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통령의 5천피 vs 멸종위기K-증시

박희진 금융증권부 부장

(서울=뉴스1) 박희진 금융증권부 부장 = 새 정부 출범 이후, 사람들이 모였다하면 '주식' 이야기다. 미국 주식으로 돈 벌었다는 소리가 일상인 요즘 '국장'(國場)에 대한 관심은 실로 오랜만의 풍경이었다.

시작부터 화끈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첫날 코스피지수는 2.66% 급등했다. 취임 첫날 증시가 오른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일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면 주식 시장은 확실히 좋아진다. 더 좋아지기 전에 빨리 참여하자. 확실히 밀어드리겠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대선 캠프 라이브 방송에서 밝힌 말이 다시 회자됐다. 선거 운동 기간 "코스피5000 시대를 열겠다"던 공언(公言)이 이번에는 공언(空言) 아닌 건가. '이재명 랠리' 진짜인가.

정치감각이 남다른 이 대통령은 취임 일주일 만에 'K-증시'의 심장부 여의도 한국거래소로 향했다. 대통령이 경제 관련 첫 행보로 거래소를 찾은 것은 이례적인 행보였다.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냉소가 만연한 상황에서 '심폐소생술'급의 정공법이었다.

"주식 사서 중간 배당받아 생활비하고, 부동산에 버금가는 대체 수단으로 만들겠다."

시장은 환호했다. '3천피'를 돌파하더니 전고점도 넘볼 정도로 치솟았다. '전세계 수익률 꼴찌' 오명이 무색하게 올해 1~7월 코스피는 35.26% 급등하며 1위를 기록했다. '투자자의 구원'처럼 여겨지던 미국 S&P 500지수도 7.78% 오르는 데 그쳤다.

코스피가 전고점을 넘어 '가보지 않은 길'을 밟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질 무렵 '검은 금요일'이 덮쳤다. 지난 8월 1일 코스피는 3.88% 급락했다. 올해 상승분의 10분의 1이 하루 만에 날아갔다.

미국발(發) 관세에 이은 과세 폭탄 여파다.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을 50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강화하는 세제 개편안이 투자자들의 역린을 건드렸다. 해마다 연말이면 '큰손'들의 양도세 회피 목적의 매물 폭탄이 쏟아졌다. 개미들이 외국인들의 공매도 폭탄만큼이나 치를 떤 게 바로 연말 대주주 매물폭탄이다. 양도세는 대주주가 연말에 팔면 그만인 세금이다. 본연의 세수확대 효과는 제한적이고 수급 교란만 일으킨다.

등 돌린 투심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 바로 위기의 기업이다. 상법개정이라는 시대적 흐름으로 모자라 노란봉투법, 법인세 인상 등 기업에 드리워진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결정타는 미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무역협정(FTA) 질서를 무력화하고 관세전쟁을 진두지휘했다. 당초 25% 상호관세율에서 15%로 낮추긴 했지만 무관세였던 기존에 비하면 기업의 관세 부담은 막대하다.

정작 한미 관세 협상에 결정적 구원투수 역할을 한 것은 'K-기업'이다. 긴 구조조정의 터널을 지나야했던 조선업이 환골탈태해 '협상의 달인' 트럼프를 사로잡았다는 점만 봐도 한국 기업의 뼈아픈 혁신이 녹아난다.

하지만 정부의 기업을 대하는 자세는 냉소적이다 못해 적대적이다. 전세계가 '블록경제' 체제를 구축하고 자국산업 살리기에 두팔을 걷어붙이는 것과 대조된다.

최근 가수 '악동뮤지션' 이찬혁의 두번째 정규 앨범 수록곡 '멸종위기사랑'이 인기다. "예전에는(Back in the day) 한 사람당 하나의 사랑이 있었대. 불이 만들어지는 사랑이 있었대. 내일이면 인류가 잃어버릴 멸종위기사랑."

극단적 자본주의에 치여 결혼도, 출산도 기피하는 세태를 반영하듯 사랑의 위기를 말한다. 의대·로스쿨 만능 시대에 혁신도 도전 정신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기업에 유독 적대적인 한국에서 앞으로 누가 위험을 안고, 창업 전선에 뛰어들까.

'부동산 공화국'에 종지부를 찍고 '주식으로 돈 버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건 대통령이다. 진짜 증시는 기업의 성장으로 움직여야 한다.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 ‘멸종위기K-증시’를 살릴 마지막 기회다.

2bric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