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인터뷰] '저 산 너머' 이항나 "캐스킹? 봉준호 추천…다 내려놓고 연기"

배우 이항나/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배우 이항나/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서울=뉴스1) 고승아 기자 = 배우 이항나(50)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다룬 영화 '저 산 너머'(감독 최종태)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그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강인한 어머니 서중화 역할로 분해 어린 수환(이경훈 분)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중화는 가난한 삶 속에서도 묵묵한 표정과 단단한 말투를 통해 숭고함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지난 4월30일 개봉한 '저 산 너머'는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그 시절, 가족의 사랑 속에서 마음밭 특별한 씨앗을 키워간 꿈 많은 7살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힐링 영화로, 종교, 신앙을 초월해 모두를 품었고 모두가 사랑한 고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다룬 첫 극영화다. '오세암' 등을 선보인 고 정채봉 동화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1996년 연극 '날 보러와요'로 데뷔한 이항나는 연극과 연극 연출가로서 활약하며 무대를 휩쓸어왔다. 이후 영화 '변호인'으로 관객들에도 눈도장을 찍은 이항나는 '4등' '나를 찾아줘' 등과 올초 종영한 드라마 '블랙독'까지 나서며 무대는 물론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넘나들고 있다. 시대의 어른으로 꼽히는 김수환 추기경의 강인한 어머니로 분한 이항나를 최근 뉴스1이 만났다.

배우 이항나/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영화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어느 날 시나리오를 받았다. 그때는 아무것도 확정이 안 돼 있고, 시나리오와 감독님만 있던 상태였다.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요즘 보기 드문 '한 편의 시'같은 영화더라. 특별한 서사가 없고,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담아냈는데, 옛 영화가 생각났다. 아름다운 그림이 펼쳐질 것 같더라. 막연한 기대는 있었지만 서사가 없어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종교적 배경이 있지만 실제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종교 얘기가 아니지 않나. 그러고 있다가 갑자기 투자가 됐다고 하고,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2018년도 12월 즈음에 시나리오를 받고, 다음해 정초에 같이 하고 싶다고 했는데, 늦은 봄에 들어가게 됐다. 꿈만 같았다.

-최종태 감독이 이항나를 캐스팅한 이유는.

▶수많은 배우 중에서 나에게 영화를 하자고 했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다. 돌고 돌다가 온 거 아닐까.(웃음) 나중에 전해 들은 말은 봉준호 감독님이 추천해주셨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비밀이라고 했다. 나중에 말해주겠다고 했는데 봉준호 감독님이 이항나 배우 어떠냐 하신 모양이다. 아마 봉준호 감독님이 예전에 연극 공연을 보러 다녔는데, 그 시절에 연극에서 보신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제가 캐스팅됐고, 오랜 기간 열정을 가지고 쓰신 시나리오에 (이)경훈이 빼고는 제가 메인이어서, 선택한 것에 대해 감사했다. 감독님이 이건 모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저는 종교인은 아닌데, 모성과 동심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너무 감사했다.

-어렵게 진행된 현장이었다는데, 현장은 어땠나.

▶너무 좋았다. 과정 자체가 너무 행복했고 이 현장에서 떠나기가 싫더라. 물론 더워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웃음) 지난해 너무 덥지 않았나. 이러다 쓰러지겠다 싶어서 소금도 먹고 그랬다. 그래도 즐거웠다. 마음이 하나 되는 현장이었다. 작은 영화이지만 그 안에서 다들 정성을 들였고, 의상도 너무 좋았고, 세트도 예쁘게 지어졌다. 무엇보다도 과정이 좋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물론 저희 영화가 시적이라 결과를 예상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좋은 반응에 감사하다.

배우 이항나/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서중화 여사가 실존인물이라 부담감은 없었나. 더 준비한 게 있었나.

▶어느 하나에 중점을 둘 수가 없었다. 역할이 너무 시적이었다. 그래서 다 내려놓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안 꾸미고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나대로 하면서도 서중화 여사님처럼 보여야 하니까 감독님과 얘기를 하다가 분석도 하지 않고, 그냥 내 마음에 있는 진심을 통해서 서로 믿고 하자고 했다. 그래서 따로 회의도 안 하고 현장에서 바로 만났다. 연기를 하면서, 제가 종교인은 아니지만 매일 기도했다. 나한테 기도하는 건지, 연기의 신에게 기도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기도했다. 인물이 진실되게 해달라고 그랬다. 연기력과 기술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막막하기도 했다. 모르는 길을 그냥 아무 무기 없이 간 것 같다. 제가 연극을 오래 해와서 그런지 항상 기승전결이 있는 어법을 해왔는데, 그런 걸로는 이 영화에서 해석이 곤란하더라. 그래서 나를 믿고 주어진대로 갔다.

