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유 감독, 재미에 진심인 장르 퓨전의 대가 [정덕현의 페르소나K]

"가장 중요한 것. 그건 재미가 아닐까요?"

편집자주 ...'K-컬처'는 이제 '글로벌 문화'로 확실히 자리매김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K-팝', 'K-드라마', 'K-예능', 'K-무비' 등은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뉴스1은 지구촌 전역에서 주목 받고 있는 'K-엔터테인먼트'의 주역들을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가 직접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는 [정덕현의 페르소나K] 코너를 마련, 독자들에게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전달하고자 합니다.

장태유 감독 / 뉴스1DB

(서울=뉴스1)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흔히들 작품에 있어서 재미라는 가치는 당연한 것이거나 혹은 그래서 굳이 추구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재미만큼 작품에서 중요한 가치는 없다. 작품을 계속 보게 만드는 힘이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다양한 장르들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그만큼 다양한 층위의 재미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복합적인 장르를 자연스럽게 연결해 내는 장태유 감독이 현 K드라마에 던지는 페르소나는 그 존재감이 짙다. '쩐의 전쟁'으로 장르물 연출의 가능성을 엿보인 장 감독은 '뿌리 깊은 나무'에서 퓨전 사극에 추리와 스릴러 요소를 더해 사극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글로벌 히트작인 '별에서 온 그대' 역시 조선시대에서 현대까지를 잇는 주인공의 서사를 판타지 로맨스로 그려냈고, '하이에나'는 트렌디한 법정 드라마로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다.

최근 들어 장태유 감독은 사극이라는 영역에서 다양한 장르 퓨전의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홍천기'의 판타지 로맨스 사극과 '밤에 피는 꽃'의 로맨틱 코미디 액션 사극 그리고 최근 방영된 '폭군의 셰프'의 요리와 결합한 현대적인 사극 퓨전이 그것이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장르적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내면서도 대중들이 다양한 재미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요소들을 놓치지 않는 장태유 감독은 K드라마 특유의 버라이어티한 재미 요소들이 어떻게 가능해졌는가를 잘 보여주는 산 증인이다.

◇ 장태유 감독의 사극이 특별했던 이유

최고 시청률 17.1%. '폭군의 셰프'는 요즘 드라마 시청률로는 보기 드문 수치를 기록했다. OTT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공개되자마자 글로벌 OTT 순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서 TV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처럼 시청률 지표와 더불어 OTT 지표까지 장악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이다. 장태유 감독은 원작이 있는 이 작품의 무엇에서 이러한 가능성을 엿본 걸까.

"재작년 말부터 준비한 작품으로 원작을 알게 된 건 몇 년 더 전입니다. 제가 원래 사극은 쭉 많이 해 왔잖아요. 아주 젊었을 때는 사극을 좀 안 하고 싶었는데 이제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사극이 좋아지더라고요. 남들보다 내가 좀 더 익숙한 게 사극이구나 그런 것도 좀 알게 됐죠. 그래서 거부감 없이 현대물, 사극 따지지 않고 재밌고 새로운 이야기라면 도전해 봐야지 그러고 있었는데 음식 이야기잖아요. 저에게는 굉장히 새로웠고 때마침 재작년 '흑백 요리사'라는 프로그램을 너무 재밌어서 끝까지 다 봤어요. 우리나라에 요리사가 이렇게 많았나, 또 요리의 종류가 저렇게 많나 그리고 이야깃거리가 떨어질 것 같은데도 아직 한참 더 남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런 마음이 생겼을 때 이 작품을 이제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최근 들어 장태유 감독은 사극에 진심이다. 과거 '바람의 화원'(2008), '뿌리 깊은 나무'(2011)를 연출하기도 했지만 '별에서 온 그대'(2013)로 글로벌 히트를 기록하면서 사극과 살짝 멀어진 것처럼 여겨졌지만 최근 '홍천기'(2021), '밤에 피는 꽃'(2024)에 이어 이번 '폭군의 셰프'(2025)까지 사극을 연출했다. 그런 그가 왜 과거에는 사극을 꺼렸던 걸까. 또 요즘 사극이 좋아진 이유는 뭘까.

"제가 학창 시절에 뭘 외우는 걸 잘 못 했어요. 국사, 세계사 뭐 이런 외워야 하는 과목들 있잖아요. 한마디로 역사에 대한 지식이 짧다는 거죠. 얕고 잘 모르면 관심도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사극이나 전쟁물을 잘 안 봤어요. 역사를 알아야 재미있는 콘텐츠들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정통사극의 재미보다는 조금 퓨전사극의 재미를 추구했던 것 같습니다. 장르적인 재미나 한 사건이나 인물에 포커스가 맞춰진 사극이죠."

