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동양'·유럽 문화권 '서양'…기준과 유래는

송나라 때 광저우~수마트라섬 기준 동남해·서남해 구별…원나라 때 동양·서양 불러
中 파견 선교사, 유럽 서쪽 바다 대서양이라 부르며…'서양' 유럽 가리키는 명칭

'정화 항해 600주년’' 기념우표(출처 해양수산부)ⓒ 뉴스1

(세종=뉴스1) 백승철 기자 = 1970년대 인기 스포츠는 단연 권투였다. 당시 가난했던 우리 선수들의 목표는 세계챔피언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 가야하는 것이 '동양‘챔피언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동양'이 아시아를 일컫는 말로 사용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동양의 어원은 600여 년 전 명나라 해군제독 태감 정화(郑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정화는 <1434>의 저자인 영국인 개빈 멘지스(Gavin Menzies)에 의해 새롭게 조명되었다. 정화는 명나라 제3대 황제인 영락제(永樂帝, 제위 1402~1424)의 명을 받아 세계를 항해하고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람으로 콜럼버스보다 약 100년 앞선 것으로 개빈 멘지스는 소개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2005년 '정화 항해 600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했는데, 이 우표에 정화가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여러 차례에 걸쳐 '서쪽 바다'로 원정을 다녀왔다고 표기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남해로 갈 때 무역풍을 이용했다. 그들은 이 바람의 방향이 동서쪽으로 치우친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겨울에는 정북풍(正北風), 여름에는 정남풍(正南風)이 분다고 믿었다.

따라서 광저우(廣州)를 시작점으로, 인도네시아의 주요 섬인 수마트라섬 동부를 이 바람의 종점으로 생각해 이 두 지역을 잇는 선의 동쪽에 있는 바다를 동남해(東南海), 서쪽에 있는 바다를 서남해(西南海)라고 구별했다.

그 구분은 송나라 때부터 등장했는데, 원나라에는 남(南)을 생략하고 해(海)를 양(洋)으로 바꾸어 동남해를 동양(東洋), 서남해를 서양(西洋)이라고 부르게 됐다.

태감 정화가 살았던 명나라에 이르러 인도네시아의 중심을 이루는 자바섬이 '서양'에 포함됐다. 이는 당시 방위의 관념이 좀 더 명확해졌음을 뜻한다.

당시 유럽 지리학의 영향을 받아 광저우의 정남쪽이 보르네오섬 북해안의 문래국(文萊國)에 해당한다는 것이 알려지고, 광저우~문래를 잇는 선을 기준으로 동양과 서양을 구별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무렵 중국으로 건너간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은 세계지도를 한자로 설명하며 서부 인도양을 소서양(小西洋)이라 하고, 유럽 서쪽의 바다를 대서양(大西洋)이라 불렀으며, 자신들을 '대서양 제국(諸國)의 사람들'이라 지칭했다.

이때부터 '서양'은 유럽을 가리키는 명칭이 됐다.

하지만 정화가 항해한 '서쪽 바다', 즉 서양(西洋)은 중화의 관점에서 남서양(南西洋) 인도양을 가리키고 있다. '서양'은 지금의 유럽이 아닌 중국남해의 서쪽, 바로 인도양다.

오늘날 많은 지도에서 인도양을 'Eastern Ocean', 또는 라틴어로 'Oceanus Orientalis'로 표기하는데, 유럽을 기준으로 보면 인도양은 동쪽의 큰 바다이기 때문이다. 같은 바다인데 각각 자신의 위치를 기준으로 '서쪽 바다(西洋)'도 인도양이고, '동쪽 바다(東洋)'도 인도양이 되어 인도양은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바다가 됐다.

※자료출처: 해양수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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