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은퇴 시즌3] 가족은 보험인가, 위험자산인가?

김경록 옵투스자산운용 고문

편집자주 ...인생 오후로 가는 삶의 전환기에 있는 독자 여러분의 올바른 선택에 도움이 되는 경제학적 선택의 기술을 '욜로은퇴 시즌3'으로 전합니다.

김경록 옵투스자산운용 고문

인생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실직, 질병, 사업 실패, 노화와 죽음. 그래서 인간은 오래전부터 위험을 분산하는 장치를 만들어 왔다. 보험, 연금, 복지제도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제도가 등장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안전망은 가족이었다. 가족은 경제·정서적 위험을 함께 감당하는 공동체였고, 위기에 빠진 개인을 보호하는 일종의 보험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가족은 보험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때로는 위험을 증폭시켜 한 사람의 실패가 가족 전체의 몰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족은 든든한 안전망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위험의 통로가 될 수도 있다. 천명관 소설 '고령화 가족'과 일본의 논픽션 '가족의 파산'은 이러한 가족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

천명관의 소설 '고령화 가족'을 원작으로 한 영화 '고령화 가족'의 한 장면. (흥미진진 제공, 판매 및 DB 금지)

'고령화 가족'은 가족의 보험 기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이혼을 경험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중년 자녀들이 어머니의 집으로 다시 모여든다. 이들은 서로를 못마땅해하고 사소한 일로 다투지만, 정작 누군가가 벼랑 끝에 몰리면 외면하지 못한다. 어머니의 집은 갈 곳 없는 가족을 받아주고, 밥을 함께 먹고,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이었다.

현대 사회는 개인의 독립을 강조하지만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누구나 다시 의존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실직, 이혼, 사업 실패, 질병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가족을 찾는다. 국가가 생계 급여를 지급할 수는 있어도 '함께 살아 줄 사람'까지 제공하지는 못한다. 보험회사가 의료비를 지급할 수는 있어도 병원 침대 곁을 지켜주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 가족은 여전히 시장과 국가가 대체하기 어려운 역할을 수행한다. 외로움, 간병, 돌봄, 정서적 고립은 경제적 자원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가족은 경제적 보험 기능뿐만 아니라 관계를 제공하는 공동체다.

그러나 '가족의 파산'은 정반대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 책은 일본 사회에서 실제로 발생한 수많은 사례를 통해 가족이 어떻게 함께 무너지는지를 추적한다. 고령 부모의 간병 부담, 자녀의 실업과 은둔, 장기 불황에 따른 소득 감소, 늘어나는 의료비와 생활비가 서로 얽히면서 가족 전체가 파산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문제가 어느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더라도 결국 가족 전체가 그 부담을 떠안게 된다는 점이다. 부모가 치매에 걸리면 자녀가 직장을 포기하고 간병을 맡는다. 그러다가 자신의 공적연금을 충실히 준비하지 못하고 일자리 기회도 잃어버린다. 실직한 자녀를 부모가 부양하다가 노후 자금을 소진하고 자녀가 중장년이 되어서는 부모의 연금을 나눠 쓰기도 한다. 한 사람의 위기가 가족 전체의 위기로 전염되는 것이다.

도서출판 동녘에서 2017년 번역·출간된 '가족의 파산' 표지. (도서출판 동녘 홈페이지, 판매 및 DB 금지)

보험은 위험을 분산하는 장치다. 하지만 가족은 구성원의 수가 제한돼 있고 경제적 기반도 공유하기 때문에 위험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보험회사에서는 한 명의 사고가 전체 시스템을 흔들지 못하지만, 가족에서는 한 사람의 실패가 구성원의 삶을 뒤흔들 수 있다. 이것이 가족이 보험과 다른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은 보험인 동시에 위험자산이 된다. 과거에는 부모가 자녀를 지원하고 자녀가 노후의 부모를 부양하는 순환 구조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양쪽 모두가 취약해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 결과 위험이 세대 간에 상쇄되지 않고 확산한다.

'고령화 가족'과 '가족의 파산'은 서로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가족은 어디까지 서로를 책임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고령화 가족'은 가족이 개인의 실패를 흡수하고 정서적 안정을 주는 완충장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가족의 파산'은 그 완충장치가 과도한 부담을 떠안으면 붕괴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전자는 가족의 연대 가능성을 말하고, 후자는 가족의 한계를 말한다.

가족은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보험이다. 그러나 보험도 한도를 넘어서면 기능을 잃는다. 초고령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가족의 연대를 튼튼히 하되 가족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지킬 수 있는 범위를 냉정하게 이해하고 위험이 전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모두 떠안고 파산하지 말고 국가의 복지 체계를 활용하는 등이다. 가족의 보험 기능에 너무 매몰되면 위험이 전이돼 모두 파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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