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금파 "무속인→가수된 최초의 사례…22년만의 나를 위한 삶"(인터뷰)
- 황미현 기자

(서울=뉴스1) 황미현 기자 = 연예인을 하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무당이 된 사례는 종종있다. 그러나 무속인이 가수가 된 경우는 없다. 신을 받아들인 인물이 다른 직업에 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 그러나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꿈'을 20여년 만에 조심스럽게 꺼내 놓은 '무속인 가수'가 등장했다. 금파라는 무속인명에 '파파'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름하여 '파파금파'(본명 이효남. 54)가 그 주인공이다.
파파금파는 지난 9월1일 곡 '인생은 회전목마'로 데뷔했다. 무속인인데다가 50대의 나이에 '신인 가수'가 된다는 일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터. 그럼에도 그는 "무속인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온 것이 22년이다"라며 "오직 나만을 위한 삶을 한 번은 살아보고 싶었다"라며 앨범을 낸 이유를 밝혔다.
파파금파는 무속인이지만 이미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하기도 한 실력자다. 지난해 카네기홀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황해도 굿을 선보였다. 그는 이 공로로 대한민국 예술문화인 대상에서 전통예술인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의 굿 문화를 세계에 알린 대표적인 인물이자 정통파다.
파파금파는 최근 뉴스1을 찾아 정통 무속인에서 가슴에 품고 있던 가수라는 꿈을 꺼내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줬다. 파파금파는 큰 욕심 없이 가수에 도전하는데 의의를 둔다며 "2~3년 정도만 가수 활동을 하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했지만, 아직 답은 듣지 못했다"라며 화통하게 웃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9월에 50대 나이 신인 가수가 됐다. 소감이 어떤가.
▶신인이 아닌 신인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니까 모든 것에 만족한다. 내가 항상 하고 싶었던 일을 늦었지만 들어섰다는 것이 좋다.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 나이 또래 되면은 결정 하기가 신중하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인거다. 나중에 60이 넘고 70이 됐을 때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연극을 전공했다. 그러나 계기가 안되서 그 길로 들어서지 못했고 살아오면서 그 꿈을 잊은줄 알았는데 숨어있는거더라. 후회할 것 같아서 도전하게 됐다.
-가수와 무속인을 병행하는 것인지.
▶기존 직업이 신과의 관계이지 않나. 난 제자의 위치이기 때문에 그 길을 벗어날 수는 없다. 죽을 때까지. 다른 종교 사제와 다른 면이 있다. 잠깐 2~3년 정도 나의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평생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한 이유는
▶무속인으로서의 삶을 20년 넘게 살았다. 어떤 선택을 받은 것이다. 그건 내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신에 메인 삶이었다. 내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무속인으로서 결혼도 안했고, 아이도 없으니 내 안에 있던 가수라는 꿈이라도 실현하고 싶었다. 오래할 수는 없고 2~3년 정도 생각한다.
-노래가 대박이 나서 계속 활동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좋은데 내가 봤을 때 그럴 일은 없다. 전혀 없을 것 같다. 노래가 특출난 것도 아니고 나이가 20~30대인 것도 아니지 않나. 욕심은 없지만 파파금파의 노래가 이런 노래가 있다는 것을 알아준다면 그것만으로 나에게는 대박이다.
-무속인이 되기까지 굴곡도 많았을 것 같다.
▶살아오면서 굴곡이 많았다. 몇번의 굴곡을 겪었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삶과 이별을 하려고 여러번 시도한 적도 있을 정도로 순탄하지 않았다. 그 모든 고생이 끝난 다음에 순탄해지니까 제대로 살다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돌아갈 때 깨끗하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0월 김보연씨와 함께 부른 '작은 연인들'을 발표했다. 어떤 인연인지.
▶원래부터 친하다. 김보연씨가 다른 친구 집에는 안가지만 우리 집에는 자주 놀러와서 한참동안이나 수다 떨고 간다. 내가 요리를 잘하는데 우리 집에 오면 먹을 것들도 많고 재미있게 이야기 나누다 간다. 그러다 내가 노래에 대한 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응원을 해주다가 듀엣까지 하게 됐다. 목소리가 맞지 않을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 맞더라.
-작사, 작곡에 참여하셨던데 음악을 배우신건지.
▶깊이 한 것은 아니다. 작곡 부분에서는 '인생은 회전목마' 곡조 정도가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내 생각을 전달한 정도다. 가사는 내가 무속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사랑이나 이별 내용을 할 수는 없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하늘아 나 좀 도와줘' 이런 부분이다.
-연기 전공인데 어떻게 무속인의 길을 걷게 된건가
▶두 가지다. 처음에는 배우는 과정에서 연기라는 것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건데 자신이 없었다. 다른 인물이 되어서 표현할 수 없겠다는 것을 알게됐다. 또 하나는 제주도 출신이니까 사투리가 있었다. 또 비염이 강해서 비음이 강한데 연기 발음에 있어서 고쳐지지가 않았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긴 했다. 가수 한영애씨와 동문이었는데 한영애씨가 내 연기를 보더니 '효남아 넌 안되겠다~'하더라. 어린 마음에 충격 받고 연기를 접었다. 하하
-무속인을 하면서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했다. 굉장한 일 아닌가.
▶카네기홀과 더불어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서도 공연했다. 우리나라 굿이 전통 예술의 시작이다. 황해도 굿에서 살풀이가 나왔고, 또 거기서 사물놀이가 나오고 승무가 나왔다. 나아가서는 탈춤과 연극도 나오게 된거다. 그러나 시선은 어떤가. 미신이고 좋지 않은 종교적 색채가 있다. 굿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바꿔주고 싶었다. 물론 일부 젊은 무속인들의 경우에 제대로 배우지 않고 굿을 하는 분들도 많다. 제대로 된 황해도 굿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름대로 연극을 전공했기 때문에 예술적 감각을 살려서 공연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카네기홀에서 공연하기 위해 수개월동안 서류를 준비해서 굿 공연을 선보이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사실 긍정적인 답변은 기대하지 않았으나, 카네기홀에서 흥미를 보였고 서류가 통과되어서 지난해 공연을 하게 됐다. 무속인이 굿으로 카네기홀에 선 것은 내가 최초라고 하더라.
-이제 본인을 위한 삶이지 않나. 설렌 마음이 클 것 같다
▶나를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삶은 처음이다. 스트레스가 없다. 사람들한테 치이는 일도 없으니 정말 좋다.
-가수로서 목표가 있는지, 이뤄내고 싶은 것?
▶신인상을 받고 싶다. 사실 88년도에 앨범을 냈었다. 그런데 내고 나서 영장이 나와서 제대로 활동도 못해보고 군대에 갔다. 아쉬움이 크다. 지금이라도 신인상을 꿈꿔보고 싶다.
-가수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신과 소통은 했는지
▶내가 가수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허락받고 싶어서 계속 기도를 하는데 답변은 안왔다. 하하. 아무래도 성공하지는 못할 것 같은데 일단은 내 만족으로 활동을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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