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이상이 버틴 고용…고령친화 일자리는 23% 불과, 미국의 절반

60대 비정규직 300만 돌파…고령층이 전체 고용 주도
노인빈곤 OECD 최고 수준…"일자리 재설계·노후소득 보강 시급"

서울의 고물상 앞에서 한 노인이 리어카에 쌓인 폐지를 정리하고 있다. ⓒ 뉴스1 신웅수 기자

(세종=뉴스1) 심서현 기자 = 전체 취업자 증가세가 둔화한 가운데 60세 이상 취업자가 고용을 떠받치고 있지만, 고령층이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는 일자리 여건은 미국 등 주요국에 비해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고령친화도가 높은 직종에 종사하는 취업자 비중은 전체의 23%로 미국의 40%보다 크게 낮았다. 반면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으로, 부족한 노후소득 탓에 고령층이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고령자가 기존 일자리에서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업무와 근무방식을 재설계하는 한편, 중소기업의 일자리 전환 비용을 지원하고 연금 등 노후소득 보장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고령층이 떠받친 고용…비정규직 증가도 60세 이상이 주도

21일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는 전년 동월보다 6만 3000명 증가했다. 이 가운데 60세 이상 취업자는 21만 1000명 늘었다. 60세 이상을 제외할 경우 취업자는 오히려 14만 8000명 감소한 셈이다.

올해 들어 이 같은 흐름은 반복되고 있다. 지난 4월 전체 취업자가 7만 4000명 늘어나는 동안 60세 이상은 18만 9000명 증가했다. 5월에는 전체 취업자가 4만 명 감소했지만 60세 이상은 17만 1000명 늘었다.

반면 20대 취업자는 4월 19만 5000명, 5월 25만 1000명 각각 감소했다. 전체 취업자 증가가 고령층에 집중되고 청년층과 핵심 생산연령층의 고용은 줄어드는 연령별 격차가 이어지고 있다.

고령층 취업 증가는 상대적으로 고용 안정성이 낮은 일자리에서도 두드러졌다. 가장 최근 연간 통계인 '2025년 8월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보면 60세 이상 비정규직 근로자는 304만 4000명으로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많았다. 1년 전보다 23만 3000명 증가해 전체 비정규직 증가 폭인 11만 명을 웃돌았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무료급식소를 찾은 어르신들이 식사를 위해 줄을 서고 있다. ⓒ 뉴스1 이호윤 기자
고령친화 일자리 비중 23%…미국은 40%

고령층 취업자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이들이 오래 일할 수 있는 일자리의 비중은 낮았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캐런 에글스턴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김형석 서울대 경제학부 박사과정생과 공동 집필한 논문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에서 고령친화도가 상위 25%인 직종의 고용 비중은 23%였다. 미국의 약 40%보다 17%포인트(p) 낮은 수준이다.

연구진은 2000~2020년 국내 직업별 고용자료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교수 등이 개발한 고령친화지수(AFI)를 적용했다. 신체적 부담과 근무시간의 유연성, 업무 자율성, 근무환경 등 고령자가 오래 일하는 데 필요한 일자리 특성을 직종별로 분석했다.

분석 결과 한국 일자리의 고령친화도는 20년 동안 개선됐지만 증가 속도는 미국보다 느렸다. 고령친화 일자리 확대의 혜택도 여성과 대졸자 등에게 상대적으로 많이 돌아간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의 높은 고령층 고용률은 안정적인 노후소득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상대적 빈곤율은 약 40%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OECD는 한국에서 근로자가 주된 일자리에서 비교적 이른 나이에 퇴직한 뒤 임금과 고용 안정성이 낮은 두 번째 일자리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해 왔다.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에서 시민이 상담을 받는 모습. ⓒ 뉴스1 김민지 기자
전문가들 "일자리 재설계하고 노후소득 보강해야"

이 교수는 고령친화 일자리를 늘리려면 기업이 기존 일자리와 근무방식을 고령자에게 맞게 바꾸는 투자를 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나이 든 사람을 오랫동안 고용하려면 일자리를 유연하게 만들고 일하는 방식도 바꾸는 투자가 필요하다"며 "대기업은 이런 투자를 할 여력이 있겠지만 중소기업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거나 비용 부담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중소기업에 모범 사례를 제시하고 고령친화적인 일자리로 전환하는 데 일정한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며 "일·가정 양립 지원과 마찬가지로 일자리의 특성을 바꾸는 데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고령층 빈곤을 줄이려면 일자리의 질과 노후소득을 함께 개선해야 한다고도 봤다.

이 교수는 "빈곤한 고령층 가운데 많은 분이 일을 하고 있지만 일을 해도 빈곤하다"며 "일자리의 질이 낮고 연금소득도 부족하기 때문에 힘든데도 일을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양질의 일자리 공급뿐 아니라 연금 등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노후소득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고령층이 일을 할 수밖에 없지만, 이들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비정규직이나 계약직 등 임금이 낮은 일자리가 대부분"이라며 "일하려는 고령층에 비해 좋은 일자리의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선진국처럼 연금을 확충해 고령층이 생계를 위해 반드시 저임금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을 줄여야 한다"며 "고령친화 일자리 확대와 함께 안정적인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일자리정보 게시판 모습. ⓒ 뉴스1 김성진 기자

seohyun.sh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