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냐 유예냐 법안만 쌓였다…가상자산 과세 4개월 앞 '논의 실종'
야당서 폐지·유예안 잇따랐지만…논의 테이블 없이 정부만 과세 준비
2단계법 없는 과세는 '정책 엇박자'…취득가액 등 과세 기준도 논란
- 최재헌 기자
(서울=뉴스1) 최재헌 기자 = 내년 1월 가상자산 과세 시행이 4개월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국회 논의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과세 폐지와 추가 유예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지만 여당 전당대회 등 주요 정치 현안에 밀려 제대로 된 논의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다.
반면 정부는 예정대로 내년부터 과세한다는 방침 아래 관련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다. 가상자산의 발행·유통과 사업자 규율 등을 담을 2단계법(디지털자산기본법)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세가 먼저 시행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제도의 선후가 뒤바뀌었다는 업계의 지적도 나온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회에선 가상자산 과세를 폐지하거나 시행 시점을 추가로 늦추는 내용의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3월 가상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를 폐지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가 사라진 상황에서 가상자산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고, 이중과세 우려도 있다는 주장이다.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10일 가상자산 과세 시행일을 내년 1월에서 오는 2030년으로 3년 연기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투자자 보호 제도와 과세 인프라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아 제도 시행을 늦춰야 한다는 취지다.
업계에선 두 법안이 본격적인 논의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이 이뤄진 지 얼마 안 돼 소관 상임위원회인 재정경제기획위원회의 현안이 산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회 사안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을 제외하고 현재 재경위에서 관련 논의를 강하게 추진할 의원은 많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상황에서 야당 의원들의 개별 법안 발의만 이어지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여야가 과세 시행 여부를 두고 충돌하거나 절충안을 모색할 '논의 테이블'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법안은 통상 연말에 논의가 집중돼 다른 현안보다 뒷순위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부터 과세를 시행한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예정대로 내년부터 과세가 되는 것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과세 시행을 위한 준비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한 블록체인 기업 관계자는 "정부와 과세 인프라를 마련하기 위해 논의를 하고 있다"며 "당국도 거래소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는 등 과세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가상자산 산업의 발행·유통·사업자 규율을 담은 디지털자산기본법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세부터 시행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과 사업자별 규율 체계가 충분히 정립되지 않았는데 과세만 앞서간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은 가상자산 산업의 기본적인 기준과 개념을 정하는 법안이지만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며 "기본적인 규율도 없는 상황에서 (정치권·정부가) 개별 이슈에 대응하다 보니 정작 큰 쟁점을 놓치고 있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과세 체계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거래분의 취득가액을 어떻게 산정할지, 해외 거래소로 이전했다가 국내로 돌아온 가상자산에는 어떤 기준으로 세금을 매길지 불분명한 부분이 있다"며 "기본 공제 한도와 손익 통산 범위 등 투자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인 과세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상자산 과세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재경위에 회부된 만큼, 과세 시행 전 국회가 관련 쟁점을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부 방침대로 과세를 시행하더라도 형평성과 과세 인프라, 기본법과의 제도적 정합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행 소득세법은 가상자산을 양도하거나 대여해 얻은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한다. 연간 순이익에서 250만 원을 공제하고, 초과분에 소득세 20%와 지방소득세 2%를 합한 22%의 세율을 적용한다. 가상자산 과세는 당초 2022년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여러 차례 유예된 끝에 2027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chsn1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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