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무티 "서바이벌 도전하며 슬럼프 겪었지만…포기 안 돼" [물 건너온 아이돌]①
그룹 엑스러브 중국인 멤버 우무티 인터뷰
- 김민지 기자
(서울=뉴스1) 김민지 기자
"아이돌 꿈 포기 안 돼…욕심쟁이였던 스스로에게 고마워요."
중국에 살던 우무티(27)는 우주와 동물을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댄스 학원에 발을 들이면서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댄스 배틀 과정에서 우연히 'K팝'을 접한 뒤 그 매력에 빠져들었고, 이후 'K팝 아이돌'을 동경하게 된 것. K팝을 향한 우무티의 애정은 단순한 동경에서 그치지 않았다. 음악에 맞춰 춤추던 우무티는 아이돌을 꿈꾸게 됐고, MBC 뮤직 서바이벌 '슈퍼 아이돌'에 출연하면서 이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가 되는 건 쉽지 않았다. 우무티는 잠시 프로젝트 그룹으로 활동했으나 이내 그만두고, 그 후 MBC '언더나인틴'으로 보이그룹 서바이벌에 다시 도전했지만 최종 데뷔조로 선발되진 못했다. 그 후 슬럼프를 겪으며 방황하기도 했다고. 그럼에도 꿈을 포기하진 못하겠더라며 당시를 회상한 우무티는, 한동안 회사 없이 홀로 연습생 생활을 이어가며 때를 기다렸다고 고백했다.
이후 2023년 엠넷 서바이벌 '보이즈 플래닛'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인 우무티는 최종 데뷔가 좌절된 뒤 잠시 재정비하고 '엑스러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전부터 구상해 온 팀을 만들기 위해 직접 멤버들을 모으고, '젠더리스' 콘셉트를 구체화하며 리더이자 프로듀서로 바쁘게 지냈다. 그 결과 엑스러브는 지난해 1월 데뷔하자마자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산, 가요계에서 주목받으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후 음악성까지 인정받으며 탄탄하게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K팝 아이돌에 도전한 지 10여 년, 우무티는 이제야 그동안의 노력이 빛을 보고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런 우무티에게 한국은 좌절도 맛보게 했지만 꿈을 이루게 한, 그래서 밉지만 사랑하는 애증의 나라다. 그러면서도 이곳이 '집' 같다며 나중에도 한국에서 삶을 계속 이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스1은 최근 유창한 한국어를 자랑하는 우무티를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만나서 반가워요, 본인 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엑스러브의 리더이자 프로듀서인 우무티입니다.
-K팝에는 언제부터 흥미를 가졌는지 궁금해요.
▶원래 K팝뿐만 아니라 연예계 자체에 아예 관심이 없었어요. 사실 할아버지는 클라리넷 연주자이고, 할머니는 예대 미술과 교수님이라 어릴 때부터 예술인 단지에 살았거든요. 단지 안에서 항상 악기 연주를 들으며 살았는데도 그땐 예술 쪽에 '노관심'이었어요. 우주, 동물 이런 걸 좋아했죠. 어느 날 TV로 동물 관련 방송을 보려는데, 제가 보고 싶은 게 안 나오는 거예요.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연예인과 무용수들이 배틀하는 방송이 나왔는데 그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또 보고 싶어서 기다렸다가 '본방 사수'하고, (춤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러다 엄마에게 현대 무용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현대'라는 말만 듣고 무용 학원이 아니라 스트리트 댄스 학원에 등록을 해주셨어요.(웃음) 그 학원이 동네에서 유명한 두 댄스 스튜디오 중 한 곳이었는데, 올드스쿨 장르를 기반으로 하는 곳이었죠. 또 다른 스튜디오는 K팝과 재즈로 트렌디하고 화려한 퍼포먼스를 했어요. 댄스 배틀을 하면 그 팀과 항상 파이널에서 만났는데 춤을 보고 '저게 뭐지?' 싶으면서도 압도되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K팝도 처음 알게 됐고요. 이 팀에서 춤을 배워보고 싶어 가게 됐고, '내가 제일 잘 나가'를 처음으로 배웠죠. (춤을 추면서) K팝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K팝에 흥미를 가진 뒤 '덕질'(팬 활동)도 했나요.
