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ESG 강조하면서 여전히 찬밥…금융지주 이사회 '다양성' 실종

IT·소비자보호·ESG 전문가 소수…금융·경제·법률 관련 사외이사 편중
주요국 금융당국 "합리적 의사 결정 위해 '다양성' 필요"…금감원, 이사회 구성 적정성 점검 계획

서울 시내 한 건물에 설치된 은행의 현금인출기(ATM)에서 시민들이 입출금을 하는 모습. 2022.12.27/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서울=뉴스1) 서상혁 한유주 기자 = '거수기 이사회'를 통한 최고경영자의 '셀프 연임' 등 금융지주 이사회의 독립성 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이사회 구성이 법이나 금융 등 특정 부문에 편중돼 다양성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수년 전부터 디지털 전환(DT),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금융소비자보호 등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관련 전문성을 갖춘 사외이사는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전통적인 금융에서 비금융 영역으로도 사업을 확대하려는 '혁신의 시기'에 이사회의 면면을 다양하게 구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뉴스1>이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2022년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5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41명 중 정보기술(IT) 관련 주요 경력을 가진 사외이사는 4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지주 2곳은 IT 경력을 갖춘 사외이사가 아예 없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나 리스크 관리 경력을 갖춘 사외이사도 2명뿐이었다. 금융소비자보호 관련 경력이 있는 사외이사는 없었다.

반면, 금융·경제 관련 경력을 가진 사외이사는 19명으로 가장 많았다. 법률 관련 이력을 갖춘 사외이사는 8명이었다.

금융지주의 핵심 계열사인 은행도 사정은 비슷했다.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 사외이사 21명 중 IT, 금융소비자보호 관련 주요 경력을 갖춘 사외이사는 각 1명으로 집계됐다. 리스크관리 역시 1명이었고, ESG 관련은 전문가는 없었다. 금융지주와 마찬가지로 금융·경제 분야가 9명으로 가장 많았다.

여성 사외이사 비중 역시 선진국과 비교하면 낮은 편이다. 5대 금융지주의 사외이사 중 여성은 19.5%를 차지했다. 4대 은행은 14.2%였다. 한국금융학회 등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여성 사외이사 비율이 20.3%, 벨기에는 27.6%, 프랑스와 노르웨이는 42% 수준이다.

◇ "다양성 갖춰져야 합리적 의사결정 가능"…금융회사지배구조법에도 다양성 규정

그간 금융권은 금융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디지털 전환(DT)·ESG·소비자보호 등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하지만 금융지주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이사회 구성에서는 존재감이 낮은 모습이다.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있어 이사회의 다양성은 독립성만큼이나 중요한 가치로 꼽힌다. 금융지주의 경우 은행뿐 아니라 증권사 등 여러 비은행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만큼, 여러 분야를 볼 수 있는 '포괄적인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외이사가 특정 직군에 편중될 경우, 잘못된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등 각종 부작용으로부터 경영진을 견제하라는 게 사외이사 제도의 취지인데, 최근엔 CEO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나 전문성이 없는 이들을 영입하면서 좀처럼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라며 "금융사고를 수습하고 재발 방지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도 정확한 프로세스를 이해하지 못하면 적합하지 않은 대책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뉴욕 증권거래소의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은 "다양한 연령, 경험, 배경을 가진 이사들로 이뤄진 이사회는 열린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고 무비판적인 집단사고에 의한 의사결정을 방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바젤은행감독위원회도 '지배구조 지침'을 통해 "이사회는 기술, 다양성 및 전문성이 균형을 이루고 은행의 규모, 복잡성 및 위험 프로필에 상응하는 필수 자격을 집합적으로 보유한 개인으로 구성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국내법도 이사회의 다양성을 강조한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회사지배구조법) 제6조에 따르면 사외이사는 금융·경영·경제·법률·회계·소비자보호·정보기술 등에서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선임해야 한다. 이 내용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저축은행 사태 등 각종 금융사고의 원인으로 '취약한 지배구조'가 지목되며 만들어졌다.

현재 각 금융지주는 이사회 다양성 제고 차원에서 '사외이사 후보군'을 관리하고 있지만,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5대 금융지주가 발간한 '2021년 지배구조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각 지주는 평균 135.6명의 사외이사 후보군을 관리하고 있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에 명시된 전문 분야인 금융·경영·경제·법률·회계·소비자보호·정보기술을 비롯해 ESG 등 분야에 몸을 담거나 주요 경력을 갖춘 이들이 대상이다. 이중 IT 관련 경력을 갖춘 후보자 비중은 16.5%로 현직 비중(10%) 대비 높았다. 어느 한 분야가 30%를 넘지 않을 정도로 고른 분포를 보였다.

◇ 금융당국, 올해 이사회 적정성 점검…3월말까지 5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75% 임기 만료

금융당국은 올해 주요 업무계획으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감독 강화'를 꼽고 금융지주와 은행 이사회에 대한 적정성 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이사회가 법에 근거해 적절히 구성돼있는지 살피고, 경영진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도 확인할 방침이다. 또 은행권과의 협의를 통해 사외이사 지원체계 강화방안과 이사회의 전문성·다양성 강화 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다. 당국은 금융지주와 은행 이사회 구성에서 소비자보호나 IT, ESG 부문이 미흡하다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은 당국의 지배구조 손질 방침에 '관치의 정당화'라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외이사 제도는 그간 개선돼왔고 각 금융지주의 내부 제도들도 선진화가 이뤄진 상황인데, 다시 제도 개선을 언급한다는 건 관치로 비춰질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각 금융지주는 3월 사외이사들의 대거 임기 만료에 대비해 선임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5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중 오는 3월말 임기가 끝나는 사외이사는 전체의 75.6%이다. 일각에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관계자 등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이들이 사외이사로 선임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hyu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