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정부 1년] 성장·수출 반등, 관세·물가 대응 선방…저성장 체질개선은 과제

1분기 GDP 주요국 최상위, 역대급 수출…반도체 편중·구조개혁 미비 한계
전문가 "단기 처방 넘어 새 먹거리 발굴해야…3고 대응도 시급 과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3회 국무회의 겸 제10차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질문하고 있다. 2026.5.26 ⓒ 뉴스1 허경 기자

(세종=뉴스1) 전민 기자 = 이재명 정부 출범 1년 동안 한국 경제가 예상보다 강한 회복세를 보이며 주요 거시지표가 일제히 개선됐다. 미국발 관세 압박과 중동전쟁에 따른 고유가 충격 등 대외 악재 속에서도 수출은 세계 5위권에 진입했고,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은 5년 반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상수지 역시 분기 기준 사상 최대 흑자를 내며 수출 주도 회복세를 뒷받침했다.

정부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과 물가 안정 대책,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을 주요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다만 반도체 호황에 기댄 성장 구조와 내수 부진, 청년 고용 악화,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 현상' 등 구조적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어 집권 2년 차 경제정책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1분기 성장 OECD 중 1위…역대 최고 수출에 세계 5위 진입

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1분기(1~3월)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1.7%를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1.2%로 반등했다가 4분기 마이너스(-)0.2%로 다시 주저앉았던 성장률이 올해 들어 큰 폭으로 반등한 것이다.

2020년 3분기(2.2%) 이후 5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분기 성장률로, 한은이 지난 2월 제시한 전망치(0.9%)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속보치를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22개국 중에서도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성장을 이끈 핵심 동력은 수출이었다. 1분기 수출은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품목을 중심으로 전 분기 대비 5.1% 급증했다.

수출액은 분기마다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3분기 1850억 달러(전년 대비 6.6%↑), 4분기 1898억 달러(23.1%↑)로 계단식 상승세를 이어간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는 2206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8.3% 급증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집계 기준 올해 1~2월 한국의 수출 순위는 중국·미국·독일·네덜란드에 이어 세계 5위로, 일본(6위)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올해 1분기 경상수지도 737억 8000만 달러 흑자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연간 경상수지 실적의 60%에 육박하는 규모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동전쟁 이후 원유·공급망 측면의 대응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수출·경상수지 흑자·주가 상승·세수 확대 등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수출 반등의 배경에는 대미 관세 협상 타결의 효과도 있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 미국과의 통상 협상을 진행해 지난해 7월 30일 상호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일본·유럽연합(EU) 등 주요 경쟁국과 동등한 수준의 관세 환경을 확보한 것이다.

ⓒ 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최고가격제 공격적 물가 대응에 2% 방어…소비·고유가 지원도

중동전쟁 발발에 따른 국제유가 폭등이라는 돌발 변수 속에서도 물가를 2%대로 유지한 점 역시 정부가 내세우는 성과 중 하나다.

올해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6%를 기록했다. 같은 달 미국(3.8%), 호주(4.2%), 영국(2.8%) 등 주요국과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준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이 소비자 물가 방어의 동력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지난 3월 1997년 유가 완전 자유화 이후 29년 만에 석유 최고가격제를 부활시켰다.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도매가격에 상한선을 두는 초강수를 택한 것이다.

김정식 교수는 "지금은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인 만큼 정부가 최고가격제 등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유류세 인하와 병행한 결과 4월 기준으로만 물가 상승률을 1.2%포인트(p) 낮춘 효과를 냈다고 정부는 분석했다. 이 조치가 없었다면 4월 물가 상승률은 3%를 훌쩍 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밖에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 31조 8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전 국민에게 지급했다. 1인당 기본 15만 원이며 차상위계층은 30만 원, 기초생활수급자는 40만 원을 받았다. 올해는 중동전쟁 대응을 위해 26조 2000억 원 규모의 추경을 29일 만에 처리했으며, 이를 통해 고유가 지원금도 배포했다.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시 서초구 강남대로 aT센터에서 열린 2026 환경산업 일자리 박람회를 찾은 학생 및 구직자 등이 채용공고게시대를 살펴보고 있다. 2026.5.19 ⓒ 뉴스1 박정호 기자
반도체 편중에 K자형 성장…산업 구조개혁·청년 일자리 정책 시급

그러나 성장의 이면에 가려진 여전한 구조적 취약성은 집권 2년 차의 핵심 경제 과제로 지목된다.

가장 두드러진 문제는 반도체 편중 현상이다.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에 따른 반도체 슈퍼사이클 덕분에 성장률과 수출이 반등했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주력산업의 성장 동력은 여전히 뚜렷하지 않다.

특히 철강·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은 미국의 관세 정책과 중동 사태에 따른 공급망 충격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반도체가 질주하는 사이 나머지 산업이 뒤처지는 'K자형 성장'이 심화하면서,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중장기 육성 전략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주요 기관들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 중후반으로 잠재성장률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반도체 슈퍼사이클이라는 외생 변수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만큼, 성장률 지표만으로 한국 경제의 체질이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정 지출 의존도 심화 역시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소비쿠폰과 추경은 내수 진작에 일정 부분 효과를 냈지만, 대규모 현금성 지출의 적정성을 둘러싼 찬반 논란은 여전하다. 경기 진작 효과가 실질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지속 가능한 소비 창출 동력으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도 공존한다.

물가·금리·환율의 이른바 '3고 현상'도 여전히 민생의 발목을 잡고 있다. 중동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2분기 물가 상승 압력이 한층 더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달러·원 환율은 최근 1500원을 넘나들며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김정식 교수도 "환율이 많이 오른 점, 출범 초기 부동산 가격 급등과 유동성 확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노동 환경, 내수는 아쉬운 부분"이라며 "내수 진작을 통한 경기 회복 확산과 환율 안정이 앞으로의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허준영 교수는 "잠재성장률 제고 정책, 산업 정책 등 구조적인 정책에서는 아직까지 성과가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청년 고용시장도 좀처럼 온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4월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3.7%로 전년 동월 대비 1.6%p 하락하며 24개월 연속 내리막을 이어갔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5~2009년 이후 두 번째로 긴 하락세다. 청년 실업률도 7.1%로 전체 실업률(2.9%)의 두 배를 훌쩍 넘으며, 취업도 구직도 포기한 채 그냥 쉬는 청년 인구도 39만 1000명에 달한다.

허 교수는 철강·석유화학 등 구조조정이 필요한 산업에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미래 주력 산업으로 육성해야 할 분야에는 전략적 보조금 지원 등을 통한 인큐베이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청년 일자리 문제는 정부가 명시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단순한 정부 일자리 사업이 아니라 산업 정책과 연계해 제조업 분야의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경제 지표는 괜찮지만, 반도체 사이클이 끝나면 그다음 산업이 없다는 게 문제"라며 "경기가 좋을 때 AI·빅데이터·양자컴퓨터·항공우주 등 미래 산업 육성 정책을 보다 구체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min7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