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아베' 日 다카이치 내각 출범…'엔저 공습'에 韓 수출 비상

아베노믹스 계승한 완화적 재정·통화정책 예고…닛케이 5만선 육박
수출 경합도 韓 가장 높아…"수출 타격·원화 약세 심화할 수도"

다카이치 사나에가 4일 도쿄에서 자민당 총재 선거 후 당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세종=뉴스1) 전민 심서현 기자 = '여자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가 21일 일본의 제104대 총리로 선출되면서, 한국 경제에 '엔저(円低) 경고등'이 켜졌다.

다카이치 신임 총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의 계승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의 공격적인 양적완화와 엔화 약세 기조가 가속화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한국의 자동차, 반도체 등 주력 수출 산업의 부담이 한층 가중될 전망이다.

日 증시, 엔저 기대감에 '들썩'…설비투자 확대 전망

다카이치 총리 선출은 일본 경제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공격적인 금융완화 △확장적 재정정책 △구조개혁을 통한 성장이라는 '세 개의 화살'로 요약된다.

다카이치 내각이 이 기조를 이어받아 완화적 재정·통화 정책을 고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엔화 약세 기대감에 일본 증시는 즉각 환호했다. 수출 중심의 일본 기업들의 실적 개선 기대감이 커지면서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는 이달 들어 9.4% 급등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연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엔 환율 역시 상승세를 재개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올해 초 150엔을 웃돌던 달러·엔 환율은 지난 4월 140엔까지 하락하기도 했지만, 이달 들어 다시금 150엔을 웃돌며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기대는 기업들의 투자 심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1일 일본은행이 발표한 단기경제관측조사(단칸)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의 2025년도 설비투자계획액 증가율은 9.5%로 작년(6.9%) 실적을 크게 웃돌았다. 확장 재정과 엔저 현상이 지속될 경우 수출 기업들의 수익성이 개선돼 설비투자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엔저가 재개될 것"이라며 "일본의 경우 지난해와 올해 성장이 괜찮았기 때문에 재정을 쏟을 수 있는 여력도 있다"고 밝혔다.

초저금리와 엔저 기조가 맞물리면 엔캐리 트레이드(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다른 나라 자산에 투자해 차익을 얻는 거래)가 다시 활성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아베노믹스 시절에도 엔캐리 자금은 글로벌 유동성을 공급하며 신흥국 자산 시장을 밀어 올리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는 글로벌 금융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지난해에도 일본은행의 금리인상과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인하로 양국 금리차가 좁혀지면서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유출이 일어난 바 있다.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에 수출용 차량이 세워져 있는 모습. 2025.10.16/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韓 주력산업과 '정면충돌'…자동차·반도체 '빨간불'

문제는 일본의 수출 경쟁력 강화가 한국 경제에는 직격탄이 된다는 점이다. 자동차, 반도체, 석유화학, 기계 등 대부분의 주력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과 정면으로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발 관세라는 불확실성으로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낀 상황에서 '엔저'라는 복병까지 만난 셈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경합도는 69.2로, 미국(68.5), 독일(60.3), 중국(56) 등 주요 교역국 중 가장 높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1%포인트(p) 하락하면 한국 상품의 수출 가격은 0.41%p, 수출 물량은 0.2%p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엔화 약세가 곧바로 우리 기업들의 채산성 악화와 수출 물량 감소로 이어지는 구조다.

엔저 현상은 원화 약세를 더욱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일본과의 수출 경쟁에서 밀릴 경우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원화 가치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엔저 심화 시 단기적인 수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 미국 시장 내에서 우리 기업들은 일본 기업들과 수출 경합도가 가장 높기 때문에 엔저가 심화할 경우 미국 수출에 타격이 더 커질 것"이라며 "특히 자동차의 경우 관세도 일본보다 높아 이중고에 시달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봉 교수 역시 "우리와 경합도가 높은 자동차 부문이 특히 걱정된다"며 "일본은 자동차 수출 비중이 30~40%에 달해 단기적으로 우리에게 어려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1400원대를 유지하고 있는 달러·원 환율도 경제에 문제가 생긴다면 더 뛸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다만 시장의 예상과 달리 엔저 기조가 장기간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다카이치 총리의 확장 재정이 오히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시점을 앞당겨 엔화 강세를 유발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통화정책이 긴축으로 전환될 경우 엔케리 트레이드 자금의 급격한 유출로 이어져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석 교수는 "다카이치 총리가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펼 경우 일본 경기가 살아나고 물가가 오르면, 오히려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빨라질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엔화가 약세를 보일 수 있어도 중장기적으로는 엔화 강세 시점이 앞당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min7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