◇ 재미를 위한 연출에 대한 고민

하지만 그건 장태유 감독의 겸양이다. 사실 사극에 역사에 대한 지식은 중요하지만, 역사를 너무 깊게 알게 되면 오히려 보편적인 재미는 떨어질 수도 있다. 즉 역사를 잘 몰라도 재밌는 사극을 만들기는 오히려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요즘처럼 OTT로 글로벌 대중들이 함께 K 콘텐츠를 즐기는 시대에는 보편적 장르 문법에 충실한 사극이 오히려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뿌리 깊은 나무'를 쓴 김영현, 박상연 작가도 세종 시절을 다루는데 워낙 태평성대였던지라 특별한 역사적 사건이 없는 그 공백을 추리극 같은 장르적 요소로 채워서 풀어냈다고 한 바 있다.

"밀본이라는 비밀조직이 등장하죠. 한글을 만들려는 세종을 위협하는 암살자도 보내고 그래서 추리적 요소들이나 액션적인 요소들이 들어갈 수 있었죠. '바람의 화원'에서도 그랬어요. 신윤복과 김홍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지고 만든 가상 퓨전 사극이잖아요. 신윤복이 여자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으로 이정명 소설가가 쓴 원작을 드라마화했죠. 본래 안판석 선배가 선택했던 원작이었어요. 당시 드라마하우스 제작사 대표였었는데 여러 작품 중에 하나로 이 원작을 사서 저한테 주신 거죠."

장태유 감독 / 뉴스1 ⓒ News1

당시 '바람의 화원'은 너무 재미있어서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신윤복 미인도 전시를 보기 위해 긴 행렬이 이어지기도 했을 정도였다. 미대 출신이 장태유 감독에게 신윤복의 그림들은 어떤 도전을 일깨웠을까. 당시에는 그림에서 실사로 옮겨지는 연출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저도 미대를 나왔지만, 동양화과는 아니거든요. 사실 미술 분야는 너무 방대해서 자기 전공 분야가 아니면 잘 몰라요. 근데 '바람의 화원'을 하면서 저도 동양화에 대해 많이 눈이 뜨이고 기법이나 작가들의 화풍에 대해 많이 알게 됐어요. 그림이 실사와 연결되는 장면들은 사실 드라마로서 이 작품이 그다지 큰 사건이 별로 없어서 그런 연출에 더 신경을 썼어요. 살인사건도 없고, 정치적인 이슈도 없고 제일 큰 사건이 그림이 잘 안 그려진다거나, 누가 밤새 그려놓은 그림을 찢었다거나 하는 것들이었거든요. 그래서 이제 시각적 표현을 좀 더 공감각적으로 보여주려고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것은 '폭군의 셰프'도 마찬가지다. 물론 원작은 연산군 시절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어 사화와 반정의 극적 사건들이 있지만, 이 작품의 전체적인 재미는 거기에 있지 않다. 대신 음식과 대결에 재미가 맞춰져 있기 때문에 장태유 감독은 그 장면 연출에 공을 들였다.

"90년대에 한창 유행했던 일본 만화 중에 '신의 물방울'이라고 있어요. 그걸 드라마로 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쩐의 전쟁' 끝나고 박신양, 배용준 씨도 시도를 했었고…물론 성공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죠. 그때 제가 그거를 하려고 준비할 때 와인 먹고 이렇게 환상에 빠지는 장면을 되게 감명 깊게 본 거예요. 한 모금 먹을 때마다 깊은 산속 옹달샘에 가서 막 아침 햇살을 받고 사슴이 세수하듯이 물을 먹는 그런 장면이 그림으로 표현돼 있어요. 그 느낌을 이번에 먹는 장면에서 많이 표현해 보려 했죠."

◇ 요리 연출을 진심으로 대했던 '폭군의 셰프'

그 리액션 장면들은 보면 볼수록 다음에는 어떤 장면들이 나올까 기대하게 만드는 면들이 있었다. 또 왕이 등장하고 음식이 나오니 '대장금' 아닐까 싶었던 생각은 갈수록 요리에 진심인 장면들이 채워지면서 오히려 '흑백요리사'에 더 가깝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특히 주목된 건 한식 중심으로 다뤄지던 요리 소재의 K드라마들과 달리, 양식과 한식의 퓨전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프렌치 셰프 콘셉트가 들어있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색다른 색깔로 이것도 '흑백요리사'의 퓨전 경향을 떠올리게 했다.

