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흔들면 본보기 압박 온다"…상호관세 무효에도 韓경제 살얼음판

트럼프 '15% 보편관세' 전방위 압박…경제 불확실성 장기화 우려
전문가 "합의 조정보다 실리 우선…대미투자 유연성·조용한 외교 시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연방대법원의 관세 위법 판결 이후 기자회견에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2026.2.20 ⓒ 로이터=뉴스1

(세종=뉴스1) 이정현 나혜윤 김승준 기자 =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를 위법으로 판단했지만, 한국 정부와 기업이 이를 계기로 기존 한미 통상 합의나 대미 전략투자 계획의 조정을 먼저 거론하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결로 상호관세는 무효화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곧바로 10% 이상의 글로벌 관세와 품목별 관세를 통해 정책 유지 의지를 드러낸 만큼, 한국 경제는 주요 수출 품목인 자동차·철강·반도체 경쟁력 약화, 수출 채산성 저하, 성장률 하방 압력, 환율·금리 변동성 증가, 기업의 공급망·투자 부담 확대 등 새로운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관세 형태가 바뀌더라도 대외 압박 기조 자체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는 외교·입법 대응 속도를 높이고, 기업은 환급 대응과 리스크 관리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트럼프, 본보기 삼을 가능성…협상 흔들면 역효과"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22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미법원의 위법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트럼프 2기 행정부와 맺은 무역 협상을 상대국이 흔들려고 한다면, 미 행정부는 반드시 더 강한 보복 조치로 본보기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허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판결 직후 기자회견에서 '모든 협상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힌 점을 근거로 들며 협상 틀 자체는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관세 환급 문제에 대해서도 '자동 환급은 불가하며 소송으로 2~5년간 받아 가라'고 메시지를 낸 것은 "쉽게 돌려주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그는 또 "상호관세 외에도 무역법 122조,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 관세법 338조, 수입 라이선스 수수료 등 다양한 대체 수단이 거론된 상태"라며 "이들 조치를 통해 상호관세 폐지에 따른 세수 감소분을 만회하려 할 경우 우리 입장에서는 상당한 압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 직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 국가에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고, 이후 추가 관세율을 15%로 올리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는 국제수지 대응을 명분으로 최대 15% 관세를 150일간 부과할 수 있는 무역법 122조에 근거한 조치다.

한 통상 전문가는 "한국의 대미 수출 구조상 상호관세보다 자동차·철강·알루미늄 같은 품목관세 영향이 더 크다"며 "무역확장법 232조 품목관세가 확대되면 한국에 유리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거시경제·수출 영향…불확실성 장기화 우려

이번 판결로 상호관세는 무효화됐지만, 10% 이상의 글로벌 관세가 기본 틀로 남고, 품목별 관세 가능성이 병행 거론되는 상황에서 거시경제적 불확실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철강·반도체 등이 관세 부과 대상이 될 경우, 가격 경쟁력 약화와 수출 채산성 저하가 예상된다.

수출 증가율 둔화는 국내 성장률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환율과 금리 변동성과 맞물리면서 불확실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공급망 재편, 투자 지연, 설비 계획 보류 등으로 의사결정 비용이 상승할 가능성이 커, 무역 정책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수록 경영 전략과 투자 판단에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분석된다.

사진은 지난달 27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에 수출용 차량이 세워져 있는 모습. 2026.1.27 ⓒ 뉴스1 김영운 기자
대미 투자 합의, 유지 속 속도 조절 필요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이행 계획 역시 새로운 변수에 직면했다. 상호관세 무효화가 법리적으로 투자 약속 근거에 일부 영향을 줄 수 있지만, 해당 합의는 통상뿐 아니라 안보, 원자력 협정, 전략 산업 협력 등이 함께 얽힌 패키지 딜이라는 점에서 구조적 안정성이 존재한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위법성 판단과 별개로 관세 불확실성은 계속될 것"이라며 "예정된 절차에 따라 관련 입법과 정책 추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투자 속도나 방식에서 일정 부분 유연성을 두고, 기업 수익성과 시장 여건을 고려해 단계적 집행이나 사업 구조 조정을 통해 실질적 이익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정부, 후속 조치 예의주시…관세 환급도 과제

정부는 미국의 후속 조치를 면밀히 주시하며 대응 수위를 조절하겠다는 입장이다. 상호관세 무효화가 곧바로 리스크 해소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관세 환급 문제도 남아 있다. 이미 납부한 관세에 대한 환급 요구가 가능하지만, 실제 집행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수입업자가 환급을 신청하는 것이 기본 구조이며, DDP(관세지급인도조건) 조건 수출이나 현지 법인을 통한 납부 사례 등은 별도 검토가 필요하다.

정부는 관계 부처와 협회·경제단체 등과 협력해 기업 피해 최소화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전국 세관의 수출입기업지원센터를 통해 환급 관련 정보와 행정 지원을 병행할 계획이다.

美 정책 동력 약화 가능성도…조용한 외교 필요

다만 일각에서는 미국 내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트럼프식 관세 정책 추진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무역법 122조를 연장하려면 의회 동의가 필요하고, 232조나 301조 역시 조사 기간이 상당히 걸린다"며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미국 중간선거 전 가시적 조치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신 발언 수위나 압박 메시지는 오히려 더 강해질 수 있다"며 "한국은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조용한 외교력을 보여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미 연방항소법원은 지난 20일(현지시간)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및 멕시코, 캐나다, 중국 등에 대한 '펜타닐 관세' 부과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지난 1, 2심 판결을 유지한 것이다.

대법원은 IEEPA에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할 권한이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활용한 것은 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판결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등 IEEPA에 입각해 부과한 관세를 공식적으로 종료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지만, 곧바로 대체 수단을 꺼내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무역법 122조에 근거해 전 세계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뒤, 곧바로 미 동부시간 24일 0시 1분부터 해당 관세가 발효하도록 하는 포고문을 냈다. 이어 21일에는 추가 관세율을 15%로 올리겠다며 압박 수위를 거듭 높이고 있다.

euni12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