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엔블루 전 멤버 권광진, 연습생 생활 10년 끝 데뷔(인터뷰)
- 이경남 기자
(서울=뉴스1스포츠) 이경남 기자 = 필자가 권광진을 처음 본 건 2008년 밤 10시가 훌쩍 넘은 늦은 밤 일본 도쿄 시내버스 안이었다. 4명의 남자가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어느 부분의 피아노 반주가 죽이고, 보컬이 예술'이라며 밴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국 음식이 그립다며 창밖을 바라봤다.
당시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던 필자는 한국인이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고, 이들이 일본에서 밴드 데뷔를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가끔 시부야에서 악기와 앰프를 들고 다니는 이들과 마주쳤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이들이 씨엔블루라는 이름으로 음악방송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봤다. 하지만 그 안에는 권광진이 아닌 다른 일본에서 보지 못했던 낯선 남성이 베이스를 치고 있었다.
권광진은 씨엔블루 인디즈 1집 앨범에만 참여하고 탈퇴했고, 다시 FNC엔터테인먼트 연습생의 신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빈자리는 이정신이 채웠다. 국내 데뷔가 불발되고 다시 연습생으로 돌아온 권광진은 오랜 트레이닝 끝에 엔플라잉이라는 밴드로 재기를 꿈꿨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위기가 계속 찾아왔다. 세월호 참사로 앨범 발매를 미룬 후 리더 이승협의 무릎 부상으로 데뷔가 무한 연기됐다. 지칠 법도 하지만 권광진은 "기다림의 시간이 피가 되고 살이 됐다"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Q. 일본에서 매니저 없이 더운 여름날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고, 버스킹이 끝난 후 악기를 들고 버스에 오르는 것을 봤다. 힘들었던 일본 생활을 버텨놓고 데뷔 직전 씨엔블루에서 빠진 이유가 뭔가.
A. "그땐 정말 어렸다. 정말 힘들었다. 낯선 타지 생활도 힘들었고 회사 사정도 안 좋아져서 지원이 끊겼었다. 사장님이 차를 팔 정도로 회사가 힘들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쌀이 떨어져서 밥을 못 먹을 정도였다. 종현이 형도 55kg까지 빠졌고 나도 60kg까지 빠질 정도로 잘 먹지도 못했다. 땅콩버터 크림만 퍼먹은 것도 있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힘든 시간이었다. 개인적인 사정과 멤버들과의 음악적 견해로 탈퇴했다. 분명히 하고 싶은 건 불화는 아니었다."
Q. 엔플라잉도 일본에서 인디 활동을 했는데 과거에 힘들었던 걸 다시 겪는 게 힘들지 않았나.
A. "씨엔블루로 활동할 때도 힘들었고 엔플라잉으로서 활동 할 때도 물론 힘든 게 많았다. 근데 정말 씨엔블루 때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 형들이 데뷔 초에 방송 나와서 다 얘기했는데 길거리 공연을 하면서 경찰한테 쫓겨다니기도 했다. 엔플라잉 때는 버스킹을 안 했다. 나름의 힘든 게 있었지만 씨엔블루와 FT아일랜드 콘서트 오프닝 무대도 설 수 있었고 좋은 점도 많았다."
Q. 올해로 연습생 생활 10년 차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정말 많았을 것 같다.
A. "FNC가 설립될 때부터 연습생을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15살 때 들어왔다. 연습생 생활이 계속되다가 20살에 군대를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회사에서 조금만 더 기다려보라고 하더라. 그리곤 3일 뒤에 엔플라잉이 결성됐다. 그때 소속사에서 잡지 않았다면 지금쯤 군대에서 훈련을 받고 있지 않을까. 하하"
Q. 씨엔블루가 데뷔와 동시에 1위를 휩쓸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무대에 오른 멤버들과 달리 지하 연습실로 향해야했던 그 순간 힘들었을 것 같은데.
A."씨엔블루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언제 데뷔 '해야지!'가 아니라 '하겠지'라는 생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씨엔블루와 사이가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데 정말 친하다. 형들이 데뷔 후에도 나를 보러 연습생들이 있는 곳에 자주 왔다. 그 계기로 연습생과 아티스트의 벽이 높지 않았다. 연습생들에게 연주 노하우도 알려주고 생일인 친구들에게는 용돈도 주고 그랬다. 최근에 음악에 집중할 수 없는 시기가 있었는데 용화 형의 작업실에 갔다가 좋은 자극을 받았다. 용화 형이 나를 굉장히 예뻐한다. 요즘 들어 특히 더 자주 만난다. 많이 알려준다."
Q. 다른 멤버들은 몰라도 이정신과는 좀 어색할 수도 있을 것 같다.
A."연습생 시절부터 정신 형이랑 친했다. 내가 씨엔블루 빠진다는 얘기를 듣고 자기가 왜 하냐고 하면서 전화가 왔더라. 그래서 내가 하라고 했다. 형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갑자기 합류해서 녹음하고 연습하려면 얼마나 힘들었겠나. 미워하고 질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미안하고 고마운 존재다. 연습생 시절 씨엔블루 숙소도 놀러 많이 갔다. 정신이 형이 옷도 액세사리도 많이 줬다. 내가 데뷔할 때까지 베이스 줄은 본인이 꼭 챙겨주겠다고 하더니 정말 주기적으로 챙겨줬다. 베이스 줄이 5만 원 정도 하는데 돈을 떠나서 그 마음이 정말 고맙다."
Q. 굉장히 밝아보는데 이런 성격 덕분에 연습생 시절을 버틴 것 같다. 연습생활 10년 동안 무엇을 얻었고 잃었나.
A."잃은 것은 외모? 하하. 정말 잃은 것은 없다. 원래도 밝았지만 확실히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더 밝아졌다. 나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힘들지 않았다. 나는 다른 멤버들보다 음악 공부의 시간이 더 길었던 뿐이다. 마음껏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가. 데뷔 앨범에 자작곡이 실린다. 또 엔플라잉의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진출이다. 데뷔 후에도 곡 작업에 충실할 것이다."
엔플라잉은 올해 상반기 국내 데뷔를 앞두고 있다. 이들은 일본 인디즈에서 먼저 데뷔해 실력을 탄탄히 다진 실력파 밴드답게 지난 3,4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된 FNC엔터테인먼트 첫 국내 패밀리 콘서트 'FNC킹덤' 무대에 올라 그간 갈고 닦은 실력을 뽐냈다. 현재 Mnet '원나잇 스터디'를 통해 다양한 매력을 발산하며 대중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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