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도 못 버텨" 석화업계 셧다운 공포에…정부 '늑장 대응' 논란

산업부 "이번 주 중 나프타 수입 제한 조치…관계 부처 협의"
여천 NCC 공장 '셧다운'…업계선 이미 "한 달도 버티기 힘들어"

이란 전쟁 국면에서 인도의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시발릭호가 지난 16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인도 구자라트주 문드라항에 도착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세종=뉴스1) 이정현 김승준 기자 = 정부가 4월 원유 수급 위기설에 대해 "문제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일부 공장이 나프타 재고 고갈로 가동을 멈추는(셧다운) 등 이미 생산 차질이 현실화하며 정책 판단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업계는 한 달도 버티기 어려운 수준의 원료 부족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이번 주 중 나프타 수출 제한 등 긴급 조치를 시행할 계획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미 생산 차질이 발생한 상황에서 뒤늦은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어, 초기 대응 시점과 정책 판단의 괴리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중동상황 대응본부' 일일 브리핑에서 "나프타의 생산·도입 물량을 의무적으로 보고받고, 매점매석을 금지하고, 수출을 제한할 수 있는 조치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 실장은 이번 주 안에 관련 조치를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나프타 수출 막고 내수 전환…정부 "이번 주 수출제한 조치 준비"

정부의 이번 대응은 이미 일부 석유화학 공장에서 가동 중단이 발생한 데 따른 조치로 보인다. 나프타는 석유화학제품의 기본 소재로 이른바 '산업의 쌀'로 불린다. 우리나라의 경우 55%가량은 국내 정유사가 생산하고, 나머지는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출 제한 조치는 국내 정유사가 생산한 나프타의 수출 물량을 국내로 돌려 수급난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여천NCC는 전날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프로필렌 전용 공장(OCU)의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해당 설비는 연간 14만 톤 규모의 프로필렌을 생산하는 시설로,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석유화학 공정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다.

LG화학도 이번 주 중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에 있는 2공장 가동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조만간 공시할 예정이다. LG화학은 여수에서 1공장(120만 톤), 2공장(80만 톤) 나프타분해시설(NCC) 2기를 가동 중이다.

2공장은 2021년부터 상업 가동을 시작한 만큼 1공장보다 신식 설비지만, 연산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연계된 다운스트림 품목 수도 적은 편이다. 이 때문에 LG화학은 규모가 크고 후방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1공장을 재고 활용을 통해 최대한 오래 가동하는 데 집중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가동 중단은 최근 심화한 나프타 수급난으로 원료 확보가 어려워진 데 따른 불가피한 조치다.

업계에서는 나프타 재고가 통상 2~3주 수준에 불과해, 현재와 같은 공급 차질이 지속될 경우 한 달도 버티기 어렵다는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여천NCC를 비롯한 주요 업체들은 설비 가동률을 최저 수준까지 낮추며 대응에 나선 상태다. 여천NCC의 경우 가동률을 약 60% 수준까지 낮춘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면서도 원료 소진 속도를 늦추기 위한 선택이다.

특히 여천NCC가 국내 석화업계에서 처음으로 '공급 불가항력'을 선언한 점은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불가항력은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외부 요인으로 계약 이행이 어려울 때 면책을 주장하는 조치로, 통상 위기 상황에서 제한적으로 활용된다. 롯데케미칼, LG화학, 한화솔루션 등 주요 업체들도 잇따라 불가항력 가능성을 고지하며 비상 대응 체제에 돌입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나프타(납사)’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비닐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식품 포장재에 이어 종량제봉투까지 품절 사례가 잇따르는 등 '비닐 대란'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24일 서울 강남구의 한 편의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종량제봉투. 2026.3.24 ⓒ 뉴스1 김진환 기자
정부, '실기(失期)' 지적에…"일부 설비 가동 중단은 업계 경제성 확보 조치"

이번 수급난의 직접적인 원인은 중동 지역 긴장 고조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다. 국내로 들어오는 나프타의 절반 이상이 해당 해협을 통과하는 만큼, 봉쇄 조치가 장기화하면 원료 확보 자체가 어려워진다.

정부는 그간 수급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지만, 현장에서는 이미 생산 차질이 발생하며 판단이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는 뒤늦게 나프타를 경제안보 품목으로 한시 지정하고, 국내 생산 물량의 수출 제한 조치 등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원료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수출을 막는 조치만으로는 실질적인 수급 개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산 나프타 도입 등 대체 공급망 확보 방안도 검토 중이지만, 글로벌 공급 차질로 가격이 급등하면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작동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산업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NCC가 멈출 경우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 생산이 중단되고, 이를 원료로 사용하는 자동차·섬유·건설·플라스틱 등 하공정 산업 전반에 연쇄적인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 공급망 전반에 걸친 충격이 현실화할 경우 파급력은 단기간에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결국 "관리가 가능하다"는 정부의 초기 판단과 달리, 현장에서는 이미 생산 중단이라는 형태로 위기가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초기 대응이 늦어진 데다 상황 인식 또한 현실과 괴리가 있었던 만큼, 보다 선제적이고 실효성 있는 공급망 대응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정부는 일부 설비 가동 중단을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양기욱 실장은 중동상황 대응 일일 브리핑에서 "가동을 중단한 여천 NCC 공장은 프로필렌을 주로 생산하는 시설이 아닌 OCU 공장으로 알고 있다"면서 "연 14만 톤 정도 생산하는 곳이라 사실 공급 차질에 큰 이슈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장 작은 시설을 하나 세우고, 나머지 공장의 가동률을 올리면서 경제성을 높이기 위한 업계 조치로 받아들인다"며 "수급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갑작스러운 충격이 가해져 공장 가동을 중단한 상황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euni12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