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방어에 연금 동원? 천만의 말씀"…이 총재가 밝힌 '윈-윈'의 이유

"환율 1500원, 금리차 아닌 '서학개미' 쏠림 탓…독특한 현상"
"지금 파는 게 '고점 매도'…연금 수익성 지키는 '윈-윈' 전략"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금리 동결 배경 등을 설명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5.11.27/뉴스1 ⓒ News1 이호윤 기자

(서울=뉴스1) 전민 기자 = "국민연금을 동원해서 환율 방어의 모든 부담을 다 짊어져 달라는 것이 아니다. 국민 노후 자산을 희생하는 게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서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7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불거진 '국민연금 외환시장 역할론' 논란에 대해 작심한 듯 반박했다.

이 총재는 정부와 한은, 국민연금이 추진하는 '뉴 프레임워크'가 단순한 환율 방어책이 아닌, 거대해진 연금 기금과 우리 경제가 공존하기 위한 구조적 해법임을 역설했다.

"금리차 아닌 '서학개미'가 고환율 원인…지금 파는 게 이득"

이 총재는 우선 최근 환율 급등의 원인을 과거와는 전혀 다른 '구조적 수급 변화'에서 찾았다. 그는 "지금 환율이 오르는 것은 한미 금리차 때문도 아니고,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서도 아니다. 외국인은 오히려 채권을 사고 있다"며 "오직 내국인의 해외 주식 투자가 급증하면서 나타난 독특한 쏠림 현상"이라고 규정했다.

과거 환율 상승이 외국인 자금 이탈에 따른 '신용 위기'의 신호였다면, 지금은 내국인의 해외투자 확대에 따른 '구조적 달러 수요 우위'가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특히 이 총재는 "젊은 분들에게 왜 해외 투자를 많이 하냐고 물었더니 '답이 쿨(Cool)하잖아요'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금리 차이나 펀더멘탈 같은 경제적 논리보다는, 일종의 유행이나 심리적 쏠림이 환율을 밀어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환율과 부동산을 통화 정책만 가지고 잡을 수는 없다"며 "국민연금이 환율 수준에 맞춰 정책을 신축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국민연금의 환헤지(달러 매도)가 기금 수익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국민연금만의 '구조적 특수성'을 강조하며 반박했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환율 변동 위험을 그대로 노출하는(환오픈) 전략을 관행적으로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 총재는 기금 규모가 너무 커진 지금은 이 논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환율이 올라서 원화 환산 수익률이 높아 보이지만, 나중에 연금을 지급해야 할 시기가 와서 해외 자산을 대규모로 들여오게 되면 원화 강세(환율 하락) 압력을 받아 수익률이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환율이 1400원대 후반으로 높은 상황에서 기계적으로 달러를 더 사들이기보다는 "어느 정도 환율로 이익을 보면 헤지도 하고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이 노후 자산을 보호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한은, 기재부와 협력을 통해 환율 변동성을 줄여 국민 경제에 기여하고, 연금은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윈-윈(Win-Win)'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려는 것"이라며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연금을 동원한다는 식의 비판은 사실과 다르다"고 거듭 강조했다.

27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 2025.11.27/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상시 스와프' 등 거론…"시장 '먹잇감' 될 가능성" 우려도

이 총재가 언급한 국민연금의 '뉴 프레임워크'는 이러한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연금과 외환시장의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작업이다. 시장에서는 단순한 개입을 넘어선 정교한 제도 개선이 논의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방안이 '외환 스와프의 상시화'다. 비상시에만 가동하던 한은-연금 간 외환 스와프를 상시적인 달러 조달 창구로 정례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연금은 해외 투자를 위해 시장에서 직접 달러를 사지 않고 한은 외환보유액을 빌려 쓸 수 있어, 환율 상승 압력을 낮추면서도 안정적으로 투자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동적 환헤지' 도입도 거론된다. 기존처럼 운용역의 판단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환율이 특정 구간을 벗어나면 기계적으로 헤지 비율을 조정하는 '룰 베이스(Rule-based)'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이다. 이는 '관치 논란'을 피하면서도 시장 변동성을 제어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이 총재의 '윈-윈' 논리에 일리가 있다면서도, 부작용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특히 정부와 연금의 공조가 시장에 공식처럼 인식되는 순간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금 전문가는 "시장이 '환율이 오르면 국민연금이 무조건 개입한다'는 것을 학습하게 되면, 투기 세력은 이를 역이용해 아비트라지(차익 거래·Arbitrage)에 나설 것"이라며 "국민연금이 투기 세력의 '먹잇감'이 되면서 오히려 손실을 키우고 변동성을 확대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min7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