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 기축통화국 아냐…양적완화·재정확대 쉽지 않아"
선진국식 양적완화 한계 지적…출산·여성고용·정년연장 강조
성장 둔화 원인에 고령화·공급망 변화…한은 역할 확장론 재확인
- 이강 기자
(세종=뉴스1) 이강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선진국은 양적완화와 통화·재정 확대로 대응했지만,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선택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17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이 총재는 지난 11일 'Governor Talks' 인터뷰에서 "기축통화국이 아닌 국가가 통화·재정을 과도하게 확장할 경우 여러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그래서 위기에 도달한 뒤 어떤 정책을 쓸 것인가보다, 애초에 그런 상황에 도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출산율 제고, 여성 노동시장 참여 확대, 정년 연장 같은 구조개혁이 그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물가와 금리뿐 아니라 고령화, 노동시장, 인공지능(AI) 같은 구조적 요인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며 "경제 환경 변화의 주된 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 없이는 적절한 통화정책을 설계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최근 한국의 성장률 둔화는 경기적 요인뿐 아니라 고령화와 글로벌 공급망 변화 같은 구조적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성장률이 왜 내려가고 있는지, 그중 얼마나가 경기 요인인지 판단하려면 구조적 변화의 동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이 구조적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책무를 벗어나는 것이라는 일부 시각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그는 "일부에서는 (제가) 통화정책뿐 아니라 고령화나 교육, 노동시장 같은 구조적 이슈를 이야기하는 것을 문제 삼지만, 이는 물가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책무와 모순되지 않는다"며 "적절한 통화정책을 위해서는 경제 환경 변화의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런 점에서 한국은행은 단순한 중앙은행을 넘어 한국 전체를 위한 선도적인 싱크탱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국제무대에서의 경험도 언급했다. 이 총재는 "국제결제은행(BIS)이나 IMF 회의에서 다른 중앙은행 총재들과 만나 구조적 이슈에 대해 자주 논의한다"며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재무당국과 중앙은행이 재정정책을 포함해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통화정책 결정 권한은 중앙은행에 있지만, 구조적 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오히려 한국은 통화정책 외 사안에 대해 중앙은행이 발언하는 것을 자제해 온 점에서 예외적인 경우"라고 평가했다.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해서는 물가안정을 위한 핵심 원칙임을 재차 강조했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인플레이션 타게팅은 물가안정을 달성하는 데 결정적이었다"며 "2022년 금리를 매우 빠르게 인상해야 했을 때도 인기 없는(not popular) 결정이었지만, 중앙은행의 책무가 물가안정이라는 점을 설명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중앙은행에는 금융시장 안정, 최종대부자 기능, 금융기관 정리 등 정부와 협력해야 하는 영역도 존재한다"며 "물가안정에서는 독립성이 핵심이지만, 모든 영역에서 중앙은행이 단독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구조적 문제를 대중에게 설명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도 토로했다. 이 총재는 "구조적 이슈는 단순한 해답이 없고 매우 복잡하다"며 "정책 변화에는 항상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고, 평가는 이해관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많은 국민은 과거 고성장 경험 때문에 한국의 적정 성장률이 3% 이상, 심지어 4% 이상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고령화 등으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이미 2% 안팎으로 낮아졌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의 성공 경험에서 비롯된 인식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이 때문에 구조적 문제에 대한 소통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임기 후반부 과제로는 구조적 이슈에 대한 연구 지속을 가장 먼저 꼽았다. 이 총재는 "한국은행이 통화정책뿐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 대한 연구를 계속 이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준비 과정에서 진행 중인 토큰화 예금 실험과 조건부 포워드 가이던스(K-닷 플롯) 등 소통 방식 개선도 중요한 과제로 언급했다.
thisriv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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