"프랑스 요리, 이탈리아 요리가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우리는 한국 사람이잖아요. 동양인이란 말이에요. 게다가 사극 베이스를 깔고 있으니까 세계적인 요리를 한식에 접목해서 뭔가 만들어 보는 그 과정에 탄생하는 제3의 요리가 이 시대에 맞는 최고의 파인 다이닝 요리가 아닐까 싶었어요. 거기에 매력을 느꼈고 원작도 그런 방식으로 표현돼 있어서 우리는 이걸 드라마로 접근해 보자 했던 거죠."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왼쪽)와 장태유 감독 / 뉴스1DB

최근 우리의 시각으로 우리 문화를 다루는 것만큼 외국인의 시각으로 보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들이 높아졌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이 만든 소니 작품이라 그런 관점이 투영되어 오히려 글로벌한 보편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한국문화이기 때문에 유니크하지만 동시에 버터 냄새 같은 글로벌하고 보편적인 맛을 내는 콘텐츠라고 할까. '폭군의 셰프'도 그런 느낌이 강했다. 그냥 비빔밥이 아니라, '고추장 버터 비빔밥'이 첫 에피소드로 등장할 때 이러한 한식과 양식의 결합은 이른바 '국뽕'의 관점을 슬쩍 빗겨 있어 외국인들이 봐도 궁금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버터를 밥에 비벼 먹는 건 70년대생이지만 제가 어릴 때부터 먹던 방식이거든요. 버터 대신 마가린을 써서 간장 마가린 밥을 자주 먹었죠. 이런 방식으로 섞는 것과 함께 저희는 새로운 요리를 선보이려고 애썼어요. '흑백 요리사'의 재미는 셰프가 만드는 완전히 자기만의 새로운 요리에 대한 궁금증이잖아요. 본래 원작에는 비빔밥에 고추장만 있었어요. 조선시대에 고추가 없었기 때문에 원작자는 비행기에 가져간 고추장을 넣는 비빔밥을 생각했던 거죠. 버터는 원작에 없던 걸 넣은 건데요, 이런 식으로 드라마로 만들면서 프렌치 셰프적인 색깔을 넣기 위해 새로운 요소들을 계속 넣은 거예요. 수준급 셰프님들이 조언을 줘서 그렇게 한 건데요, 예를 들어 된장국에 청량한 감칠맛이 나야 하는데 뭘 넣어야 할까 하는 데서 원작에서는 이게 바지락이거든요. 근데 셰프님들과 회의를 하면 바지락만으로 그렇게 감칠맛이 날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감칠맛 나는 조개 종류를 찾다가 재첩이 나온 거예요. 재첩은 당시에 한양에서 구할 수 없는 조개였어요. 섬진강에 나는 거라 한양까지 오다 보면 상하잖아요. 근데 우리는 이걸 드라마적 허용으로 가져와 최고의 감칠맛을 위해 넣은 거죠."

장태유 감독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하나의 요리 프로그램을 찍은 느낌마저 들었다. 화면으로는 느낄 수 없는 맛을 리액션 영상이나 다양한 표현을 통해 전달하려는 노력 또한 더해졌다.

"시청자들이 맛을 본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하려고 재료도 극사실주의적으로 촬영하고 편집에도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어요. 특히 신경을 썼던 건 먹는 사람의 모습이었어요. 사실 요리 프로는 요리가 나오면 끝이거든요. '맛있었다' 그러면 끝이에요. 어떻게 맛있었는지 길게 말하면 말할수록 지루하잖아요. 그래서 이걸 말이 아니라 보여주려고 했어요. 입과 확장되는 동공을 찍고 그 사람이 판타지 속에서 보는 맛에 대한 이미지를 넣은 거죠."

◇ 장태유 감독의 퓨전 경향 사극들

'폭군의 셰프'가 고추장에 버터를 넣어 비빔밥으로 내놓은 것처럼, 장태유 감독의 작품들은 여러 장르를 잘 섞어 만들어내 놓은 퓨전 경향이 짙다. 특히 사극에서는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홍천기' 이후 본격화된 느낌인데, 사극이지만 판타지와 멜로가 결합된 형태의 작품이었다.

"'홍천기'는 '바람의 화원'의 계보를 잇는 판타지 사극 멜로였죠. 시대 배경을 잘 알 수 없고 역사적인 배경 대신 인물에 좀 더 방점을 둔 드라마였죠. '밤에 피는 꽃'도 특정한 역사적 사실보다 문화적으로 특이한 조선 사회의 과부, 열녀 문화와 홍길동을 접목한 작품이었죠. 여성 히어로 이야기였던 거죠."

