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래가 뭐길래…5년간 9500여회 돌려막기

위탁운용 기금 받으려 고수익 제시→수익률 맞추려 자전거래
단기계좌에 장기상품 편입…만기 때 다른 계좌에 편법 매각

(서울=뉴스1) 신수영 신건웅 기자 = "연기금이세요? 금리 좀 더 얹어 드립니다. 기금운용은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연기금은 국내 증권시장의 큰손이다. 한 번 떴다 하면 수조원의 자금이 증권사, 운용사 등에 배분된다. 현재 50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만 해도 위탁 비중이 36%다. 이런 연기금 유치를 위해 '자전거래'에 열중했던 증권사들이 당국의 무더기 제재를 받았다. 이미 검찰이 관련 임직원들을 기소했다.

◇우정사업부 돈 몰리자…반년 만기에 3% 수익률 제시

2009년 2월, 현대증권 고객자산운용부는 우정사업본부에서 100억원을 유치하면서 만기 6개월에 3%의 수익률을 제시했다. 당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보다 안전한' 것으로 인식된 우정사업본부에 사람들의 돈이 몰리던 때다. 증시 침체로 브로커리지 영업이 어려워진 증권사들에 위탁운용수수료는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약속한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현대증권 랩 운용부, 신탁부 소속 임직원들은 자전거래를 이용했다. 만기 6개월의 랩(WRAP·개인자산종합관리) 계좌에 1~3년 만기의 CP(기업어음)과 ABCP(자산담보부기업어음) 등을 담았다. 만기가 길면 금리도 높다. 이 계좌의 수익률은 3.05%였다.

◇단기 계좌에 장기 상품 담은 뒤 돌려막기

만기가 다가오면 증권사는 계좌에 있던 CP 등을 시장에 매각하고, 이렇게 번 대금을 투자자에 환급해야 한다. 하지만 현대증권은 이들을 자사의 다른 랩 계좌에 매각했다. 새롭게 투자자를 유치한 계좌나 기존 신탁계좌 등에 그대로 자산을 옮겨오고 대금은 옛 투자자에 지급(돌려막기)했다. 이른바 '자전거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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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증권회사 등이 내부 계좌를 이용해 특정 펀드나 랩, 신탁계약 등을 주고받는 자전거래는 자본시장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주가조작 등을 통해 특정 투자자에게 수익을 몰아주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수익을 위해 상품 만기보다 긴 채권 등을 편입하는데, 이런 채권은 유동성이 적어 매각이 쉽지 않다"며 "이를 자사 운용펀드 등에 매각하고 매각대금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증권은 2009년 2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총 9500여차례에 걸쳐 이런 자전거래를 했다. 규모만 59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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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증권은 2011년 2월 금감원 감사가 시작되자 다른 증권사를 끼우는 방식으로 자전거래 방식을 변형했다. 처음에는 다른 증권사 계좌에 CP 등을 매도했다가 같은 날 찾아왔다면, 2013년 7월부터는 타 증권사 계좌에 며칠간 두었다가 매수하는 방식을 썼다.

◇자산운용사도 한때 무더기 징계

이번에 당국의 제재를 받은 교보, 대우, 미래에셋, 한화증권 등도 모두 연기금 유치를 위해 고수익을 제시한 뒤 자전거래를 했다. 교보증권의 경우 자전거래 규모가 10조원 안팎이라 타 증권사보다 중한 징계를 받았다.

이에 앞서 2013년에는 삼성자산운용, 동양자산운용 등 자산운용사들이 채권 등을 자전거래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자전거래 검사·감독을 강화하고 위탁운용사가 내부통제를 강화하도록 했다. 기재부도 연기금 등이 위탁기관에 수익률 보장 요구를 하지 못하게 했다.

iml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