▶'이제 내가 팬이 됐구나' 하면서 한 팀을 좋아하게 된 건 에프엑스 선배님이었어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를 하고 에프엑스 선배님들을 (그림으로) 그리곤 했죠. '일렉트릭 쇼크'(Electric Shock)로 활동할 때였는데, 퍼포먼스를 보니 너무 멋있더라고요. 보면서 '이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겐 '동경의 대상'이었죠.
-K팝 팬이었다가 어떻게 'K팝 아이돌'을 꿈꿨는지 그 과정도 궁금해요.
▶댄스 학원에 다니면서 키즈팀으로 가끔 TV 방송에 나가곤 했어요. 그때 한국 대형기획사에서 글로벌 오디션에 참여해 보라는 이메일을 받게 됐는데, 오디션 장소가 제가 사는 곳에서 멀었거든요? 그런데 그 소식을 엄마에게 전하니 아프신 상황에도 바로 같이 공항에 가 비행기 표를 사서 광저우로 갔어요. 엄마가 저를 많이 지지해 주셨어요. 그래서 1차 오디션에 붙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무 어릴 때 외국에 가면 안 된다고 반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2차 오디션장엔 못 갔어요. 이후 계속 댄서로 활동하다가 방송을 통해 알게 된 안무가 선생님이 '베이징에 와서 더 좋은 기회를 찾아보면 어때'라고 이야기 해줬어요. 그분이 또 다른 대형기획사에 지원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죠. 그런데 그게 '슈퍼아이돌'을 제안받았을 때와 같은 타이밍이었어요. 하나를 선택해야 했을 때 '슈퍼아이돌'을 선택한 거죠. (당시) 한국 아이돌들의 리얼리티를 보고, 예능도 보다 보니 한국 방송에 출연해 보고 싶더라고요. 그때 제가 SBS '룸메이트'를 너무 즐겨 봐서 '숙소 리얼리티'에 대한 로망도 있었거든요.(미소) '슈퍼아이돌'이 재밌겠더라고요. 무대도 하고 레슨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저한테는 너무 완벽하게 (K팝 아이돌을) 체험할 기회였어요. 도파민이 돌더라고요.(웃음)
-'슈퍼아이돌'에 출연하니 '로망'이 충족됐나요.
▶바로 후회했어요.(웃음) 베이징에서 다른 연습생들과 만났는데, 다들 개성이 강하니 '같이 살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제가 너무 어렸잖아요. '내가 생각한 룸메이트는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인천공항에 도착해 바로 일산에 가서 '쇼챔피언'을 관람했는데, EXID 선배님 무대도 보고 시크릿 전효성 선배님과는 악수도 했어요. 그때 잠시 기분이 좋았는데, 바로 이동해 1~2시간 뒤에 오디션을 본다고 하는 거예요. 거기서 탈락하면 숙소에도 못 가고 돌아간다고 하니 너무 떨렸어요. 학교 친구들에게 '나 연습생된다'라고 소문냈는데, 떨어져도 못 돌아겠는 거예요. 하필 또 제가 타고 온 버스가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는 버스여서 더 무서웠어요. 그래서 죽을힘을 다해 준비했고 다행히 생존했어요. 그 후엔 폰을 반납했으니 방송이 된다는 것만 알고 연습생처럼 생활했어요. 저는 승부욕이 강한 편이라 숙소에서도 연습을 열심히 했어요. 그땐 집 생각도 안 나고 오로지 1등을 하겠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아이돌 연습생 생활은 처음이라 적응이 쉽진 않았을 듯해요.
▶원래는 (댄스) '배틀러'여서 단체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전 '막내'의 성격은 아니에요. 제가 리드해야 하는 성격인데 막내 포지션이라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도 있긴 했어요. 그러면서 점점 단체 생활에 적응했고 저를 어떻게 어필해야 하는지, 장점이 무엇이고 약점이 무엇인지도 파악했죠. 어린 소년이 현실을 깨닫고 성장하는 시간이었어요.
-이후 아이돌로 활동했다가 잠시 공백기를 가진 뒤 국내 보이그룹 서바이벌 '언더나인틴'에 다시 도전하게 됐죠. 계기가 궁금해요.
