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기재부의 나라' 너머의 미래

이철 뉴스1 경제부 기재팀장

(서울=뉴스1) 이철 기자

"시어머니도 그런 시어머니가 없어요. 일단 예산을 줄이고 보랍니다".

예산철이 되면 어김없이 여기저기서 중앙부처 직원들의 볼멘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산삭감 '칼질'을 한다.

정부의 내년 예산안은 728조 원으로 '슈퍼 예산안' 평가를 받지만, 그럼에도 지출 구조조정은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강도 높게 진행됐다. 한 손에 예산을, 다른 손에 경제 정책과 세제를 쥔 기재부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그런 기재부가 내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나라의 경제 정책과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두 핵심 조직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70년 동안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해 왔다. 이번에는 지난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와 함께 통합 기재부로 출범한 지 18년 만의 분리다.

기재부의 분리 이유는 명확하다. 과도한 힘의 집중이다. 오죽하면 2021년 당시 정세균 국무총리마저 소상공인 손실보상 법제화에 다른 목소리를 낸 기재부를 향해 "여기가 기재부의 나라냐"라고 했을 정도다. 그 영향력은 지금까지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힘을 집중한 이유 역시 명확했다. 국가의 경제 컨트롤타워를 세워 가장 효율적으로 정책을 집행하라는 뜻이다. 기재부는 국가의 경제 정책 방향을 세우고, 세제라는 기준으로 국민의 세금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수급하며, 이 자금을 집행하는 계획까지 세우는 '정부 안의 정부'였다.

이제 총리실 산하로 편입되는 기획예산처는 녹록지 않은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편제가 총리실 산하일 뿐, 사실상 대통령실의 직접 영향권이다.

집권 여당과 대통령실이 확장재정 정책을 쓰면 쓸수록 국가부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재정건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간지기'들은 당장 '예산의 정치화'라는 현실과 싸워야 한다. 과거처럼 그들 앞에서 외부의 포격을 맞아줄 부총리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예산 기능을 떼어낸 재정경제부다. 세제와 경제 정책만을 담당하게 되는 재경부는 당초 계획했던 금융위원회의 금융 정책 기능 이관마저 무산됐다. 힘의 약화는 불 보듯 뻔하다. 일선에서는 벌써 부처 간 정책조율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이미 돌은 던져졌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직원들의 아쉬움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안다"면서도 "'일단 한 번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이 있다"고 선을 그었다.

믿을 것은 엘리트 관료 집단의 힘이다. 예산이라는 수단이 없어졌지만, 기획과 조정 능력으로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힘을 보여줘야 한다. 국가의 경제 정책이 남은 이들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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