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직접 사고 ETF 담고…해외는 기업이 '큰손'[법인투자 표류]①

'투기 자산'에서 재무 전략으로…상장사 비트코인 보유량 1년 새 67% 증가
상장사·은행·월가까지 가상자산 시장 침투…기관이 코인 판 흔든다

마이클 세일러 마이크로스트래티지 CEO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최재헌 기자 = 가상자산을 사들이는 이른바 디지털자산 재무전략(DAT) 기업이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닌 시대가 열렸다. 한때 일부 기업의 과감한 베팅처럼 여겨졌던 가상자산 투자는 이제 기업 재무 전략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 이후 금융사 자금까지 거센 물살처럼 밀려들며 가상자산 시장의 판 자체가 바뀌고 있다. 거래소와 프로젝트 중심이던 시장은 이제 상장사와 월가, 글로벌 은행이 동시에 뛰어드는 거대한 제도권 금융 무대로 빠르게 확장하는 분위기다.

26일 비트코인트레저리스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전 세계 상장 기업들의 비트코인 보유량은 약 124만 2000개다. 현재 시세 기준 약 956억 달러 규모로, 1년 전인 지난해 5월(74만 2919개)과 비교하면 67% 급증했다. 비트코인을 보유한 상장사 수도 196개까지 늘어나며 200개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기업이 비트코인을 사들이는 행위는 '위험한 투기'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미국을 중심으로 상장사들이 가상자산을 재무 자산으로 편입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DAT 기업'이라는 새로운 산업군까지 등장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스트래티지(옛 마이크로스트래티지)다. 마이클 세일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020년부터 사실상 회사의 정체성을 비트코인 중심 기업으로 바꾸며 공격적인 매수 전략을 이어왔다.

당시만 해도 시장에선 "상장사가 회사 자산으로 비트코인을 매입한다"는 점을 두고 위험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변동성이 지나치게 크고 규제 불확실성도 높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스트래티지는 DAT 열풍의 상징이 됐다.

현재 스트래티지가 보유한 비트코인은 84만 3738개다. 현재 시세 기준 약 649억 달러 규모다. 스트래티지 주가는 지난해 비트코인 상승세와 맞물려 급등했고, 이후 해외에선 스트래티지 모델을 따라 하는 기업들이 잇따라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이더리움 DAT 기업들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스테이블코인 법안 '지니어스법' 통과 이후 이더리움이 스테이블코인 인프라의 핵심 네트워크로 부각되면서다.

현재 상장 기업들이 보유한 이더리움은 약 603만 개 수준이다. 가장 많은 물량을 보유한 곳은 채굴기업 비트마인으로 약 432만 개의 이더리움을 보유 중이다. 게임사 샤프링크는 약 86만 개, 더이더머신은 약 49만 개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이더리움 보유량은 이더리움 재단 보유량보다 많다. 단순 투자 자산을 넘어 향후 스테이블코인·토큰증권(ST)·온체인 금융 생태계 성장에 베팅하는 전략적 움직임이라는 분석이다.

기관 자금도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돈나무 언니'로 불리는 캐시 우드의 아크인베스트는 지난해 비트마인 주식을 ETF 상품을 통해 매수하기도 했다. 단순히 가상자산 가격 상승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단위의 가상자산 재무 전략 자체를 새로운 투자 테마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의 출발점은 지난 2024년 1월 미국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이다. 비트코인이 제도권 금융상품으로 편입되며 기관 자금 유입 속도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평가다.

실제로 미국 비트코인 현물 ETF 시장은 출시 약 2년 만에 순유입 규모 6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 ETF보다 빠른 성장 속도다.

캐서린 첸 바이낸스 기관 부문 총괄은 "현물 ETF 도입 이후 기관 자금 유입 속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며 "기관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공식적인 자산군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변화는 월가에서도 감지된다. 기존 자산운용사 중심이던 현물 ETF 시장에 글로벌 대형 은행들까지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글로벌 대형 은행 최초로 비트코인 현물 ETF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출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순유출 없이 자금 유입이 이어지고 있다. 골드만삭스 역시 관련 시장 확대에 나서며 ETF 시장 경쟁에 합류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단순한 상품 출시 이상의 변화로 보고 있다. 과거 가상자산 시장이 거래소와 개인 투자자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상장사·기관투자가·글로벌 은행이 동시에 참여하는 거대한 제도권 금융시장으로 판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아직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 시장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은 상태다. 해외는 이미 기업들이 수백억달러 규모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재무 자산으로 편입하며 새로운 금융 전략 경쟁에 돌입했지만, 국내는 여전히 가이드라인 부재로 비영리법인과 가상자산 거래소 등 일부 법인의 가상자산 매도만 이뤄지는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초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 로드맵'을 내놓으며 하반기부터 상장사 및 전문투자자 등록법인 약 3500곳을 대상으로 가상자산 매매를 시범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후속 조치가 여전히 답보 상태다.

chsn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