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수출 7000억달러 돌파에도…비IT 경쟁력 약화 '경고음'
철강·기계·화공품 경쟁력 약화…中 공급 확대·CBAM 부담 겹쳐
한은 "품목별로 다르게 대응해야"…R&D·통상 전략 병행 주문
- 이강 기자
(세종=뉴스1) 이강 기자 = 지난해 통상환경 악화에도 불구하고 사상 처음으로 연 7000억 달러 수출을 기록했지만 비IT(정보통신) 품목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우리나라 수출이 겉으로 보이는 실적과 달리 중장기 경쟁력에서는 구조적 부담이 누적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국은행 조사국 국제무역팀 소속 진찬일 과장과 민초희 조사역은 16일 이같은 내용의 '주요 품목별 수출 경쟁력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수출 점유율 변화를 수요 요인과 공급 요인으로 나눠 살펴봤다. 수요 요인은 글로벌 품목 수요나 수입국 경기 등 단기간에 통제하기 어려운 외생 변수인 반면, 공급 요인은 동일한 수요 여건 아래에서 다른 국가 대비 수출 성과를 의미해 보다 좁은 의미의 '수출 경쟁력'으로 해석했다.
분석 결과, 철강·기계는 2018년 이후 글로벌 수요 둔화에 더해 품목 경쟁력과 시장 경쟁력이 동시에 약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대규모 설비 증설과 부동산 경기 둔화로 인한 공급 과잉이 글로벌 시장에 저가 물량으로 유입되면서 가격 경쟁력이 크게 훼손됐다는 평가다.
특히 중국산 철강·범용기계가 동남아 등 신흥국 시장으로 집중 유입되며 해당 지역에서의 수출 경합도가 지속해서 높아진 점이 시장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여기에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본격 시행되면 철강을 중심으로 통상 비용 부담이 늘어나 향후 유럽 시장 내 경쟁력이 추가로 약화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은 향후 CBAM 적용 대상이 기계류까지 확대될 경우 부정적 영향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봤다.
화공품은 2018년 이후 수출 점유율이 하락했는데, 이는 수출 품목·국가 구성효과(DP·DC)에 따른 글로벌 수요 둔화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중국의 석유화학 설비 증설과 미국의 저비용 범용제품 확산 속에서도, 국내 업계가 범용제품 비중을 줄이고 특수제품 중심으로 고도화를 추진하면서 품목 경쟁력(SP)은 소폭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22~2024년 들어 시장 경쟁력(SC)이 크게 악화하며 점유율 하락 폭이 확대됐다. 주요 수출시장이었던 중국에서 배터리 소재 등을 중심으로 자급률이 빠르게 상승했고, 범용 화학제품까지 대규모 증설로 자급 체제가 구축되면서 대중 수출 경쟁력이 약화한 영향으로 분석됐다.
향후에도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원유를 정제 과정 없이 화학제품으로 생산하는 공법(COTC) 기반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며 화공품 경쟁력 약화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한편 석유제품은 정제 설비 고도화에 힘입어 품목 경쟁력이 개선되며 2022년 이후 주요 시장에서 수출 점유율이 반등했고, 높은 정제능력과 고도화율을 감안하면 이러한 경쟁력은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자동차와 반도체는 품목 경쟁력 강화가 수출 점유율 상승을 주도했다. 자동차는 브랜드 고급화와 내연기관차 품질 개선이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고, 최근에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 개발 등을 통해 전기차 부문 경쟁력도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멕시코 등지에서의 해외 현지 생산 확대가 미국·유럽 시장에서의 시장 경쟁력에는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
반도체는 고부가 메모리 분야에서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며 AI 수요 확대 국면에서 높은 성과를 거뒀다. HBM, DDR5 등 고사양 메모리를 경쟁국보다 빠르게 상용화한 점이 품목 경쟁력 개선의 핵심 요인으로 꼽혔다.
그러나 중국이 범용·저사양 메모리를 중심으로 생산 능력을 빠르게 확대하면서 동남아 등 일부 시장에서는 2022년에서 2024년까지 시장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연구진은 "향후 정책은 품목별 경쟁력 변화에 정밀한 진단에 초점을 두어 품목별 경쟁력의 상태와 변화 방향에 따라 차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철강·화공품 등 경쟁력 약화 품목에 대해서는 기술 고도화와 생산성 제고를 통해 품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반도체·자동차와 같이 경쟁력이 유지·개선된 품목에 대해서는 글로벌 수요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 지원과 기술 보안 강화를 통해 경쟁 우위를 지속하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최근 들어 주요 품목에서 시장 경쟁력이 약화한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통상·외교적 대응도 필수적"이라며 "앞으로도 주요 수출시장에서 중국의 추격이 가속화될 뿐만 아니라 미 관세·EU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면서 경쟁 환경이 더 험난해지고 우리 시장 경쟁력은 약화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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