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억불 투자펀드로 美 원전시장 문 연다…K원전 진출 기대감↑
원전·반도체·2차전지 등 전략산업에 2천억 달러 투자펀드 조성
美, 2030년까지 원전 10기 건설…한미 '원전 동맹' 강화 기대감
- 이정현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한미 관세협상에서 대미 전략산업 투자펀드에 원자력발전 분야가 포함되면서, 국내 원전 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양국 간 전략산업 협력을 계기로, 그동안 철옹성처럼 여겨졌던 미국 원전시장에 국내 기업이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원전 발전 설비용량을 4배로 확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할 정도로 원전 산업 확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천기술' 소유권 문제로 갈등을 빚어온 미국 원자력기업 웨스팅하우스와의 분쟁도 원만히 마무리하며 협력 파트너로서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웨스팅하우스가 향후 미국 내 신규 원전 건설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독보적인 기술과 시공능력을 보유한 국내 원전 업계와의 협업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커지고 있다.
11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타결한 한미 관세협상에서 한국 정부는 2000억달러 규모의 '전략산업 투자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투자펀드는 반도체·원전·2차전지·바이오 등 한국기업들이 경쟁력을 보유한 전략산업에 활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는 입장문을 내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협회는 국내 원전 기업 및 산·학·연 511개 사가 회원사로 활동하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원자력 산업 단체다.
협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2050년까지 자국의 원전 발전 용량을 현재의 4배 수준으로 확대하고, 이를 위해 원전 약 300기를 추가로 건설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면서 "이번 대미 투자 펀드는 국내 원전기업의 미국 현지 진출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관련 업계의 기대감은 미국 원전시장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에서 비롯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2050년까지 미국의 원자력 발전 설비용량을 현재 97GW(기가와트)에서 400GW 수준까지 4배로 확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는 1000㎿(메가와트)급 대형원전 약 300기를 추가로 건설할 수 있는 규모다.
우선 2030년까지 1000㎿급 이상의 대형 원자로 10기를 착공하기로 했으며, 건설 비용만 750억 달러(약 1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유례를 찾기 힘든 미국의 대규모 원전 프로젝트를 웨스팅하우스 혼자 수행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시장 경쟁력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의 대미 투자 펀드 조성을 통한 협력이 이뤄진다면 당연히 미국 입장에서는 우리 원전을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신규 원전 확대 프로젝트는 자국 원전기업인 웨스팅하우스를 중심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미국 내 원전 건설을 외국 기업이 맡은 사례가 아직 없는 데다, 웨스팅하우스는 1950년대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전을 건설한 기업으로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웨스팅하우스의 독자적인 건설 능력만으로 오는 2030년까지 신규 원전 10기를 우선 짓겠다는 미정부의 구상은 사실상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웨스팅하우스는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후 미국 내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서 신규 원전 공급 역량이 크게 저해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6조 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최종사업자 선정 과정에서도 체코당국이 우리나라와 함께 입찰에 참여한 웨스팅하우스를 배제한 배경에는 책임준공 확약과 일부 하자보수 보증 등 입찰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반면 체코당국은 '온타임 위딘 버짓'(on time & within budget·정해진 예산으로 예정대로 준공)'을 강점으로 내세운 '팀코리아'를 최종사업자로 선정하며, 세계 시장에서 ‘K-원전’의 경쟁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한전은 2009년 수주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을 완공한 경험이 있고, 한수원은 최근 체코 원전 수주에 성공했다. 또 웨스팅하우스가 추진 중인 대부분 원전의 주기기 건설은 두산에너빌리티가 맡고 있으며, 발전소 시설을 짓는 현대·대우건설 등도 웨스팅하우스와 협업을 늘리고 있다. 한국의 원전 기자재·건설업체 등에는 실질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웨스팅하우스와의 '원천 기술' 소유권 분쟁이 원만히 마무리된 점도 미국 시장 진출에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올해 초 원전 원천기술 침해 여부를 두고 2022년부터 2년 넘게 이어진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와의 법정 분쟁은 양측 간 원만한 합의로 마무리됐다.
두 기업 간 세부적인 합의 내용은 기업 기밀로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업계 안팎에서는 한수원이 체코 원전 수출과 관련해 웨스팅하우스에 일정 부분 일감을 제공하고, 향후 유럽 및 제3국 수출 시 공동 추진하는 방안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한미 정부 간 체결한 굳건한 '원전 동맹'도 K-원전의 미국 시장 진출에 힘을 보탤 것으로 기대된다. 한미 양국은 지난 1월 8일 '한·미 원자력 수출 및 협력 원칙에 관한 기관 간 약정'에 최종 서명했다.
그간 산업부와 외교부는 미국 에너지부, 국무부와 민간 원자력 협력 확대를 위한 협의를 이어오며, '한미 원전 동맹(팀코러스, KOR+US)'을 강조해 왔다.
양국은 MOU를 통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촉진하고, 최고 수준의 비확산과 원자력 안전, 안전조치·핵안보 기준을 유지한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또 제3국으로의 민간 원자력 기술에 대한 수출통제 관리도 강화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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