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시행]하청 교섭권 보장 첫발…'파업 남발·경영 위축' 우려도

하청 노동권 제도권 편입…원청 교섭 의무화·파업 손배 책임 제한
"경영권 침해·파업 남발" 우려 속…정부, 3개월간 현장 집중 점검

지난해 8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8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재석 186인, 찬성 183인, 반대 3인, 기권 0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뉴스1 유승관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오는 10일부터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시행된다. 하청 노동자도 자신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청 기업과 직접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파업 등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 법 시행은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확대하고 노동자의 교섭권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노사관계 구조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 확대와 손해배상 책임 제한 등을 통해 노조 활동 위축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경영계에서는 불법 파업에 대한 억제력이 약해지고 경영상 판단까지 노사 갈등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는 시행 초기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첫 3개월을 '집중 점검 기간'으로 운영하며 현장 상황을 점검할 계획이다.

하청 노동자도 원청과 교섭 가능…원청, 교섭상대 최소 2곳으로 늘어

법 시행으로 바뀔 가장 큰 변화는 '사용자 범위'의 확장이다. 원청 기업의 교섭 책임이 커지고, 하청 노동자의 교섭 권한이 확대되는 구조가 핵심이다.

기존에는 노동조합법에서 사용자를 보통 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사업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하청업체 노동자의 경우 법적으로는 하청업체가 사용자로 간주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법 시행 후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노동자의 임금이나 근로조건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기업이라면 직접 고용 관계가 없더라도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원청과 하청 구조다. 앞으로는 하청 노동자가 자신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원청 기업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개정 노동조합 원·하청 상생 교섭절차 매뉴얼'에는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다.

주요 내용을 보면 노동부는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의 교섭단위가 다르다고 해석했다. 교섭권의 범위 및 사용자의 책임 범위, 근로자의 특성, 이해관계, 근로조건 결정 방식 등에 있어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로써 오는 10일 법이 시행되면 원청 사용자의 교섭창구는 원청 노조, 하청 노조로 최소 2개가 된다.

이에 따라 원청 기업은 기존처럼 자사 노조와의 교섭뿐 아니라 하청 노동자 노조와도 별도의 교섭을 진행해야 하는 구조가 된다.

또 하청 노조는 기본적으로 전체가 함께 교섭에 나서야 하지만, 일정 요건을 갖추면 노동위원회 판단을 통해 교섭단위를 분리할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노조가 원하면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의 공동 교섭도 가능하다.

이 외에도 원청 사용자는 교섭 요구 사실을 다른 하청 노조와 노동자가 알 수 있도록 공고해야 한다. 이를 불이행하면 사법처리 대상이 된다.

ⓒ 뉴스1 양혜림 디자이너
파업 손해배상 청구 제한…노동자 개인 책임 범위 명확화

이번 개정안의 또 다른 핵심은 파업 등 쟁의행위와 관련된 손해배상 책임 규정이다.

기존에는 불법 쟁의행위로 판단될 경우 기업이 노조뿐 아니라 개별 노동자에게도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있었다.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나 가압류가 이어지면서 노조 활동이 위축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과거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배 소송을 계기로 시민들이 노란 봉투에 후원금을 보내는 모금 운동이 벌어지면서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개정안은 이런 문제를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앞으로는 쟁의행위와 관련해 노동자 개인에게 무분별하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제한된다. 또 책임을 묻더라도 노동자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 여부, 실제 행위와 손해 사이의 관계 등을 따져 책임 범위를 정하도록 했다.

노동계는 '과도한 손해배상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평가한다. 반면 기업계는 불법 파업에 대한 억제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8월 24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8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전국금속노조 유최안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조합원의 손을 잡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 가결을 지켜보고 있다.ⓒ 뉴스1 유승관 기자
구조조정·사업재편도 쟁의 대상…노동계 "교섭력 강화" vs 경영계 "경영 부담"

노동쟁의의 범위도 일부 확대된다. 기존 법에서는 노동쟁의 대상이 주로 임금, 근로시간, 복지 등 근로조건을 직접적으로 결정하는 문제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개정안에서는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면 쟁의 대상이 될 여지가 커졌다. 예컨대 구조조정이나 사업 재편 등 기업의 경영상 결정이 노동조건에 큰 영향을 미칠 경우, 노조가 이를 교섭 의제로 삼거나 쟁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또 단체협약을 이행하지 않는 문제 역시 노동쟁의 대상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 노동계는 이를 노조의 교섭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변화로 평가하는 반면, 경영계는 기업의 경영 판단까지 노사 갈등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 시행 이후 교섭 범위와 사용자 책임을 둘러싼 해석을 놓고 노사 간 갈등이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법 시행으로 노사관계 구조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다만 일부에서는 충분한 숙의 과정이 부족했다는 점을 들어 시행 초기 혼란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한다.

정부는 오는 10일 노란봉투법 시행과 관련해 첫 3개월을 '집중 점검 기간'으로 운영하며 현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관련 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는 일선 현장의 혼란과 기업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현장 소통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준비를 해왔다"고 밝혔다.

정부는 자문기구인 '단체교섭 판단지원위원회'와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사용자성 판단 관련 사례를 신속히 축적·공유함으로써 현장의 불필요한 혼선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euni12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