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규 전 KB회장 "부동산은 욕망의 용광로…AI시대, 암기교육 미래 없다"
[뉴스1 초대석] "격차사회 어떻게 줄일까 지혜 모아야" 조언
"부동산 세금 '주택 수' 아닌 '가격' 기준으로 전환해야"
- 대담=박희진 금융부장, 전준우 기자, 김도엽 기자
(서울=뉴스1) 대담=박희진 금융부장 전준우 김도엽 기자 = 국민은행을 '초격차 KB금융'으로 탈바꿈한 윤종규 전 회장이 최근 출간한 자서전 '담대하고 끈덕지게'는 그의 절제된 성품이 그대로 묻어난다. 책 표지 어디에도 '윤종규' 이름 석 자, 'KB금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윤 전 회장은 "위인전이나 자기 자랑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난관을 뚫고 나갈 용기와 도전 의식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부동산 공화국'에서 아무리 애써도 '격차'를 좁힐 수 없다는 상실감, 여기에 앞도 내다보기 힘든 AI의 급격한 발전으로 일자리마저 위협받는 현실이 청년들을 짓누르고 있는 불안 시대에 '담대한 도전과 끈덕진 용기'의 화두는 울림이 더하다.
그는 2시간 넘는 인터뷰 동안 미래 사회를 향한 거시적인 통찰로 "격차사회를 어떻게 줄여야 할까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경제리더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의 고질적인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는 "부동산은 모든 욕망이 투영된 욕망의 용광로"라며 "세제 하나, 공급 하나 가지고 될 일이 아니라 전 부처가 나서 중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선호도가 높은 강남지역 등은 공급을 확대하고, 주택 관련 세금을 '보유 주택 수'가 아닌 '주택 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는 "부동산은 '주거'와 '상품성'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상품 투자 측면에서 보면, '명품'과 같이 되팔려고 할 때 값이 좋은 것을 선택하게 된다"며 "명품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강남 공급을 늘려야 하고 이를 위한 근본책은 재개발 재건축 활성화다"고 짚었다.
또 "1가구 1주택은 무조건 비과세인데, 주택 가격은 10억 원과 100억 원 등 천차만별이다"며 "1가구 1주택 양도세 비과세 기준을 소득공제 제도로 개편해 양도차익이 일정 수준 이하인 경우 세 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하되, 양도차익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비과세 혜택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급변하는 사회에 힘들어하는 젊은 층을 위해서는 '교육 프레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 전 회장은 "그동안 우리가 받은 교육의 틀은 '암기'와 경쟁'이었는데 이제 '창의'와 '협업'으로 확 바뀌어야 한다"며 "로봇이 일을 하더라도 여전히 로봇을 조종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로봇이 한 일을 즐기고 향유할 줄 아는 'AI 전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윤 전 회장과의 일문일답.
-자서전 '담대하고 끈덕지게' 출간 배경이 궁금하다.
▶회장직을 그만두고 나니 정리를 해둘 필요가 있지 않느냐며 자서전을 쓰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 자서전은 통상 자기 자랑으로 흐르기 쉽고, 잘못하면 위인전이 될 수 있어서 조심스러웠는데 제3자의 시각으로 '난관이 있으면 뚫고 나갈 용기와 도전 의식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공유해보면 어떨까 해 출간하게 됐다.
-취임 당시 어수선했던 KB를 리딩금융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가장 주효했던 전략은 무엇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리딩금융' 목표를 확실히 임직원과 공유하고, 같이 해야 한다며 일체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등산을 갈 때 1등으로 가나 꼴등으로 가나 거리는 같은데 차이는 '조금 더 힘든 것'을 참으면 된다. 데드포인트를 넘고 나면 체질화되고 익숙해진다. 1등으로 가면 같은 거리이지만, 옆도 보고 앞도 보고 여유가 생긴다. '같이 가면 1등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내지는 자긍심을 불어넣어 줬다.
-인사와 보상 체계에서도 큰 변화를 줬다고 들었다.
