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자율배상" ELS 판매 재개 나서는 은행…불완전판매 차단[ELS發 변화]
은행권 자율배상 96.1% 완료…연내 재판매 나선다
판매 공간 분리·전담 직원만 판매…소비자보호 강화
- 김도엽 기자
(서울=뉴스1) 김도엽 기자 =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이후 자율배상을 시작한 은행권이 1년여 만에 96% 이상 합의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3년 말 시작된 대규모 금융사고를 2년 만에 사실상 털어낸 셈이다. 자체적으로 판매 중단에 나섰던 은행권은 판매 재개를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다.
판매 재개를 두고 금융당국은 서두르는 모습이 아니다. 과거 파생상품연계펀드(DLF) 손실 사태 당시에도 녹취·숙려제도 강화, 설명의무 등 판매절차 강화 등의 조치는 있었으나, ELS 판매 시 별도 공간을 마련토록 하는 등 초강력 규제를 마련해 ELS 사태를 계기로 '불완전판매'를 원천 차단해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다. 전례 없는 수조 원대 손실이 발생한 ELS 사태가 만든 금융권의 변화다.
2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 제출받은 '홍콩 H지수 ELS 자율배상 현황'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5대 은행(국민·신한·농협·하나·SC)의 자율배상 동의율은 평균 96.1%다.
SC제일은행이 96.9%로 가장 높았으며 △하나은행 96.5%(1만 3442건) △국민은행 96.3%(8만 1574건) △농협은행 95.8%(3만 242건) △신한은행 95.1%(2만 9089건) 등이 뒤를 이었다.
자율배상 금액은 국민은행이 6959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신한은행 1865억 원 △농협은행 2527억 원 △하나은행 1093억 원 △SC제일은행 993억 원 순이다.
평균 배상비율은 31.3%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은행별로 적합성원칙 위반 여부 등 기본 배상비율에 차이가 있고, 가감 요소 적용 여부에 따라 평균 배상 비율은 다소 상이했다. △국민은행 31.9% △신한은행 25.7% △농협은행 34.9% △하나은행 30.5% △SC제일은행 32.8% 수준이다.
ELS는 금융파생상품 중 하나로 만기까지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고정된 수익을 받을 수 있지만, 일정 수준 이하로 주가가 내려가면 손실이 발생한다. 홍콩 H지수 ELS의 경우 2023년 말 H지수가 급락하면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
은행권에서 판매된 ELS 잔액 규모는 총 15조 원대다. 지난해 말 기준 ELS 손실 확정 계좌는 17만 건이고, 원금 10조 4000억 원 중 4조 6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수조원대 손실이 발생하자 2023년 말부터 은행권은 자체적으로 ELS 판매를 잠정 중단했다. 이후 금융감독원은 20~40% 수준의 기본 배상비율을 제시하는 한편 연령, 투자경험, 불완전판매 정도 등에 따라 투자자별로 0~100%까지 배상하는 차등 배상안을 내놨다.
은행권은 금감원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자율배상(사적화해)에 집중했다. 지난해 4~8월에는 은행별로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비대면 자율조정도 할 수 있도록 채널 구축도 완료했다. 그 결과 배상 시작 1년여 만에 96%가 넘는 사적화해를 달성했다.
사실상 자율배상을 끝낸 은행권은 ELS 판매 재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은행연합회를 통해 재판매를 위한 거점점포 계획 등을 금융당국에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고,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역도 감안해 균형 있게 판매한다는 방침도 전달했다.
금융당국은 지난 2월 '홍콩 H지수 ELS 현황 및 대책'을 발표하며, 추후 판매 재개 시 소비자 보호 장치를 갖춘 '거점점포'에서만 ELS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조건을 내걸었다. 판매 재개 여부도 섣부르게 허용할 사안이 아니란 분위기다.
우선 거점점포에선 ELS 판매를 위해 별도의 출입문이나 층간 분리를 통해 물리적으로 분리된 판매 공간을 마련해야 하고, ELS 상품 관련 교육을 이수하거나 자격증이 있고, 판매 경력을 갖춘 전담 판매 직원만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원금보장형 상품으로 착각해 가입했다가 손실을 본 사례를 감안, 물리적으로 공간을 분리해 착오를 방지하는 차원이다.
투자자의 정보와 투자 성향을 분석하는 기준은 한층 강화한다.
기존에는 투자자의 답변 점수를 단순히 종합해 투자 성향을 평가했으나, 앞으로는 특정 답변에 따라 적합하지 않은 상품은 아예 투자 권유 대상에서 제외한다.
은행과 증권사가 공동으로 영업하는 복합점포도 동일한 요건이 적용된다. 복합점포 내에서 은행 직원이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을 판매하는 행위는 여·수신 창구와 분리된 투자 창구에서만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금융당국은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금융사에서 고난도 투자상품을 판매할 때, 투자자 성향 분석 시 손실감수능력 관련 6개 필수 확인 정보(거래 목적, 재산 상황, 투자성 상품 취득·처분 경험, 상품이해도, 위험에 대한 태도, 연령)를 모두 고려하도록 강화하기로 했다.
또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의 중요 사항이 명확히 설명될 수 있도록 핵심(요약) 설명서의 최상단에 △고난도 금융투자상품과 적합하지 않은 소비자 유형 △손실 가능성 등 위험, 손실 발생 사례 등을 먼저 기재·설명하도록 했다.
ELS와 같은 고위험상품이 가입될 수 있도록 특정 답변을 유도하거나 대면 투자 권유 후 비대면 계약을 권유 혹은 금융회사가 대리 가입하는 경우도 전면 금지한다. 금융사 성과보상체계(KPI)는 소비자 이익 관점에서 설계됐는지, KPI 설계 시 금융소비자보호 총괄기관과 사전 합의도 의무화한다.
현재 금융투자협회가 이런 내용을 담은 '표준투자권유준칙'을 개정 중으로, 은행권은 표준투자권유준칙 개정 후 각 은행 내규에 반영할 시 ELS 판매 재개를 할 수 있게 된다.
이 작업이 이르면 11월 중 마무리될 전망이라, ELS 판매 재개 시점도 이르면 11월 중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앞서 ELS 판매 재개 점포를 전체 5~10%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으나, 소비자보호 요건을 충족하면 이를 확대해 준다는 방침이다.
지난 2월 김소영 전 금융위원회 전 부위원장은 "5대 시중은행의 점포는 3900개 안팎인데 이 가운데 5~10%가 거점점포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금융당국의 지침과 달리 전체 점포 중 30%에서 판매를 재개하겠다고 의견을 전달한 은행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당국은 5~10%에 국한하지 않고 은행 자율에 맡긴다는 방침이다. 소비자보호 요건맞 갖추고 금감원의 점검을 통과한다면, 판매 재개를 허용해 주겠다는 것이다. 지난 2월 대책 발표 당시에도 "은행 자율로 상기 요건을 갖춘 거점점포를 배치해 운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찬진 신임 금융감독원장도 취임사에 이어 은행장과의 간담회에서도 '소비자보호'가 최우선 원칙임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더 이상 ELS 불완전판매와 같은 대규모 소비자 권익 침해 사례는 없어야 한다"며 "금고의 자물쇠가 깨지면 국민이 해당 금고에 돈을 맡기지 않을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며 혁신적 내부통제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doyeo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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