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경상흑자 '환율 완충판'…서학개미 열풍에 하락폭은 제한적
달러 벌어도 해외주식으로 '유출'…'경상흑자=원화 강세' 공식 옛말
전문가들 "서학개미·국민연금 달러 수요, 경상흑자 상쇄 이상"
- 전민 기자
(세종=뉴스1) 전민 기자 = 경상수지가 역대 최대 흑자 행진을 이어가면서 외환시장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경상흑자 확대는 달러 공급을 늘려 달러·원 환율 상승 압력을 완충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처럼 '경상흑자=원화 강세'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공식은 이미 깨진 지 오래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민간의 해외 증권투자가 급증하면서 경상흑자 효과를 상쇄하고도 남는 구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경상수지는 373억 3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2월(231억 9000만 달러)에 이어 두 달 연속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1분기 누적 경상수지 흑자 규모도 737억 8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194억 9000만 달러)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한 분기 만에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의 60%를 기록했다.
전통적으로 경상수지 흑자는 대표적인 원화 강세(환율 하락) 요인으로 꼽힌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로 유입되면서 외환 공급이 확대되고, 이에 따라 원화 가치가 상승하는 구조다. 실제로 2015년 이전까지는 경상수지 흑자폭이 확대될수록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뚜렷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2015년을 기점으로 달라진 것으로 분석된다. 한은에 따르면 2015년 이후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되는 가운데서도 실질환율은 오히려 상승(원화 절하)하는 현상이 상당 기간 지속됐다. 경상흑자로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로 환류되지 않고 해외로 재투자되는 구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경상수지 흑자의 상당 부분이 한국은행의 준비자산(외환보유액) 증가로 이어졌다. 중앙은행이 달러를 흡수해 시장에서 제거하는 효과를 냈다.
하지만 이후에는 민간의 해외 포트폴리오 투자를 중심으로 자본이 축적되는 경향이 강화됐다. 2025년 말 기준 우리나라 전체 대외자산에서 준비자산의 비중은 14.9%에 불과한 반면, 증권투자 비중은 44.1%에 달한다.
특히 우리나라 해외 증권투자의 미국 자산 쏠림 현상도 두드러진다. 전체 대외 증권투자 중 63.4%, 주식투자 중 67.7%가 미국에 집중돼 있다. 이는 선진국 평균(전체 25.3%, 주식 29.5%)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달러 강세에 대한 일방향적 기대가 형성되면서 달러 수요가 구조적으로 확대되는 셈이다. 여기에 고령화에 따른 가계 저축률 상승도 환율 상승 압력을 높이는 요인이다.
한은 연구진 추산에 따르면 가계 순저축률이 오르기 시작한 2011년 말부터 2025년 3분기까지 저축수요 충격이 실질환율을 약 12% 상승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또 우리나라 외환시장 심도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다는 점도 환율 변동성을 키우는 구조적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충격 발생 시 우리나라 원화의 절하 정도가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보다 크게 나타난다는 분석도 있다. 2000년 이후 달러·원 실질환율 변동의 80% 이상이 자본유출입에 따른 '금융충격'에 기인한다는 한은 연구진의 분석도 이를 뒷받침한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상흑자 확대는 원화 강세 요인이 맞지만, 서학개미로 대표되는 개인투자자와 국민연금 등 기관의 해외 주식 투자 규모가 워낙 커 경상흑자로 유입되는 달러를 상쇄하고도 남는 수준"이라며 "과거처럼 경상흑자가 곧바로 환율 안정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고 진단했다.
경상흑자가 과거와 같은 강력한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고 있지만, 최근 환율 흐름은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3월 말 1530원을 넘어서며 고점을 찍었던 달러·원 환율은 5월 들어 1450원대까지 내려오며 3월 중동전쟁 발발 직전 수준에 근접했다.
이는 경상흑자보다는 여러 요인이 맞물린 결과다. 중동전쟁 긴장 완화로 위험선호 심리가 살아나면서 1분기 대규모 순매도를 기록했던 외국인 자금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증시에 복귀하고 있고, 거주자 해외주식투자도 다소 축소되면서 금융시장 달러수지가 흑자로 전환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동결 기조를 유지하는 반면, 호주·유럽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달러 약세 압력이 커진 것도 환율 하락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수출업체의 달러 매도(네고) 물량 복귀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한국 일평균 무역수지는 1~4월 평균 9억 달러를 유지하고 있으며 수출업체 네고 물량이 다시 외환시장으로 복귀하며 월말 달러 공급이 증가하는 패턴이 재개됐다"며 "기업 외화예금도 3월 134억 달러 감소하며 수출업체가 외화 보유에서 적극적인 매도 대응으로 환위험 관리 전략을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 따른 외국인 채권 매수도 추가적인 달러 공급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민 연구원은 수출업체 네고 물량 복귀와 외국인 자금 유입 등을 근거로 5월 달러·원 환율이 1420~1470원 범위에서 움직이며, 월말로 갈수록 하방 압력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중동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재점화될 경우 투기적 원화 약세 베팅이 재차 증가하며 유가 상승에 동조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하방 경직성 역시 이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min78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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