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③] 강지영 "카라 언니들, '우리 애기 대견하다' 해줘요"
- 정유진 기자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4년 전 인기 걸그룹 카라를 떠나 일본에서 배우로 데뷔한 강지영(24)이 한국을 찾았다.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참석을 위해서다. 그가 주연을 맡은 일본 영화 '킬러, 그녀'(미야노 케이지 감독)는 올해 월드 판타스틱 레드 섹션에 초청돼 한국 관객을 만난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이다.
개막식 다음 날인 지난 13일 영화의 GV 행사 시작 전 짬을 내 만난 강지영은 카라의 '자이언트 베이비'였던 시절을 떠올리게 할만큼 여전히 밝고 천진난만했다. 검정색 시크한 의상과 정갈한 헤어스타일만이 시간의 흐름을 설명하는 유일한 단서였다.
일본에서 배우로 데뷔한지 4년째. 강지영을 챙기는 이들은 일본인 스태프들이었다. 그와 함께 직접 한국을 방문한 일본 연예기획사 스위트파워의 오카다 나오미 사장은 서툰 한국어로 "처음 뵙겠습니다"라며 참석한 기자들에게 일일히 인사했다. 스위트파워는 1996년 개업한 매니지먼트 회사로 현재 쿠로키 메이사와 나나미 사쿠라바 나나미, 강지영이 속해있다. 또 이 회사는 배우 김태희의 일본 소속사로도 유명하다.
강지영은 배우 데뷔 4년 중 초반 1~2년은 적응을 위해 일부러 한국 땅을 밟지 않았다고 한다. 2014년 NTV 드라마 '지옥선생 누베'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NTV 수요드라마 '히간바나-경시청 수사 7과' 영화 '레온' '내 인생인데'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배우 이미지를 굳힌 그는 최근에는 주연급으로 부상했다. 그뿐 아니라 일본어 실력도 일취월장해 만년 외국인 역할을 벗어나 최근에는 일본인 캐릭터까지 소화하고 있다. 카라를 잘 모르는 중년 팬들은 그를 일본 배우 '치에'(知英, 지영의 일본식 발음)로 인식하기도 한다고.
밝고 명랑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많지 않은 나이에 타국에서의 외로움과 분투가 한층 더 그를 성숙하게 만들어준 듯했다. 당찬 태도로 또박또박 "혼자서 열심히 달려온 건 고작 4년이니 앞으로 더 열심히 해도 나쁘진 않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강지영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일본서 가수 활동도…무대서 카라 언니들 보고 싶었죠."
-4년간 타국인 일본에서 활동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 초반 1~2년이 제일 힘들었다. 툭 건드리면 눈물 날 정도였다. 내가 선택한 길이긴 하지만 너무 외로웠다. 가족들도 일본에 없었고, 솔직히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리웠다. 또 막상 일본 연예계에 발을 들이니 문화가 너무 다르더라. 일본 엔터테인먼트 문화도 다른데, 사람도 너무 달랐다. 그래서 가깝지만 먼 나라라고 하나보다. 그리고 그때는 인터넷에서 이슈도 많이 됐다. 한국에서는 강지영이 일본에서 배우를 한다더라 했다. 또 카라가 사랑을 많이 받아 일본에서도 이슈가 됐다. 일부에서는 '왜 한국사람이 일본 드라마에 나오느냐'는 말도 많이 했다. 그때 자신이 없어지더라. 그런 걸 보면서 '이걸 하는 게 맞나' 싶었고 날 어떻게 봐줄지 모르겠더라. 한국을 떠나 왔고, 여기서 반겨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물론 팬들은 정말 많이 응원해 주셨지만, 대중은 나를 드라마에서 처음 보는 거였다.
첫 드라마가 '지옥선생 누베'였는데 애니메이션 원작이었다. 거기서 제일 유명한 캐릭터를 했다. 설녀 역할인데 하얗고, 얼음을 움직이는 그런 역할이었다. 그 역할이 인기가 제일 많아서 일본에 애니메이션 팬이 진짜 많지 않나. 그분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지, 그랬다. 그 다음 작품도 '암살교실'이라는 작품이었는데 그 작품에서도 제일 인기가 많은 역할이었다. 러시아인인 이리나 예라비치 역이었는데, 금발 머리에 렌즈를 끼고 연기했다. 그것도 할 때 '비치 선생님'이 아니라고 그런 게 되게 많았다. 사실 한국은 요즘엔 웹툰으로 많이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한국은 만화를 원작으로 많이 없지 않나? 그래서 그때는 그런 것으로 갈등이 많았다.
