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소방수' 넘어선 '뉴 프레임워크'…연금-외환시장 '공존 해법' 찾기
한은-연금 '상시 스와프'·'룰 베이스' 동적 환헤지 유력 거론
"단기 안정 효과 있겠지만…펀더멘탈 개선 없인 미봉책" 지적도
- 전민 기자, 심서현 기자
(세종=뉴스1) 전민 심서현 기자 = 외환당국이 국민연금과 4자 협의체를 가동하며 '뉴 프레임워크(New Framework)' 구축에 나선 것은, 국민연금기금이 외환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공룡이 된 현실에서 기존 방식으로는 더 이상 시장 안정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당국은 이번 협의체를 통해 단순한 '환율 소방수' 동원을 넘어, 연금의 수익성과 외환시장의 안정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를 마련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26일 관계부처와 금융권 등에 따르면 정부가 '뉴 프레임워크'를 꺼낸 핵심 배경은 국민연금 기금의 증가세와 그에 따른 막강한 영향력이다. 지난 8월 기준 국민연금 기금 자산은 1322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50%를 넘어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향후 자산이 3600조 원까지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 부총리는 "국민연금은 외환시장 단일 최대 플레이어"라며 "외환시장 규모에 비해 큰 연금의 해외 투자가 단기에 집중되면서 물가 상승, 구매력 약화에 따른 실질 소득 저하로 이어질 경우 민생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금의 기계적인 달러 매수가 환율 상승을 부추기고, 이것이 거시경제 불안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정부는 "모든 대안을 열어놓고 논의할 생각"이라며 구체적인 방안은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전문가들은 동적 환헤지 도입, 국민연금과 한국은행 간 상시 외환 스와프 등이 논의될 것으로 전망했다.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한국은행과 국민연금 간 '외환 스와프의 상시화'다. 그동안 비상시 환율 안정을 위한 일시적 수단으로 활용되던 외환 스와프를 상시적인 달러 조달 창구로 정례화하는 방안이다. 이를 통해 국민연금은 현물환 시장에서 달러를 사지 않고도 외환보유액을 통해 필요한 달러를 조달할 수 있어 시장 충격을 분산할 수 있다.
기존 환헤지 제도를 보완한 '동적 환헤지(Dynamic Hedging)' 도입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민연금은 현재도 외화 자산의 ±5% 내외에서 조절하는 '전술적 환헤지'와 위기 시 가동하는 '전략적 환헤지'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는 운용역의 판단이나 위원회 의결이 필요해 시의적절한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이에 따라 환율이 특정 구간을 벗어나면 기계적으로 헤지 비율을 조정하는 '룰 베이스(Rule-based)' 방식을 도입, 인위적인 개입 논란을 없애면서도 시장 변동성을 제어하는 방안이 도입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아울러 해외 투자 집행 시기를 국내 외환시장 유동성 상황과 연동해 조절하는 거버넌스 개편도 논의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간담회에서도 구 부총리는 해외 투자가 단기에 집중되는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구 부총리는 "단기적으로 현 제도하에 할 수 있는 것과 중장기 제도 개선 방안을 모두 논의하겠다"며 "기금 수익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장기 시계에서 연금을 안정적으로 지급할 수 있는 근본적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단기적으로 환율을 진정시키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민연금이 워낙 거대 수급 주체인 만큼, 외화 관리를 개선할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시장에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은 외환시장의 큰손이기 때문에 향후 외화 조달 방식을 어떻게 하느냐가 시장 참가자들의 기대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며 "당장 환율 안정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적 조치가 환율 상승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연금 전문가는 "단기적으로는 환율을 1400원대 중반으로 낮추는 효과가 있겠지만, 구조적인 수급 불균형을 해결하지 못하면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며 "대응할 수 있는 유동성이 고갈되고 환율이 다시 움직이면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연금에 전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의 실제 목표는 수익을 키워서 국민들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처방으로 쓴다면 원래 목적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이어 "지금의 고환율은 미국 증시 호황과 국내 증시의 신뢰 저하라는 펀더멘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국내 주식시장의 매력을 높이는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자금 유출을 막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향후 과제는 국민연금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수익률 극대화'를 해치지 않으면서 외환시장 안정을 달성할 수 있는 정교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될 전망이다. 특히 환헤지 비율을 높이거나 투자 시기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기회비용은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할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이후에는 이번과 같은 '관치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금 운용 독립성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min78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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