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칸 영화제와 박찬욱…전찬일 평론가에 물었다 [칸 현장]

21번째 칸 영화제 찾은 전찬일 평론가 [N인터뷰]

전찬일 평론가(왼쪽) 루마니아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 ⓒ 뉴스1 / 전찬일 평론가 제공

(칸=뉴스1) 장아름 기자 = 전찬일 평론가는 올해까지 21회째 칸 국제영화제(이하 칸 영화제)를 찾았다. 그는 지난 1993년 영화 평론을 시작해 30년 가까이 영화계에 몸담아온 평론가다.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이한 지난 2019년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이 지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들어올리고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상인 작품상을 포함한 4관왕을 휩쓸기까지, 한류의 흐름과 발전을 함께 이어왔다.

25일(현지시간) 칸 영화제에서 비평가주간 폐막작인 '다음 소희'(감독 정주리)의 공식 상영이 있던 날 전찬일 평론가를 만났다. 후반부를 향해 가는 칸 영화제를 지켜보는 전 평론가는 대부분의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들의 러닝타임이 2시간이 넘어가고, 전반적으로 무난한 영화들이 다수라고 분석했다. 이에 경쟁 부문 진출작인 두 편의 한국 영화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가 상대적으로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전 평론가가 언급한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이번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아가씨'(2016) 이후 6년 만에 칸 영화제 경쟁 부문 후보로 지명됐으며, 영화 '올드보이'(2004) '박쥐'(2009) '아가씨'에 이어 네 번째로 칸 영화제의 부름을 받았다. 무엇보다 '헤어질 결심'은 칸 영화제 공개 이후 공식 소식지 스크린데일리에서 평점 3.2점으로 경쟁 부문 진출작 중 가장 높은 평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전 평론가는 "이번에는 무난한 영화가 많다 보니 '헤어질 결심'이 더 눈에 띈다"며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25일 인터뷰 당일 기준) 이 작품도 호평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헤어질 결심'의 힘은 화면에서 나오는 반면, 이번 칸에서는 아우라가 나오는 영화가 없다"며 "또 다른 경쟁 진출작인 다르덴 형제의 '토리와 로키타'는 카메라의 힘이 많이 빠졌더라, 그동안 이들은 주제와 메시지에 천착한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번엔 화면에서 나오는 힘이 아쉽다"고 평했다.

박찬욱 감독이 15세 관람가를 목표로 만들었다고 했을 만큼, '헤어질 결심'은 그의 전작과 달리 파격과 선정성이 없는 작품으로 변화를 택한 행보에 무수한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전 평론가는 "하드보일드를 예상했던 관객들에겐 그의 영화가 약해졌다는 인상을 줄 수 있지만 더 성숙해진 거장의 품위가 느껴지는 작품"이라며 "주연배우 탕웨이는 '색, 계'로 이미 정점을 찍은 배우로 표정과 내면 그리고 플라토닉 사랑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을까"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박 감독은 칸 영화제에서 '올드보이'로는 심사위원대상을, '박쥐'로는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에 박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는 점에서 폐막식에 영화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 평론가는 "지금 대세가 한류라는 맥락 속에 한국 영화가 수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지만 심사위원단이 누구인지와 이들의 평가가 중요하다"며 "이번 심사위원장은 프랑스 배우 벵상 랭동인데 배우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대중성이 있는 작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박찬욱 감독과 배우 박해일, 탕웨이가 23일 (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올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인 영화 ‘헤어질 결심’ 시사회에 도착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전 평론가는 이번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된 한국영화 '다음 소희'에도 주목했다. '다음 소희'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 여고생 소희가 겪게 되는 사건과 이에 의문을 품는 여형사 유진(배두나 분)의 이야기로, 첫 장편 데뷔작인 '도희야'로 제67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던 정주리 감독의 신작이다.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사망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사회적 이슈에 놓인 한 개인의 섬세한 감정에 이입하고 동요하게 되고, 사회적 이슈에 놓인 한 개인의 섬세한 감정을 풀어낸 전반부와 이 사건에 관심을 갖는 한 어른을 통해 희망을 찾으려는 후반부의 서사를 탁월하게 풀어내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전 평론가는 "비평가 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된 건 큰 의미가 있다"며 "한국 영화가 그간 비평가 주간에 선정된 게 몇 편 안 된다, 이번처럼 경쟁 부문에 두 편이 올라올 수 있어도 비평가 주간에는 한 편도 초청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이 작품이 폐막작이 됐다는 건 영화가 가진 미덕과 주제 의식을 평론가들이 인정했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 그는 "최근에 프랑스 평론가들도 세대교체가 됐다, 중견들이 뒤로 물러나고 30대 젊은 여성 평론가들이 많다"며 "젊은 평론가들에게 인정받았다는 건 공식 섹션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의미를 전했다. 그러면서 정주리 감독에 대해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감독"이라고 덧붙였다.

