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조각투자' 머문 韓…금융위, 뒤늦게 '모든 증권'으로 판 키운다

나스닥은 주식 토큰화·코인거래소는 파생상품…美 금융업 경계 '흐릿'
韓, 조각투자 넘어 주식·채권·펀드까지…풀링 허용·온체인 결제 추진

비트코인 동전 2021.2.24 ⓒ 뉴스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황지현 기자 = 미국 금융시장에서 증권과 가상자산, 파생상품 간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나스닥 등 전통 거래소가 주식 토큰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주식 토큰과 무기한선물 등 전통 금융상품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예측시장까지 파생상품 시장에 뛰어들면서 업권을 넘어 신규 시장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반면 한국은 금융당국이 2023년 2월 토큰증권(STO) 제도화 방안을 처음 내놓은 이후 3년여 동안 부동산·미술품·저작권 등을 쪼개 투자하는 '조각투자'를 중심으로 제도 논의를 이어왔다. 그사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주식·채권 등 전통 증권의 토큰화가 빠르게 확산하자 금융당국도 뒤늦게 주식·채권·펀드 등 기존 증권 전반으로 토큰화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판을 다시 짰다.

4일 금융위원회는 서울 여의도 한국예탁결제원 서울사무소에서 '민·관 합동 토큰증권 협의체' 3차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토큰증권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금융위는 신종·비정형증권을 활용한 조각투자뿐 아니라 주식·채권·펀드 등 기존 정형증권까지 '모든 증권'의 토큰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이 토큰증권 제도화에 착수한 지 3년여 만에 토큰증권을 조각투자의 수단이 아닌 기존 자본시장 전반의 디지털 인프라로 확대하는 방향을 공식화한 것이다.

내년 2월 토큰증권 제도 시행에 맞춰 1단계에서는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 채권·펀드를 우선 토큰화한다. 주식은 비상장주식을 신탁 방식으로 토큰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후 2단계에서는 공모 증권 등 기술적으로 가능한 범위까지 인프라를 확대하고, 3단계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등을 결제수단으로 연계해 온체인 결제를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상장주식 토큰화 가능성도 열어뒀다. 금융위는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의 파일럿 프로그램을 참고해 한국거래소를 중심으로 상장주식 토큰화 모델 검증과 시범사업을 병행할 계획이다.

나스닥은 토큰화·코인거래소는 주식…금융업 경계 허문 美

미국에서는 이미 전통 금융회사와 가상자산 사업자 간 사업 영역이 빠르게 겹치고 있다.

나스닥은 지난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토큰화 증권 거래를 위한 규정 변경을 승인받았다. 러셀1000 지수 편입 종목과 S&P500·나스닥100을 추종하는 주요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대상으로 단계적인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나스닥의 토큰화는 기존 주식 거래 체계를 유지하면서 결제 이후 단계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투자자가 주문 입력 단계에서 토큰화를 선택하면 거래 체결 후 해당 지시가 예탁결제기관으로 전달돼 토큰 형태로 증권을 받는다. 토큰화 주식과 일반 주식은 동일한 주문 유형과 시세, 시장감시 체계 등을 적용받는다.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반대로 전통 증권시장으로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코인베이스는 올해 2월 미국 고객을 대상으로 주식·ETF 거래 서비스를 출시한 데 이어 지난달 자체 레이어2 블록체인 베이스(Base)에서 미국 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토큰화 미국 주식을 선보였다. 애플·엔비디아·메타·알파벳 등 미국 주요 기업 주식을 기반으로 한 상품을 온체인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크라켄은 토큰화 주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파생상품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크라켄은 지난 2월 애플·엔비디아·로빈후드 등 미국 주요 종목과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무기한선물을 출시했다. 비미국 거주자는 관련 상품을 24시간 거래할 수 있으며 최대 20배의 레버리지를 이용할 수 있다. 바이낸스와 비트멕스 등도 주식과 주요 지수를 추종하는 무기한선물을 제공하고 있다.

토큰화 주식 시장 자체도 확대되는 추세다. 지난달 토큰화 주식 보유 지갑 수는 한 달 동안 92만 8000개 이상 증가해 전월 대비 약 120% 늘었다.

예측시장 사업자들도 전통자산 파생상품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폴리마켓은 최근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를 비롯해 주식, 금·은, 가상자산 등을 기초로 한 무기한선물 거래를 시작했다. 미국 외 지역에서 해당 상품을 24시간 거래할 수 있으며 최대 20배 레버리지를 제공한다.

경쟁사인 칼시도 전통 파생상품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WTI를 기반으로 한 무기한선물 출시를 위해 미국 당국의 승인을 추진 중이다.

전통 증권거래소가 증권 토큰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가상자산 거래소는 주식과 파생상품으로, 예측시장은 무기한선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기존 금융업권 간 경계가 빠르게 희미해지고 있는 셈이다.

3년간 '조각투자' 머문 韓…결국 '모든 증권'으로 판 키운다

금융위 역시 이번 정책방향에서 초기 토큰증권 인프라 논의가 조각투자증권을 중심으로 진행됐다고 인정했다.

문제는 제도화에 3년여가 걸리는 사이 글로벌 시장의 토큰화 경쟁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는 점이다. 해외에서는 기존 증권을 블록체인으로 옮기는 것을 넘어 주식·ETF의 24시간 거래와 온체인 결제, 가상자산 플랫폼의 전통 금융상품 진출까지 금융산업 구조 자체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결국 금융당국도 토큰증권의 정책 목표를 조각투자 활성화에서 기존 자본시장 전반의 토큰화로 크게 확장했다. 주식·채권·펀드 등 정형증권을 토큰화하고 향후 상장주식까지 관련 모델을 검증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조각투자에 적용해온 규제도 함께 완화한다. 부동산·저작권·특허권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비금전신탁 수익증권은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여러 기초자산을 하나로 묶는 집합화(풀링)가 허용된다. 장래매출채권과 같은 불확실사건 연계 기초자산도 안정적인 법률관계와 신용보완 등 투자자 보호 요건을 갖추면 조각투자가 가능해진다.

토큰증권만을 위한 별도 금융투자업 인가체계도 만들지 않는다. 기존 금융투자업자는 이미 인가받은 업무 범위 안에서 별도 추가 인가 없이 토큰증권을 취급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다자간 거래시장을 운영하는 장외거래소는 기존 장외거래소 인가가 필요하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토큰증권을 조각투자에만 머물게 하지 않겠다"며 "전략적·단계적 접근을 통해 주식, 채권, 펀드 등 기존 금융상품도 토큰 방식으로 발행하고 거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이번 결정은 3년여간 조각투자에 머물렀던 국내 토큰증권 정책의 무게중심을 기존 자본시장 전체로 옮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전통 거래소와 가상자산 플랫폼의 경계가 빠르게 사라지자 국내에서도 토큰증권을 일부 대체자산을 쪼개 거래하는 수단이 아니라 증권의 발행·유통·결제 방식을 바꾸는 인프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글로벌 시장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금융당국은 우선 안정성을 고려해 제한된 범위에서 토큰화를 시작한 뒤 단계적으로 공모증권과 온체인 결제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실제 상장주식 토큰화 시점과 퍼블릭 블록체인과의 연계, 해외 투자자의 접근성 등 글로벌 확장성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가 향후 국내 토큰증권 시장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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