▶기존 팀에서 탈퇴하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언더나인틴' 출연 제안이 들어왔어요. (애초에) K팝 아이돌이 되고 싶었으니 그 꿈을 찾고 싶더라고요. 또 아직 어리니까 원점으로 돌아가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에 입시를 멈추고 ('언더나인틴'을) 하게 됐죠.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선발이 안 됐어요. 힘들진 않았나요.
▶그때 정신적으로 타격이 커서 잠시 슬럼프가 왔어요. 그런데 사람이 신기한 게, 꿈이 간절해서 그런지 포기가 안 되더라고요. (힘든 와중에도) 뭔가 찾아서 하고 있어요. 아이돌들의 무대를 보고, 오디션이 열리면 '한 번만 더 해볼까' 하고요. 아예 한국에서 고시원을 잡으려고 했었으니까요. 제가 첫 아이돌로 활동할 때,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알게 된 친구 중 한 명이 라키였어요. 친하게 지냈는데, 라키가 중국에 놀러 왔을 때, 제가 '계속 아이돌에 도전하고 싶다'고 고민을 얘기하니 자기랑 같이 작업실을 쓰자면서 일단 한국으로 오라고 했어요. 그 후 한국에 갔고, 스스로 데뷔 경험이 아예 없다 생각하고 다시 '연습생 마인드'를 세팅한 뒤 오디션을 보러 다녔어요. 제가 한국에 간다고 하니 엄마도 말리지 않았고, 이후에 레슨비를 계속 대주시면서 서포팅해 주셨고요. 회사 없이 홀로 연습생 생활을 한 거죠.
-그러다 2023년에 '보이즈 플래닛'에 다시 도전했어요. 세 번째 아이돌 서바이벌이었죠.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연습하면서 열심히 오디션을 보러 다녔어요. 회사에 들어갔다 나오기도 하고요. 그쯤 지금 대표님과 회사를 함께 만들게 된 거예요. 사실 그땐 아이돌을 그만두고 싱어송라이터를 하고 싶어서 JTBC '싱어게인'에 지원했었거든요? 그래도 본능적으로 아이돌이 하고 싶었나 봐요. 마감 이틀 전에 '보이즈 플래닛'에도 지원했어요. 그렇게 출연하게 된 거예요. 그동안 나 자신을 단련시켜 왔으니 '보이즈 플래닛'에서 실력을 더 보여주려 했고, 저를 피알(PR)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찾아 헤맸어요. '사람들에게 나를 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다가 '우무티티티'도 나오게 된 거예요.(미소)
-'보이즈 플래닛' 여정도 쉽지만은 않았죠.
▶(중간중간) 순위를 보고 좌절감을 느꼈어요. 요즘 세대 아이돌들보다 나이가 많으니 '고인물'인가 싶고, 너무 이미지 소비가 돼 신선함이 없는 걸까 싶기도 하고요. 모니터링하는데 제가 봐도 저 자신이 풋풋하고 사랑스럽진 않더라고요. 무대에서 실수했을 땐 자책을 많이 했어요. '보이즈 플래닛' 제작진과도 친한데 요즘도 '우무티 오디션 때 왜 음정 못 잡았어?'라고 얘기해요. 너무 기대가 컸는데 입 열자마자 놀랐다고 말하세요. 사실 그때 저도 놀랐거든요. 스타 레벨 테스트가 끝나고 '우무티 정신 차려, 아이돌 자아 찾고 다시 안광 집어넣고 열심히 해, 미치도록 해'라고 저한테 이야기하면서 다시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보이즈 플래닛'에서도 최종 데뷔조엔 들지 못했어요. 아쉬움이 너무 컸을 텐데요.
▶(오히려) 끝났을 땐 아쉽지만 좌절하진 않았어요. '보이즈 플래닛'을 통해 많은 걸 얻었고,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났잖아요. 제가 탈락했을 때도 (사람들이) 같이 울어주고 편지도 써주고 해서 그 사랑을 느꼈어요. '보이즈 플래닛'은 저에게 좋은 추억만 남겨준 서바이벌이에요. 무대가 무서울 때도 있었는데 그 트라우마가 없어졌어요. 탈락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어요. 일단 회사를 차렸으니 돌아가는 건 너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남아서 뭐라도 해보자' 싶었어요.
<【물 건너온 아이돌】 엑스러브 우무티 편 ②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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