박찬욱 감독과 배우 박해일,탕웨이가 24일 (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올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인 영화 ‘헤어질 결심’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이번 칸 영화제의 흐름도 짚었다. 전 평론가는 "올해의 특이점은 '여성'"이라며 "여성 얘기를 하는 건 당연한 것이지만 심사위원단을 4명의 여성과 5명의 남성으로 구성했는데 개막식 사회와 개막 선언을 여성에게 맡겼다, 여성에게 비중을 몰아주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어 몇몇 작품들이 여성의 클로즈업신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에 주목하며 "올해처럼 영화 속에 여성에 대한 주제가 전면에 배치된 적이 없었다, 이번엔 한 두 편이 아니라 초청작 중 대여섯 편 이상이 여성 캐릭터의 클로즈업으로 끝난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기억하는 건 도입부와 결말"이라며 "그래서 주인공의 클로즈업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영화 역사에서 가장 주목한 클로즈업은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 아닌가, 이게 영화에서 가장 회자됐던 클로즈업인데 더 이상 얘깃거리가 안 될 정도로 이번에 많은 클로즈업신이 나왔다"고 했다.

'여성'에 이어 '휴먼'도 올해 칸 영화제의 물결을 이뤘다. 전 평론가는 "시대가 급변하지만 여전히 휴먼이 중요하단 생각을 많이 한다"며 "여전히 문제는 휴머니즘으로, 그걸 영화화한 게 '헤어질 결심'"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찬욱이 '헤어질 결심' 상영이 끝난 후 '이렇게 길고 지루한 구식의 영화를 사랑해줘서 감사하다'고 하지 않았나"라며 "이 시대에 사랑과 인간성을 얘기하는 게 얼마나 구식인가, 그런데 사람들은 거기에 열광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더해 전 평론가는 칸 영화제의 엄격했던 드레스코드에도 변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경직돼 있었다"며 "프랑스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생각하면 칸 영화제의 경직되고 고집스러운 면은 말이 안 되는데 모두 그 전통을 존중해왔다"면서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프로페셔널 위주의 영화제가 외형을 확장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전문가들을 위한 귀족적인 분위기였는데 상영 횟수도 늘리는 등 분위기는 확실히 바뀌었다"고 전했다.

전찬일 평론가 제공 ⓒ 뉴스1

전 평론가는 칸 영화제에서 수많은 영화인들과 교류한 인사 중 한 명이다. 그는 이들과 만나면서 대세가 된 한류를 실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 평론가는 "한국 평론가가 말 걸어주는 걸 반가워한다.""며 "과거엔 '한국이 어딨냐'고도 했는데 지금은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한다"고 했다. 이어 "이들이 방탄소년단, 블랙핑크와 한강 작가의 문학을 정말 좋아하더라"며 웃었다.

전 평론가는 이날 만남에서 "앞으로 칸 영화제 30회 방문을 채울 계획"이라는 말도 전했다. 그는 "내 꿈이 칸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다 죽는 것"이라며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도 내비쳤다. 전 평론가는 앞으로 후배들도 자신과 같이 칸 영화제를 통해 많은 기회를 얻기 바란다는 진심도 전했다. 그는 "영화를 50년 봐왔고, 평론가로서는 30년간 매체 활동을 쉼 없이 해왔다"며 "이젠 (중견 평론가로서) 책임감이 실리는 나이라 후배 양성에도 힘써야 한다"고 털어놨다.

또 전 평론가는 "한류에서 평론가도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며 "칸 영화제를 언감생심으로 생각하는 젊은 후배들도 많은데 선배들도 칸 영화제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젊은 후배들을 경험시켜줘야 한다"는 생각도 전했다. 그러면서 "영어가 안 된다고 기죽지 말고 평론가로서 영화제에서 교류를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며 "해외 평론가들이 아무리 대단해도 우리보다 한국 영화를 많이 알 수 없지 않나, 각자 역할이 있다 생각하고 교류를 통해 상호 발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환갑이 넘으면서 공적인 역할을 많이 하려 한다"던 그는 칸 영화제 이후 계획을 다시 한번 잡았다.

aluemcha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