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에도 잠잠한 美물가…한은 "본격 반영은 이제부터"
해외기업 분담·美기업 마진 축소·수입선 전환이 완충
"연말부터 본격 반영"…CPI 연말 3%-내년 2.6% 전망
- 김혜지 기자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부과에도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우려만큼 빠르게 오르지 않고 있지만, 한국은행은 관세 효과가 연말부터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5일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8월 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2.9% 상승해 시장 예상치에 부합했다. 근원 CPI 상승률은 3.1%로 전월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이에 대해 한은 뉴욕사무소는 "시장은 관세의 소비자물가 전가 효과가 여전히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하면서 안도감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7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예상치를 큰 폭으로 상회한 이후, 시장은 관세로 인한 가격 인상분이 소비자에게 전가되기 시작하면서 8월부터 CPI 상승률이 큰 폭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해 왔다.
한은 조사국이 분석한 결과, 미국 물가에 관세 전가가 더디게 진행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수출기업이 관세 부담을 분담하고, 미국 기업이 재고 축적과 마진 축소로 가격 인상을 미뤘으며, 관세율이 낮은 국가로 수입선을 신속히 전환했기 때문이다.
우선 해외 기업은 미국 시장 점유율 유지를 위해 수출 가격을 낮추거나 할인 판매에 나서며 관세 부담을 일부 떠안았다. 그 결과 미국 소비자 가격 인상 압력이 완화됐다.
실제로 관세 직격탄이 예상된 자동차 업체들은 미국 내 차량 가격 인상을 자제한 채 할인 판매를 이어갔다. 이에 따라 2분기 영업이익 감소 폭은 토요타 31억 달러, 폭스바겐 15억 달러, 현대차 6억 달러에 달했다.
또 미국 기업들은 관세 인상 전 대규모로 물품을 들여와 재고를 쌓아두며 가격 상승을 지연시켰다. 1분기 중 미국 수입은 중간재를 중심으로 급증해 초과 재고 규모가 월평균 수입액의 39.4%까지 치솟았다.
아울러 기업들은 관세 비용을 곧바로 소비자에게 전가하기보다 우선 이익률을 낮추는 방식으로 충격을 흡수했다. 생산자물가지수를 보면 3월부터 7월까지 중간재 가격은 1.8% 올랐지만, 최종재 가격은 0.1% 상승에 그쳤다.
마지막으로 수입업자들은 중국 대신 베트남·멕시코 등 관세율이 낮은 국가에서 대체 공급선을 확보했다. 미국 수입 내 국가별 비중을 지수화한 '수입처전환지수'는 트럼프 1기 무역분쟁 당시 2년 넘게 완만히 상승(+3.1포인트)했으나, 이번에는 단기간에 두 배 이상(+6.6포인트) 급등했다.
한은은 지난달 29일 공식 블로그 글에서 "기업들이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발 빠르게 대응한 데다, 신흥국의 생산 역량이 커진 영향도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한은은 이런 완충 장치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우선 수출기업들이 감내하던 손실이 누적되면서 가격 인상 압력이 커지고 있다. 동시에 창고에 쌓아둔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고, 일부 대체국에도 상호 관세가 부과되면서 수입선 전환 효과도 줄어들고 있다.
한은은 "5월 이후 그간 물가 상승을 완충하던 수입 물가와 미국 생산자 마진 하락 폭이 줄고 있다"며 "관세가 소비자들의 가격표에 본격적으로 찍힐 시점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올해 미국 CPI는 2.8% 수준, 연말에는 3% 안팎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 중 관세 영향은 0.3%포인트(p)로 추정됐다. 내년에도 올해 반영되지 못한 관세 효과(0.3%p)가 추가되면서 물가 상승률은 2.6%로 안정 목표를 웃돌 것이라고 한은은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관세 충격이 지연되며 시장이 안도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기업들의 분담 여력이 줄고 미국 기업들도 더는 마진 축소로 버티기 어려워질 경우, 관세 효과가 소비자 가격에 급속히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관세가 물가에 본격적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앞으로 미국 물가가 어떻게 변해갈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icef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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