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투서'가 먹히는 금융, '법'이 되는 관치

박희진 금융부 부국장
박희진 금융부 부국장

(서울=뉴스1) 박희진 금융부 부국장 =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인사를 둘러싼 투서가 엄청나게 들어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지주의 지배구조를 질타한 출발점은 의외로 '투서'였다. 대통령은 "똑같은 집단이 부패한 이너서클을 만들어 돌아가면서 계속 해먹는다"고 했다.

문제의식에는 공감할 부분이 있다. 주인 없는 금융지주에서 회장이 자신과 가까운 이사들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그 이사회가 '거수기' 역할을 하며 다시 회장을 연임시키는 구조는 분명 고쳐야 한다. 금융회사의 권력은 순환하고 견제받아야 한다.

그러나 먼저 물을 것이 있다. 21세기에 왜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자리만 대통령에게 투서가 쏟아질까.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CEO 선임을 앞두고 대통령실에 투서가 쇄도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최고경영자는 주주와 이사회가 결정할 일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금융은 다르다. 정권이 바뀌면 인사를 뒤집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투서는 금융지주가 더 부패했다는 증거일 수 있다. 동시에 금융만큼은 여전히 정치가 움직일 수 있다고 모두가 믿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투서가 몰리는 것부터가 관치의 유산이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으려는 해법은 은행계 금융지주 회장의 재임기간을 최대 6년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장기 집권을 막고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지금까지 한국 금융의 관치는 '사람'을 통해 작동했다. 정권이 바뀌면 "이제 그만 물러나는 것이 좋겠다"는 신호가 오갔고 금융회사들은 그 뜻을 읽었다. 앞으로는 그럴 필요조차 없다. 법이 자동으로 CEO의 시간을 정한다. 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법으로 박제되는 셈이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은 2006년부터 20년 넘게 CEO를 맡고 있다. 장기 재임이 언제나 옳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몇 년을 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어떤 절차로 견제하느냐다.

회장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사회가 다시 회장을 평가하는 구조라면 임기를 6년으로 자르든 3년으로 줄이든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손댈 곳은 CEO의 달력이 아니라 이사회의 독립성이다. 사외이사에게 소신 있게 일할 임기를 보장하고,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 현직 회장의 영향력을 차단하며, 장기 연임에는 주주의 더 엄격한 동의를 받도록 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처방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금융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가계대출은 조이라고 하고 실수요자는 살리라고 한다. 포용금융은 늘리고 첨단산업에 돈을 대며 국민성장펀드에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한다. 정책의 부담은 금융회사에 맡기면서 경영의 시간과 자율성까지 정부가 정하려 한다.

하지만 금융을 둘러싼 환경은 이미 달라졌다. 예금을 받아 대출하고 예대마진을 남기던 '천수답 금융'만으로 안정적으로 성장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자산은 국경과 업권의 경계를 허물고, 인공지능과 자산 토큰화는 지급결제와 자본시장의 질서를 다시 짜고 있다. 금융도 이제 혁신하지 못하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산업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오늘의 경쟁력을 갖춘 것은 정부의 보호만으로 성장한 결과가 아니다. 기술에서 밀리면 시장에서 퇴출된다는 위기감 속에서 실패하고 투자하며 끊임없이 혁신한 결과다.

금융도 시장에서 도전받고 돌파해야 한다. 정부의 지시를 얼마나 충실히 수행했는지가 아니라 고객과 주주, 글로벌 경쟁자를 상대로 어떤 혁신을 이뤘는지로 평가받아야 한다. 금융의 경쟁력은 규제당국이 대신 만들어줄 수 없다.

금융지주의 참호를 허문 자리에 정부의 참호를 세워서는 안 된다. 금융도 '정치의 시간'이 아닌 '시장의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 시장에서 견제받고, 시장에서 도전받고, 시장에서 혁신하는 금융. 그것이 글로벌 시장에서 유독 경쟁력이 약한 'K-금융'을 바꾸고, 결국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다.

2bric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