은행장을 거친 정통 ‘KB맨’이다.
금융권에서는 그동안 양 회장의 연임 가능성을 높게 점쳐왔다. 양 회장 취임 이후 KB금융이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간 데다 첫 연임 도전이어서 장기집권 논란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추위는 실적의 연속성보다 변화와 세대교체에 무게를 실었다. KB금융 관계자는 “양 회장의 성과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호실적에 안주하지 않고 더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회추위의 판단”이라고 전했다.
이번 결정은 KB금융의 역대 회장 교체 사례와 비교해도 이례적이다.
2013년 어윤대 전 회장은 연임하지 않겠다는 뜻을 스스로 밝혔고, 임영록 전 회장은 2014년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를 둘러싼 내분과 금융당국의 중징계 이후 임기 도중 이사회에서 해임됐다. 윤종규 전 회장 역시 2023년 4연임에 도전하지 않고 후보군에서 물러났다.
반면 양 회장은 임기를 정상적으로 수행한 뒤 최종 후보군에 올라 연임 경쟁을 벌였지만 회추위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단순히 ‘12년 만의 현직 회장 교체’가 아니라, 정상적인 승계 절차에서 현직 회장이 탈락한 사실상 첫 사례라는 의미가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 이번 결과를 ‘이사회의 반란’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2023년 양 회장을 최종 후보로 추천한 당시 회추위원 7명 가운데 이번 심사에도 참여한 사외이사는 3명(조화준·최재홍·김성용)이다. 나머지 4명(이명활·차은영·김선엽·서정호)은 양 회장 취임 이후 새로 회추위에 합류했다.
회추위 의결에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7명 중 적어도 5명이 이 부문장을 지지해야 한다. 새로 합류한 위원 4명이 모두 이 부문장을 선택했다고 가정하더라도, 2023년 양 회장을 뽑았던 기존 위원 중 최소 1명은 이번에 다른 판단을 내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만 사외이사가 양 회장 재임 중 선임됐다는 이유만으로 양 회장 측 인사로 분류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번 결정은 현직 회장과 일정한 거리를 둔 회추위의 독립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반대편에서는 정부와 정치권의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혁 압박이 회추위 판단에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금융지주 지배구조를 두고 특정 집단이 ‘이너서클’을 형성해 장기간 권력을 독점하는 문제를 지적해 왔다. 금융당국 역시 현직 회장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승계 절차와 폐쇄적인 후보군 관리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해 왔다.
양 회장은 첫 연임 도전이어서 이른바 ‘3연임 제한’ 논의의 직접적인 대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회추위가 최대 실적을 낸 현직 회장을 교체한 것은 정부의 지배구조 개혁 요구에 가장 분명한 답을 내놓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부 압력에 따라 특정 후보를 선택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면서도 “정부와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의 장기집권과 이너서클 문제를 강하게 비판하는 상황을 이사회가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고 보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선은 2022년 신한금융 회장 선임 과정도 떠올리게 한다. 당시 3연임이 유력했던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최종 후보군에 포함됐지만 회추위 당일 세대교체를 이유로 후보직에서 물러났고, 진옥동 당시 신한은행장이 차기 회장으로 낙점됐다. 금융당국의 금융지주 지배구조 비판이 거세던 시기여서 당시에도 ‘자율적 용퇴냐, 외풍에 따른 교체냐’를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다만 이번 KB금융 인선은 현직 회장이 스스로 물러난 조 전 회장 사례와 결이 다르다. 양 회장이 자진 사퇴하지 않고 끝까지 심사를 받은 뒤 탈락했다면 이사회가 직접 현직 교체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한층 강한 세대교체 신호로 해석된다.
1966년생인 이 부문장의 발탁은 연말 예정된 계열사 최고경영자 인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 KB금융 12개 계열사 가운데 올해 초 선임된 강진두 KB증권 대표와 곽산업 KB저축은행 대표를 제외한 상당수 CEO의 임기가 연말 끝난다.
특히 차기 회장 후보인 이 부문장보다 연배가 높은 이환주 KB국민은행장(1964년생), 성채현 KB부동산신탁 대표(1965년생), 박찬용 KB데이타시스템 대표(1965년생) 등의 거취가 주목된다.
이 외에도 김재관 KB국민카드 대표(1968년생), 정문철 KB라이프생명 대표(1968년생), 윤법렬 KB인베스트먼트 대표(1972년생), 구본욱 KB손해보험 대표(1967년생), 김영성 KB자산운용 대표(1969년생), 빈중일 KB캐피탈 대표(1968년생) 등 주요 계열사 대표들의 임기도 연말까지다.
금융권에서는 KB금융이 던진 세대교체 신호가 다른 금융그룹의 연말 인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대 실적을 낸 현직 회장조차 교체될 수 있다는 선례가 만들어지면서, 실적보다 변화와 지배구조 쇄신이 차기 금융권 CEO 인사의 주요 기준으로 급부상할 전망이다.
junoo568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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