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부안은 하세월…대형 로펌 마케팅 수단 된 '디지털자산법'
- 박현영 블록체인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현영 블록체인전문기자 = 디지털자산 기본법을 둘러싼 국회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유사한 내용의 법안들이 줄줄이 발의되면서 법안 수만 놓고 보면 디지털자산이 이미 주요 정책 의제로 격상된 듯하다.
특히 올해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크게 부상하면서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도 치열하다. 빠르게 법안을 내놓기 위해 디지털자산 기본법 대신 스테이블코인 단독 법안을 발의한 사례도 다수 있었다.
문제는 이 같은 입법 경쟁으로 인해 각 의원실마다 로펌을 끼고 법안을 발의하는 구조가 굳어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회에서 열리는 디지털자산 법안 설명회에서 법안을 대표 발의한 의원실이 아니라, 초안을 작성한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발표를 맡아 법안 내용을 설명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의원실 입장에선 우선 발의부터 해서 존재감을 드러내야하는 만큼, '전문가 집단'인 로펌에 입법 초안을 의존하게 된다. 디지털자산이 워낙 굵직한 정책 이슈라 로펌 입장에서도 입법 자문 영역에서 좋은 포트폴리오를 쌓을 수 있다.
그렇게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법한 국내 대형 로펌들이 의원실마다 붙었는데도, 결과물은 특별하지 않다. 문구만 조금씩 다른 유사 초안들이 쌓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구조는 입법의 속도를 높이기보다 병합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만 키운다. 내용은 대동소이한데도 상임위와 소위 단계에서 조정해야 할 쟁점이 늘어나고, 발의자 간 주도권 다툼도 있을 수밖에 없다. 로펌별 이해관계가 반영된 조항들을 조율하다 보면 제도화 일정이 자연스럽게 뒤로 밀릴 수 있다.
또 현실적으로는 금융위원회가 준비 중인 이른바 '정부 안'이 향후 병합 과정에서 기준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이미 난립한 법안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 자체가 '입법 병목 현상'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지어 정부 안은 계속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는 이미 조급하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은 어느 정도 법제화를 끝냈는데, 국내 업계만 하염없이 '대기 모드'에 들어가 있다.
물론 법안이 여러 개 발의된다는 사실 자체는 디지털자산의 정치적 중요도가 높아졌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준이 될 정부 안으로 결국 수렴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로펌 마케팅용 발의가 반복되는 현재의 풍경은 입법 의지를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제도화의 병목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한다. 수년째 제자리인 입법 현실에 지친 업계는 완벽한 법보다 '일단 작동하는 법'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다.
hyun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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