▶A급 인재를 모시기 위해 연공서열을 깨고 시장 가격에 맞는 보상을 도입했다. 외부 인재를 영입할 때는 팀 단위로 모셔와 조직에 연착륙하게 돕고, 인사는 지원만 하되 현업 부서가 채용 주도권을 갖게 했다.
-정부가 '포용금융'을 강조하는데, 오히려 취약계층이 더 어려워질 수 있는 부작용 우려도 있다.
▶동의한다. 정책을 처음 할 때 '선의'와 '결과'가 다른 경우가 많아 정밀하게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세보증대출은 전세도 구하기 어려운 세입자들을 도와주기 위해 정부가 나섰는데, '갭투자'가 가능해지고 과다 수요가 생기며 집값이 올랐다.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보호하려는 사람들인 게 현실이다. 최고금리를 규제할 경우 금리는 떨어지겠으나, 금융사로서는 예금을 받아 대출하는 구조인데 수익이 나지 않으면 예금주가 피해를 보기 때문에 대출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사례도 나올 것이다. 이런 분들이 대부업이나 사금융으로 내몰려 '빚의 굴레'에 빠질 수 있다.
-한국 금융의 가장 구조적인 약점은 무엇인가. 혁신의 걸림돌은 무엇일까.
▶DJ 정권을 비롯해 규제개혁위원회를 꾸리지 않은 정권이 없는데, 기존 방식은 '규제 유지'를 전제로 '풀 것'을 찾아오라는 식이었다. 소위 '숙제'를 내보라고 하면 10개 중 1~2개만 반영되는 수준에 그쳐 현장에서는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의 미봉책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공무원들도 현재 어떤 규제가 있는지조차 다 파악하지 못할 정도다. '빅블러' 디지털·AI 시대에는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고 필요한 규제는 모든 시장참여자에게 동일하게 적용해 경쟁과 혁신을 촉진해야 한다. 포지티브 규제에 터 잡은 기존의 규제 방식을 바꾸어 모든 것을 허용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고, 반드시 제한해야 할 사안만 선별해 규제하고 나머지는 다 풀어주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방향 전환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은행의 공공재적 기여는 어디까지일까.
▶은행은 실물 경제와 기업,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개인 자산을 늘리는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고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하는 게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생산적 금융'이다. 생산성을 늘리기 위해 은행이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으로, 굉장히 시의적절하다. 다만 기업대출은 '생산적', 가계대출은 '비생산적'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가계대출로 쏠림이 있었고 부동산값 폭등으로 이어져 일정 부분 정리가 필요하지만, 실수요자 중심의 대출은 생산적 금융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기업대출의 경우에도 새로 크게 자랄 묘목에 대해서는 거름과 물을 더 줘야 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없다면 그런 기업을 과감히 끊어내는 구조조정도 필요하다.
-미래에셋증권이 금융지주 시총을 추월하는 등 증권업의 체질 개선이 눈에 띈다.
▶은행과 증권간의 선의의 경쟁은 좋은 일이다. 점점 '머니무브'가 이뤄지고 있고, 예금과 대출 모델에서 자산투자운용 모델로 가고 있는데 자산운용 쪽에서 은행은 손발이 묶인 게 많다. 예를 들어 은행 퇴직연금의 70% 이상이 원금보장형인데, 그 운용방법이 운용지침에 의해 규제되고 있어 은행별 특성이 거의 없으니 수익률이 차이가 나겠나. 유능한 은행원을 왜 이렇게 쓰나. 원금 보장은 알아서 하고 운용을 재주껏 책임지고 해보라고 하면 은행마다 운용 방식이 달라지고 고객 선택폭도 넓어진다. 또 국민연금이 주식을 팔기 시작하면 받아줄 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결국 퇴직연금 역할이 필요하다. 은행 책임하에 주식투자 비중을 늘려줘야 한다.
-고환율이 지속되고 있는데, 경제 위기 관점으로 봐야 할까.
