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화부장관의 박찬욱 향한 감동의 헌사…"삶 자체가 미학" [칸 현장]

박찬욱 감독, 프랑스 최고 등급 문화예술공로 훈장 코망되르 수훈
카트린 페가르 佛 문화부장관 연설문 초안 화제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박찬욱 감독이 17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칸에서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최고 등급인 ‘코망되르’를 받은 뒤 훈장을 목에 걸고 있다. 2026.5.17 ⓒ 뉴스1 ⓒ 로이터=뉴스1

(칸=뉴스1) 이준성 특파원 정유진 기자 = 프랑스가 제79화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박찬욱 감독에게 훈장을 수여하며 보낸 언어는 단순한 축하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영화감독의 이력을 기리는 의전적 문장을 넘어, 그의 영화를 철학과 비극, 문학과 미학으로 해석한 한 편의 비평에 가까웠다.

박찬욱 감독은 17일(현지 시각) 프랑스 남부 칸 팔레 데 페스티발에서 카트린 페가르 프랑스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 코망되르를 받았다. 코망되르는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중 최고 등급에 해당한다.

특히 이날 수여식을 위해 카트린 페가르 장관이 직접 준비했다고 알려진 연설문 초안은 이례적으로 깊이있는 문학적·철학적 언어로 채워졌다. 문서 표지에는 “실제 구두 발언만이 공식 발언으로 인정된다"는 문구를 적어 실제 발언과 차이가 있을 수 있을 수 있음을 명시했다.

페가르 장관의 연설문 초안은 박 감독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일을 "영화의 깊은 질문들을 탐험할 준비를 하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또 그의 작품 세계를 "인간의 열정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것과 가장 낮은 것을 다루며, 모든 연설과 그것을 정의하려는 모든 시도에 저항할 하나의 작품 세계"라고 설명했다.

초안은 박 감독의 삶 자체를 "하나의 미학"으로 읽어냈다. 건축을 가르친 아버지, 시인이었던 어머니, 형태와 선, 말과 침묵의 감각이 그의 곁에 있었다는 대목에서는 박 감독의 영화적 감수성을 한 개인의 재능이 아니라 삶의 결로부터 길어 올린 것으로 해석했다.

제79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인 박찬욱 감독이 2026년 5월 17일 프랑스 칸에서 카트린 페가르 프랑스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 코망되르 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 로이터=뉴스1

연설문 초안은 어린 박찬욱이 흑백 텔레비전 앞에서 서부극과 제임스 본드 영화를 보던 기억도 소환했다. 영어 대사와 자막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아이가 "미소의 주름, 그림자의 불안, 카메라의 움직임, 몸짓과 소리가 서로 맞아떨어지는 순간" 속에서 의미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초안은 바로 그 자리에서 "말이 발화되기도 전에 욕망과 공포와 죄책감을 이야기할 줄 아는 시선"이 형성됐다고 평가했다.

가장 강한 찬사는 '올드보이'를 다룬 대목에서 나온다. 초안은 "그리고 '올드보이'가 있었다. 한국 영화는 규모를 바꾸었다"고 적었다. 이어 철학도였던 젊은 박찬욱을 떠올리며, 복도에서 벌어지는 망치 액션 장면을 "니체의 망치"에 빗댔다. 기존 가치와 우상을 두드려 시험하는 니체적 은유를 통해, 박 감독의 영화가 단순한 장르적 폭력을 넘어 세계 영화 안에서 "미학적이고 가치론적인 폭발의 도구"가 됐다고 본 것이다.

2004년 칸영화제에서 '올드보이'가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순간도 소환됐다. 초안은 당시 심사위원장이던 쿠엔틴 타란티노가 박 감독의 영화에 찬사를 보냈다며 "그리스 비극의 오래된 기억"과 "누구도 자신의 열정으로부터 온전히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확신"이 이 영화 안에 있다고 평가했다.

초안은 박찬욱의 영화를 폭력으로만 읽는 시선에는 선을 그었다. "당신의 영화들은 인간 존재를 향한 명료한 연민으로 관통되어 있다"는 문장이 중심에 놓였다. 잘못과 방황 속에서도 그의 인물들은 "비극적으로 존엄"하며, 그는 "괴물들을 상처 입은 인간으로 촬영한다"고 했다. 빅토르 위고의 '사형수 최후의 날'과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함께 언급하며, 박 감독의 영화가 죄와 책임, 복수와 구원의 문제를 인간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다고 읽었다.

최신작 '어쩔수가없다'에 대해서는 "오늘의 한국보다는 세계 자본주의의 포식적 일탈에 대해 더 많이 말한다"고 평가했다.

연설문 초안이 도달한 결론은 박찬욱 영화의 국적성과 보편성이다. 초안은 "당신의 영화는 깊이 한국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제 보편적 유산에 속한다"고 적었다. 또 박 감독이 같은 세대의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한국 영화를 세계의 상상력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문화부는 박 감독의 영화를 "세계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그 모순을 드러내는 시선"으로 읽었다. 이어 보들레르적 미학을 떠올리게 하듯, 그의 영화가 "현실의 잔혹함과 공포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아름다움을 찾는다"고 평가했다.

프랑스가 이날 박찬욱에게 건넨 것은 하나의 훈장이었지만, 연설문 초안을 통해 그 훈장은 한 예술가의 목에 걸린 장식 이상의 의미를 얻었다. 이는 박찬욱이라는 이름이 세계 영화사에서 감독을 넘어 하나의 미학적 사유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eujene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