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수타면 상무'논란, 대한항공에 따질 것

지난 15일 오후 미국행 대한항공 비즈니스석에 탑승한뒤 기내 서비스를 문제 삼아 여성 승무원을 폭행·폭언했다가 미국 사법당국으로부터 입국을 거부당하고 되돌아온지 일주일만이다.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 계열사 임원이 '밥이 설익었다', '라면이 너무 짜다' 등 기내식을 트집잡아 여승무원을 폭행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수준 이하의 처신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곰곰히 짚어볼 것이 있다.

알려진바대로 이 사건은 로스엔젤레스로 향하던 대한항공 기내에서 포스코에너지 고위 인사가 여승무원을 때리고 행패를 부린 추태가 '피해자 혹은 동료의 손'을 통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급속히 퍼지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카카오톡 메시지 형태로 유포된 ‘승무원리포트’에는 해당 임원이 항공기에 탑승한 직후부터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착륙한 직후까지의 행동이 현장중계식으로 낱낱이 기록돼 있다.

기내 소란을 담은 '승무원리포트'는 비행 중 승객의 소란, 기기 고장 등 기내 안전과 관련된 특이사항을 적은 보고서다.

사건이 유출된 직후 해당 임원은 도덕적 비난이나 법적 책임론과는 별도로 인터넷과 SNS에서 뭇매를 맞았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해당 임원에 대한 개인 정보가 봇물처럼 유포됐다. 소속사인 포스코에너지가 '전광석화'처럼 그를 내친 것도 '신상털기'의 후폭풍으로 볼수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에서는 해당 임원의 약력이 퍼진지 오래다. 소속사, 이름, 얼굴 사진등 신상정보가 모조리 공개되면서 네티즌들의 조롱섞인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패러디물의 풍자 소재로 등장하기도 했다.

신라면 봉지를 편집·합성해 만든 '포스코 라면'이라는 패러디에는 신라면의 매울 '신(辛)'을 '포'로 변경해 '포스코 라면'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제조사 이름으로는 '소리없이 싸다구(귀싸대기)를 날립니다. 포스코'라고 기재했다.

삼양사의 '수타면'을 패러디한 사진에서는 제품명에 '손 수, 때릴 타'라는 설명을 곁들여 해당 임원의 폭행을 비꼬았다. 가해자로 지목된 상무의 얼굴 사진에 "안짜다! 짜지 않을 때까지 때려서 만들었습니다!"라는 말풍선을 달았다.

사회 지도층도 비난대열에 가세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라면에 대하여 극도로 특별하게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분 퇴사하면, 여러 라면업체가 모셔갈지도 모르겠구나. '라면 소믈리에'?", "포스코 구내식당 라면 끓이는 담당자는 신의 기술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각 라면업체는 빨리 특채하는 것이 좋겠다" 등의 트윗을 올렸다.

그러나 주말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이번 이슈에 대해 해당사인 대한항공측도 책임에서 100% 자유로울순 없다.

이번 파장의 돋보기가 된 '승무원리포트'는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어서 항공사가 승객의 프라이버시 보호에 소홀한 점은 분명하다.

대한항공측도 "승객의 신상정보 유출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도 당황스럽다"고 언론을 통해 시인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단순 폭행죄와 기내 난동죄다. 작게는 회사차원에서 문제의 임원을 '블랙리스트 (탑승 거부자)' 명단에 올려서 추후 예약과 탑승을 거부하고 크게는 피해자인 승무원과 대한항공이 경찰에 고소를 하면 되는 사안이다.

국내 항공사 대부분이 현재 수백명 규모의 '블랙리스트' 명단을 갖고 있다. 명단에 오를 경우 해당 항공사에서는 탑승과 예약이 거절된다.

대한항공측은 철없는 승객들에 대한 예방 내지 경각심 차원에서 '승무원리포트'가 공개되는 것을 묵인했다고 주장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목적이라면 개인의 인신공격이 뻔히 예고되는 SNS가 아닌 정정당당하게 사법기관에 증거자료를 제출해 처벌받도록 하는 것이 깔끔했다.

기내 난동은 다른 승객들에게 불편을 줄 뿐만 아니라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마녀사냥 내지 여론몰이식으로 특정인과 그의 가정을 낱낱이 까발리는 것은 형사법의 기본원칙인 죄와 벌의 비교형량 차원에서도 지나치다.

andrew@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