-아역 이경훈과 연기 호흡은 어땠나.

▶저는 현장에서 아역 배우를 만나면 초반엔 경계한다. 처음부터 친하게 지내면 연기 분위기가 안 잡히더라. 포커페이스를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경훈이 연기를 너무 잘하더라. 오디션을 몇 차에 걸치면서 뽑혔는데, 연기 경험도 없고 연기 학원도 다니지 않은 친구라 그런지 특유의 '쪼'(습관)가 없더라. 테크닉은 부족할지라도 순수함이 보여서 더 잘 담긴 것 같다. 경훈이 연기 보면서 저렇게 연기를 잘하나, 저렇게 태어나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너무 귀여웠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믿음'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변화됐나.

▶종교는 좋은 것 같다. 종교가 있는 자는 행복할 것 같다. 영혼이 기댈 곳이 있지 않나. 저희가 스트레스 속에서 사는데, 종교가 있는 사람은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마음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거니까, 건강한 길이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저는 연극을 종교처럼 해오지 않았나. 미친 사람처럼 연극을 맹신했다. 콩깍지가 씌워져서.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하하. 종교도 좋고, 어쨌든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건 행복하고 괜찮은 것 같다. 사실 저는 종교가 없지만 기도를 하게 된다. 딸한테 화 내고 나서도 더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길 바라면서 기도한다. 근데 다음날엔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웃음)

배우 이항나/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강인한 어머니 역할을 맡았는데, 실제로 어떤 엄마인 것 같나.

▶우선 전 영화 '4등'에서 보여준 엄마와는 정말 다르다. '4등' 엄마는 극성스럽다. 이런 엄마가 많지 않나. 저는 경쟁을 좋아하지 않고, 저희 어머니도 그런 걸 좋아하시지 않았다. 제게 숙제하라거나 공부하란 말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제가 그걸 닮은 것 같아서 딸에게도 왜 공부를 안 하냐는 얘기는 잘 안 한다. 그렇지만 서중화 여사는 아닌 것 같다. 대단하시지 않나. 제게도 저런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로서 자식에게 사랑을 많이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다. 물론 저도 잔소리를 하게 되는데, 사랑하고 지지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매일 집에 같이 있는데 노력하려고 한다. 하하.

-앞서 연극을 종교로 삼았었다고 했는데.

▶연극이 종교였다.(웃음) 그런데 제가 매체(영화, 드라마)로 넘어오면서 종교가 없어졌다. 정말 신앙인처럼, 그렇게 연극을 해왔다. 이제 영화를 하지만, 영화가 절 아직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게 하다가 매체로 넘어온 계기가 있을까.

▶영화 '변호인'하면서 자연스럽게 매체 연기를 하게됐다. 그때 즈음에 연극 배우들에 대한 러시가 시작되기도 해서 제안이 많이 왔었다. 사실 겁도 많았다. 매체 연기와 연극은 어법이 많이 달라 적응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고, 또 그때는 연극을 너무 좋아하기도 했다. 그렇게 적응을 못하고 있다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분위기와 촬영 환경이 많이 달라져 있더라. 지금도 적응을 완벽하게 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재미를 느낀다. 요즘 백세시대 아니냐. 어떻게 생각하면 어떤 분야에서 하고 옮긴다는 게 두렵지만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게 행복한 것 같다. 도전해서 상처가 나고 속상하겠지만, 그래도 한번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제 테크닉을 익히고 있는데, 후배들에도 이런 걸 알려주면서 저 같은 시행착오를 조금 덜 겪게 하고 싶다.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러시아 쉐프킨연극대학교에서 유학도 다녀왔고 교수로서도 활동했는데 자신의 연기를 보면 어떤가.

▶연기할 때마다 0점이라고 느낀다. 연기는 할 때마다 두렵다. 사실 이런 태도는 좋지 않은 것 같다. '자뻑'도 있어야 잘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스스로에게 너무 박하다. 어쩔 수 없는 성격인 것 같다. 남들은 제 연기에 대해 신경도 안 쓰는데 저는 '이게 뭐냐'고 생각한다.

seung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