이런 장태유 감독의 사극이 보여주는 경향은 사극보다는 현대극에 더 가깝다고 느끼게 한다. 사극적인 배경을 통해 현대적인 이야기나 문제의식을 담는다고나 할까.

"역사적 지식 없이 봐도 편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에 저도 끌렸던 것 같습니다. 특히 사극 쪽으로는 많이 열려 있어요. 계속 파도 파도 끝나지 않는 세계가 있죠. 음악의 세계도 있고 요리의 세계도 이번 작품에 다 담지 못했거든요. 얼마든지 변주될 수 있는 구석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람의 화원'도 한 번으로 끝났지만 사실 훨씬 더 유명한 화원들도 많이 있죠. 무궁무진합니다. 근데 그렇다고 현대극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tvN '폭군의 셰프 '포스터

사실 '폭군의 셰프'는 12부작으로는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든 작품이었다. 더 많은 이야기가 가능할 텐데 빨리 마무리된 느낌이랄까. 시즌제 같은 걸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도 그런 마음이 굴뚝 같지만, 이야기를 닫힌 구조로 끝내 버려서 시즌2가 나오기는 쉽지 않고요. 만약 나온다면 주인공도 시대도 바뀌고 완전히 다른 버전이 돼야 할 것 같아요. 새롭게 연구해야 하는 거죠. 원작에서 가지고 올 수 있는 건 거의 다 가져왔거든요. 원작은 더 길긴 하지만 뒷부분은 좀 판타지가 많아요. 너무 외국인이 많이 나온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그걸 그대로 드라마에 가져오면 믿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중국 사신단이 오는 데까지만 역사적으로 있을 법하다 하는 느낌이거든요. 한중 요리 대결도 원작에서는 요리 대결이 아니에요. 사신단이 와서 자존심 대결하는 정도인데, 각색을 통해 목숨 걸고 싸우는 경합으로 그렸죠. 사화 내용도 원작에는 많이 안 나와요. 요리 중심으로 되어 있어서죠. 원작자가 말했듯 '아라비안나이트'의 요리 버전처럼 그려졌어요. '오늘 밤도 내 입맛에 맞추지 못하면 넌 죽는다.' 이런 방식이죠. 하지만 드라마는 사화 내용을 빼놓을 수가 없죠. 사화로 상당수가 죽어요. 그래서 지금 그대로는 시즌2가 어렵죠. 한국 드라마는 시즌2가 좀체 없는데 이야기를 닫힌 구조로 만들기 때문이에요. 미드식의 열린 구조를 계속 이어가는 방식과는 사뭇 다르죠. 예전에 SBS 지원을 받아 미국에서 1년 정도 연수를 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시즌제에 대한 접근이 다르다는 걸 알았죠. 워낙 큰 나라라 한 작품 성공한다는 게 훨씬 더 어렵거든요. 그러니까 하나가 성공하면 무조건 이걸 이어가는 거예요. 평생에 한 번 온 기회이기 때문이죠."

◇ 복합장르에서 돋보이는 장태유 감독의 탁월한 균형감각

중국 시장 같은 세계 시장에서 장태유 감독의 존재감을 만들어준 작품은 바로 '별에서 온 그대'다. 이 작품으로 장태유 감독은 중국에서 살다시피 하며 활동했고, 영화도 감독했다. 그런데 '별에서 온 그대' 같은 작품도 장태유 감독 특유의 복합장르 경향이 들어있다. 메인 베이스는 로맨스지만 판타지에 액션, 스릴러 등등 다양한 장르적 색채들이 겹쳐 있다. 장르들이 다양하지만, 이물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 적절한 균형감이 있는 게 장태유 감독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이기도 하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복합장르의 작품을 할 때는 이게 멜로냐 정치물이냐 이런 식으로 제일 크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어디에 있는가에 먼저 초점을 맞춥니다. 똑같이 역사물인 것 같지만 '뿌리 깊은 나무'는 멜로가 아니잖아요. 오히려 정치물에 가깝고 그래서 거기에 힘을 줘서 가는 거죠."

장태유 감독 / 뉴스1DB

장태유 감독의 이러한 복합 장르적 성격은 그가 추구하는 다층적인 재미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하나의 가지로 뻗어 나가기보다는 중간에 재미난 것들 있으면 빼놓지 않고 곁가지로 나갔다가 다시 본 가지로 돌아오는 경향이 있다. 한마디로 밥만 있는 게 아니라 반찬이 많은 작품을 추구하는 느낌이다.