-언어의 문제는 어땠나?
▷ 역시 언어다. 제일 큰 게 언어였다. 대사를 연습하는 것도 몇시간씩 연기 선생님과 일대일로 대본을 두고, 억양 체크를 한다. 열개씩 읽는데도 억양이 달라서 될 때까지 계속 고친다. 그래도 틀렸다고 하니까 하다가 울면서 한다. 저는 계속 그대로 따라하는데 아니라고 하니까…. 그래서 울면서 했던 기억이 많다.
1~2년은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한국도 많이 안 갔다. 일부러 일본어에 익숙해지려고 일본에 있었고, 또 한국에 가면 마음이 약해질까봐 그랬다. 추석 때나 1년에 1~2번만 가고는 했다. 요새는 마음이 편해져서 왔다갔다 한다. 그때는 엄마가 가끔 와서 요리를 해주시고 냉동 시켜놓고 가면 해동해 먹고 그랬다.
-이후에 자신감을 갖게 된, 자신을 믿게 된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나?
▷ "'다른 하늘 아래 당신의 하늘, 나의 하늘?'이라는 작품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사실 내레이션이 많았다. 한국인 역할이라서 한국어도 하는데, 일본어와 만다린어도 했다. 그 많은 언어를 하면서 일본어 내레이션까지 있어 고생했다. 내레이션 부스에서 그날도 울었다. 감독님이 자꾸 (발음이) 아니라고 하니까, '잠시만요' 하고 화장실에 가서 엉엉 울었다. 한국에서 처음 말씀드리는데, 그때 갑자기 '애국가'를 불렀다. 그랬더니 눈물이 뚝 그쳤다. 갑자기 눈물이 뚝 그치고 할 수 있다 싶었다. 마음에 진정이 되더니. '부스에 들어가서 다시 할게요' 하고 잘 끝냈다.
돌아와 생각해보니 '왜 사서 고생을 하지?'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래도 남들이 노력한 걸 알아주는 순간이 오니 뿌듯하더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일본에서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곘지만 찾아주시는 한 계속 노력해서 좋은 작품으로 찾아뵙고 싶다.
-카라 멤버들과는 연락하고 지내나?
▷우리는 아직도 잘 지낸다. 사실 우리는 불화설도 없지 않았나? 사이 좋다. 카카오톡 그룹 채팅방이 있을 정도로 좋다. 시간을 맞춰서 보자고 했는데, 내가 일본에 가 있으니까, 왔다갔다 하면서 시간이 안 맞을 때가 많아서 잘 못 본다. 그래도 '맞추자 맞추자' 하면서 연락을 많이 한다.
-일본 활동에 대한 멤버들의 반응은 어떤가?
▷ '애기야 대견하다'고 했다. (웃음) (박)규리 언니는 나를 아직 애기라고 한다. 요새는 애기라고 많이 안하긴 하는데 그랬다. 언니들이 다들 멋지다고 해준다. 하라 언니는 최근에 싱글 앨범도 낼 정도로 일본에 자주 왔다갔다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 자주 본다. 언니가 호텔 어디에 묵는다고 하면 나는 거기 가서 놀다가 온다.
-멤버들과 함께 활동하던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나? 일본에서 가수로서도 활동하고 있는데.
▷ 카라로는 도쿄돔에서 공연도 했다. 그런데 혼자 노래를 부르러 무대에 설 때는 1000명, 5000명 앞에서 하는데도 어렵더라. 5만명 앞에서 했는데 말이다. 다르더라. 또 카라 때는 3분짜리 노래를 다섯명이 부른다. 그런데 그랬던 것을 나 혼자 부르려니 힘들고, 언니들이 보고 싶었다. 다섯명이 있을 때가 좋았고, 가수 활동할 때는 그런 게 있다. 언니들이 보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든다.
'[인터뷰④] 강지영 "전도연·나카타니 미키 같은 연기파 배우가 목표"'로 이어집니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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