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서클 사장의 국빈급 방한, 'K-스테이블코인 거품론'의 민낯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이 뉴욕증시 상장에 성공했을 당시 회사 간부들이 개장벨을 치며 환호하는 모습.ⓒ 로이터=뉴스1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이 뉴욕증시 상장에 성공했을 당시 회사 간부들이 개장벨을 치며 환호하는 모습.ⓒ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박현영 블록체인전문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4대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 임원진….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사 서클의 히스 타버트 총괄사장이 지난 21일 방한한 후 이틀간 만난 인사들이다. 동선만 놓고 보면 국빈급 환대였다.

타버트 사장은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재무부 차관보를 지낸 관료 출신으로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TFC) 위원장을 거쳐 2023년 서클에 합류했다. 서클의 2인자다.

정작 1인자이자 창립자인 제레미 알레어 대표가 여러 차례 방한했을 때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2년 전에는 스테이블코인 규제 필요성을 강조하고 돌아갔지만 그 메시지는 화제조차 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 이번 타버트 사장에 대한 한국의 관심에 "과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2년 새 상황이 180도 변한 건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단어가 지닌 정치·경제적 상징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친가상자산' 행보를 전면에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이 결정적 이유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조기 대선 이후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국정과제에 포함되자 '스테이블코인'은 만능 키워드로 떠올랐다. 이 단어만 들어가면 주가가 뛰었고 기업 간 MOU가 성사됐다.

문제는 기대가 부풀어 오른 만큼 정작 실질적인 성과는 없다는 점이다. 이번 방한은 새로운 투자나 사업 발표로 이어지지 않았다.

우리 쪽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가상자산 분야에서 외국인의 국내 진출도,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도 불가능해 '갈라파고스'에 비유될 정도로 규제가 엄격한 곳이다. 가상자산거래소 사업 이외에는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척박한 환경이다. 기존에 없던 가상자산 분야에서 혁신에 나선 창업자들은 사업을 포기하거나 모두 해외로 떠나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통 금융권의 가상자산에 대한 이해도 낮다. 현 규제틀로는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 분야에 대해서도 은행권은 해외 송금이나 결제 분야에서 가능성을 검토하는 수준이다. 서클과 손잡아도 원화-USDC 환전 채널을 하나 더 만드는 정도라는 분석이 많다.

관련 법도 없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법이 있어야 한다. 국회에 관련 법안이 발의만 돼 있다. 설령 통과돼도 시행은 내년 하반기, 현실적으로는 2027년 이후다. 전 세계적으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확산되는 동안 한국은 늦게 출발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 방한은 '만남' 이상의 의미를 만들지 못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전 세계를 장악해가고 있으나 정작 한국 시장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경쟁에서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제한적이었다. 규제도, 구체적 사업 계획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글로벌 플레이어의 행보만 쫓은 셈이다.

최근 '챗지피티 아버지' 샘 올트먼은 "투자자들이 AI에 과도하게 흥분했냐고 묻는다면 내 의견은 그렇다"며 'AI 거품론'에 일조했다. 한국 시장의 스테이블코인 열풍도 다르지 않다.

기대만으로 커진 스테이블코인 거품이 빠르게 부풀고 있다. 정작 필요한 것은 환대나 기대가 아니라 결단과 실행이다. 한국이 스테이블코인 거품의 무대가 될지, 실질적 성과를 만드는 시장이 될지는 제도 마련의 속도와 금융권의 준비에 달려 있다.

hyun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