"그건 사실 작가님들이 써주셔야 찍을 수 있는 거라서 제가 만들었다기보다 대본에서 나온 거죠. 물론 대본 회의를 할 때 그런 걸 제가 바라기는 합니다. 작가님들한테 그런 걸 좀 요청하고 부탁하기도 하고 그게 나오면 또 신나게 열심히 찍는 거죠."

그렇게 찍는다고 해도 마지막에 취사 선택을 하는 건 감독의 몫이다. 어떤 작품의 분위기나 흐름이 있는데 여기서 갑자기 웃긴 장면이 나오면은 좀 이상할 수 있는데도 과감하게 그런 장면을 쓸 때가 있다. 장태유 감독은 그런 건 자신이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자신이 있을 때 하는 거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그만의 노하우인 것 같다. 사실 작품에서 이런 곁가지들을 하나하나 빼다 보면 앙상한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맞아요. 이것저것 다 빼면 사실 세상에 처음 보는 이야기는 없거든요. 어디선가 본 얘기고 로그 라인만 보면 스토리는 다 알 수 있거든요. 그것만 가지고 가면 사실은 제가 봐도 좀 지루해요. 그러니까 남들은 어떻겠어요?"

장태유 감독은 본인이 시청자의 눈높이에 딱 맞는 관점으로 본다고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의 작품은 ‘재미의 밀도’가 훨씬 높다. 초, 분 단위로 재미가 없으면 안 된다는 강박 같은 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조바심 때문인 것 같아요. 채널이 돌아갈까 봐."

장태유 감독 / 뉴스1 ⓒ News1

◇ 재미에 진심인 감독, 그가 꿈꾸는 건

장태유 감독은 꽤 오래도록 현업 드라마 감독으로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 하는 작품마다 대부분 성공을 거둔 화려한 경력이 있다. 도대체 이러한 연전연승에는 어떤 비결이 있는 걸까. 작품 선택에 있어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 같은 게 있을까.

"저만 그런 건 아니고 많은 감독이나 배우들이 그럴 것 같은데, 재미가 아닐까요. 대본을 봤는데 너무 재밌다. 그러면 이게 왜 재밌지. 처음 보는 요소가 있어서 그런가. 새롭게 해석한 시각이 있나. 매력적인 캐릭터가 나오면 이건 누가 하면 너무 잘하겠다. 이런 걸 생각합니다. 사실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고 또 나올 수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 와중에도 아주 조금씩 다른 게 모이고 합쳐져서 새롭게 느껴지게 하는 게 있죠. 그런 대본, 원작을 만나면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재미를 추구하는 이들의 특징이지만, 본 거 또 보면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지루한 걸 참지 못한다. 그래서 작품마다 약간의 강박이 느껴질 정도로 재미를 추구하는 부분이 생긴 거라 생각된다.

"제가 좀 얼리 어답터 같은 그런 사람이거든요. 새로운 시계가 나오면 차보고 새로운 신발이 나오면 신어보고 이게 진짜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인지 몸으로 느껴보는 식이죠. 요즘은 너무 시대가 급변해서 많은 것들이 새롭게 나오고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빨리 경험하고 반영해 이 시대에 맞는 그런 이야기를 해보려고 노력해요."

장태유 감독은 K드라마의 지분이 분명한 감독 중 한 사람이다. 전 세계적으로 K드라마, K컬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현재, 그가 가진 포부나 바람 같은 건 뭘까.

"K컬처가 세계적으로 많이 성장하고 성공했잖아요. 특히 K팝 엄청나게 성공했고 영화도 아카데미상을 탔고 애니메이션도 저렇게 잘 나가는 시대가 왔는데 콘텐츠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드라마로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흐름을 만들고 싶어요. 좋은 감독분들 또 우수한 콘텐츠를 쓰는 좋은 작가님들 많잖아요. 그런 분들이 이제부터 한 5년, 10년 동안 이런 흐름을 한번 만들어가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한국 드라마가 해마다 에미상에 노미네이트 되고, 안 올라가면 섭섭한 그런 시대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사극 같은 장르는 독특한 한국적 차별성을 갖고 있어 글로벌 성공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싶다. 물론 거기에는 이를 좀 더 보편적인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장르에 대한 이해나 퓨전에 대한 감각이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를 가장 잘할 수 있는 감독이 바로 장태유 감독이 아닐까 싶다. 이미 세계 무대에서 K드라마의 위상을 높여온 감독이지만 앞으로도 장태유라는 이름 석 자가 OTT 시대 글로벌 무대에서도 자주 불릴 거라는 기대를 갖게 만드는 대목이다.

* 유튜브 채널 '뉴스1연예TV'에서 관련 영상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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