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하이닉스 수준으로"…산업계 흔드는 '성과급' 청구서

SK하이닉스가 띄운 고액 성과급…삼전·카카오 등 대기업 노조로
재계 "노란봉투법, 노조 투쟁 동력 키워"…정부 "과도한 해석"

최승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11일 세종시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삼정전자 사후조정 회의를 위해 조정회의실로 입장하고 있다 2026.5.11 ⓒ 뉴스1 김기남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반도체 업계를 중심으로 촉발된 성과급 갈등이 자동차·IT·바이오 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올해 노동 현장의 '춘투'(春鬪·노동조합들이 매년 봄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공동투쟁을 벌이는 것) 분위기가 한층 격화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 노조들이 영업이익의 20~30% 수준에 달하는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며 강경 투쟁에 나서자, 재계 안팎에서는 최근 시행된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이 노조의 협상력을 키운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된다. 다만 정부는 이를 과도한 확대 해석으로 보며, 노사 간 자율 교섭 원칙을 거듭 강조하는 모습이다.

12일 노동당국과 재계 등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확정한 이후 영업이익 일정 비율을 성과급 재원으로 요구하는 사례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삼전 노조 "성과급 상한 폐지"…카카오 노조 등 여타 산업군으로 확산

삼성전자(005930) 노조가 대표적이다. 삼전 노조는 '성과급 상한 폐지'와 '영업이익 15%의 성과급 배분'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300조 원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반도체 부문 임직원 1인당 6억 원에 가까운 성과급을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측은 특별포상으로 경쟁사를 뛰어넘는 최고 수준의 보상을 하겠다면서도 성과급 상한 폐지를 제도화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당사자 간 합의에 실패한 노사는 전날(11일)부터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로 마지막 담판을 벌이고 있다. 협상 결과는 이날 중 나올 예정이다.

협상 불발 시 삼전 노조는 오는 21일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파업 현실화하면 반도체 생산 차질뿐 아니라 협력업체 피해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삼성전자 1차 협력사는 1000곳이 넘고, 2·3차 협력사까지 포함하면 연관 업체는 1700여 곳에 달한다. 실제 일부 협력사들은 생산 차질 가능성에 대비해 장비 반입 납기를 앞당기는 등 비상 대응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투자은행(IB)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이번 파업으로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이 40조 원 넘게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현재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에 돌입한 현대자동차(005380)·기아차(000270) 노조도 지난해 순이익의 30% 수준 성과급 지급을 요구했다. 현대차 노조 요구안이 현실화할 경우 지급 규모는 약 3조 1000억 원에 달한다.

카카오(035720) 노조 역시 영업이익의 13~15% 수준 성과급을 요구하며 최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조정이 결렬될 경우 창사 이래 첫 본사 파업 가능성도 거론된다. LG유플러스(032640) 노조도 영업이익의 30% 지급을 요구하며 사측과 충돌하고 있고,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노조도 20% 성과급을 요구하며 창사 첫 파업에 돌입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노란봉투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7.29 ⓒ 뉴스1 임세영 기자
노란봉투법이 화근?…노동장관 "갈등 자체 없애는 법 아닌 '대화' 제도화한 법"

이런 흐름을 두고 산업계 일각에서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노조의 교섭 동력이 강화한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 제한과 노동쟁의 범위 확대 등이 노조의 강경 투쟁에 대한 법적 부담을 줄였다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일차적으로는 SK하이닉스처럼 성과급을 대규모로 지급한 사례가 나오면서 대기업 노조 사이에선 '우리도 그 정도는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강해진 측면이 있다"면서 "여기에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파업이나 쟁의행위에 대한 부담이 이전보다 줄었다는 인식까지 겹치면서, 예전보다 훨씬 강경하게 교섭에 나서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는 게 재계의 공통된 시각"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정부는 노란봉투법과 최근 대기업 노사 갈등을 직접 연결하는 데는 선을 긋고 있다. 특히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란봉투법이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노란봉투법은)갈등 자체를 없애는 법이 아니라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노사관계의 해법으로 '대화'를 제도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일 전국 기관장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그는 "진정성 있는 대화를 조속히 성사시켜 달라"며 "삼성전자의 성과에는 노동자들의 헌신뿐 아니라 협력업체의 노력과 정부 지원, 지역사회의 협조도 있었다"고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노란봉투법이 노조의 투쟁을 조장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교섭과 조정 중심의 질서 있는 노사 관계를 만들기 위한 장치라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삼전 노조 사태가 불거진 후 잇단 공식 발언을 통해서도 "노사 문제는 노사 자치에 기반해 단체교섭 틀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삼전 노사의 중노위 사후조정 절차가 시작된 전날(11일) 정책점검회의 겸 비상고용노동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는 "우리 노사관계가 각자의 이익 추구를 넘어 상생의 노사관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이번 사안을 계기로 기업의 바람직한 성과 공유와 분배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길 바란다"며 "정부도 이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는 최근 대기업 중심의 강경 춘투 흐름을 법 시행의 결과로 단순 해석하기보다, 성과 배분과 노동 가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하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다만 삼성전자 등 주요 사업장의 협상 결과가 향후 대기업 노사의 성과급 기준과 교섭 관행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올해 노동 현장의 긴장감도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euni12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