▶'위기 전조다'는 것은 조금 과한 부분이 있지만, 경계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대비해야 한다. 특히 중동 사태로 유가 변동 폭이 커진 것은 상당히 조심하는 마음으로 예의주시 해야 한다. 외환 자유도가 강해질수록 유출입이 따른 일시적인 변동 폭이 커질 수 있으므로 우리 경제의 기본 체력을 강화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다. 일시적인 변동에 따른 유동성 관리는 그동안 우리 외환당국이 축적된 경험이 있으므로 잘 대응하리라 믿지만, 과거에 경험이 많지 않았고 규모가 커진 내국인들의 직·간접 대외투자와 외국인들의 국채 투자의 영향 등의 관리에도 유의해야 한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등 디지털 자산 논의가 활발하다. 전통 금융기관의 역할은 어떻게 재편될까.
▶디지털자산에 관한 법제가 정비되고 금가분리가 완화되면 자연스럽게 그동안 차분하게 준비를 해 온 금융회사들이 디지털 자산 쪽으로 진출할 것이다. 그동안 진입장벽으로 수혜를 누렸던 가상자산업계는 송금결제 등 금융서비스를 확대하려 할 것이다. 동일 행위·동일 규제 원칙하에 기존에 은행이 가졌던 신용 창출 기능과 신뢰를 디지털 자산 생태계에 접목해 활용하는 것도 디지털자산 업계의 안착에 좋은 방안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주택시장 안정화를 위한 정책 제언'이라는 제목의 비공개 보고서가 화제가 됐다. 부동산 시장의 가장 문제와 해결해야 할 방안은 무엇인가.
▶부동산 문제는 우리사회의 욕망의 용광로이자 오랫동안 누적된 복합과제로, 중장기적인 정부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 부동산은 '주거'와 '상품성' 의미가 상존하는 데 상품 투자 측면에서 '되팔려고 할 때 값이 좋은 명품'으로 여겨지는 측면이 있다. 명품 값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강남 공급을 늘려야 하고 그 근본은 재개발·재건축이다. 또 '주택 수' 기준의 세제를 '부동산 가격'을 기준으로 전환해야 한다. 주택 가격이 10억 원, 100억 원으로 천차만별인데 똑같이 비과세인 것이 맞나. 1가구 1주택 양도세 비과세 제도를 소득공제 제도로 전환하고 1가구 1주택에 대한 양도세 이연 혹은 연부연납을 허용해야 한다. 단, 임대소득 과세 강화를 필수적으로 전제해야 한다.
-격차 사회를 줄이기 위한 교육 개혁 필요성도 강조했다.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일론머스크가 앞으로는 다 로봇이 일할 것이라고 했는데, 옛날 로마인처럼 앞으로는 일 안 하고도 살기 좋은 천국이 올 수도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로봇이 일한 걸 가지고 즐기고 향유하게 되는데, 인구 감소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로봇을 조정하고 함께 일하는 것을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AI 전사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 전문가는 아니지만, 우리가 그동안 받은 교육은 암기 위주인데 이제 AI가 훨씬 더 잘한다. 또 우리 사회는 옆에 친구가 볼까 봐 안 보여주고, 경쟁하는 구도였는데 창의와 협업으로 바꿔야 한다. 스포츠를 훨씬 강화해야 하고 6·3·3 교육체계를 바꿔야 한다. 군대를 AI의 실험장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윤종규 KB금융 고문
1955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광주상고를 졸업한 뒤 외환은행에 입행했다. 은행원으로 일하며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공인회계사와 행정고시에 합격했지만 학내 시위를 주도한 전력으로 최종 면접에서 탈락하면서 관료 대신 회계사의 길을 걷게 됐다. KB금융과의 인연은 삼일회계법인 부대표 시절인 2002년 국민은행 CFO로 영입되면서 시작됐고 2014년 지주 회장에 올라 비은행 강화와 체질 개선을 주도했다. 탁월한 경영 성과로 3연임에 성공, 9년간 ‘초격차 KB’를 이끌고 2023년 용퇴했다.
junoo568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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