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용 누진제 정당" 대법 판결에…최악 32조 적자 한전 '안도'
9년여 걸친 가정용 누진제 존폐 논란 마침표
적자상황 타개 영향은 미미…현행 수준 유지에 의의
- 이정현 기자, 박승주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박승주 기자 = 지난해에만 32조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한국전력공사(015760)이 그나마 안도의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9년여를 끌어온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부과의 정당성을 가리는 소송에서 대법원이 결국 한전의 손을 들어주면서 '가정용 누진제 존폐'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물론 용도별 판매전력량을 따질 때 가정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15% 남짓(2021년 기준)으로, 누적된 한전의 적자를 해소하기는 미약한 수준이다. 다만 '팔아도 적자' 구조인 현행 요금 체계 안에서 그나마 개개 소비자들의 전력낭비를 줄이고, 현상 유지라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전은 안도하고 있다.
◇"가정용에만 누진제 부과 부당하다" 소송전…9년 만에 한전 손 들어준 대법원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30일 전력 소비자 87명이 한전을 상대로 낸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현행 전기요금에는 주택용·일반용·산업용·교육용·농사용 등 사용 용도별 차등요금제가 적용되지만, 전기를 많이 쓸수록 단가가 높아지는 누진제는 주택용에만 적용된다.
누진제는 1970년대 초 석유파동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해 전기 공급량이 부족해지자 국가 차원에서 산업용 전력을 확보하고 가정용 전력 소비를 줄이기 위해 도입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주택용에만 누진제를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런 문제 제기 속 누진제는 12단계, 9단계, 6단계 등 여러 차례의 누진 구간 조정을 거쳐 2016년부터 현행 3단계 체계로 재편됐다.
이 과정에서 2014년 전료소비자들은 전기요금 약관이 사용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하다며 소송을 냈다. 1·2심은 모두 소비자 패소 판결을 내렸는데, 이날 대법원 판단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법원은 "누진제는 전기사용자 간에 부담의 형평이 유지되는 가운데 전기의 합리적 배분을 위해 도입된 경우"라며 "설령 누진제가 구 전기사업법의 목적과 취지를 달성하는 데 가장 적합한 요금방식이라고 보기에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원고(소비자) 측 주장처럼 한전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전기 사용자에게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고, 사회적·정책적으로도 누진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가정용 판매전력량 전체 14.5% 불과…'팔아도 적자' 쌓이는 구조에 절약이라도
현행 가정용 누진제 유지가 지금 한전이 겪고 있는 천문학적 재정위기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전체 전력소비에 가정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한전은 '팔아도 적자'만 쌓이는 현행 요금 체계 구조에서 그나마 소비자들의 에너지 절약을 위한 동기부여라는 데 의의를 부여하는 모습이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우리나라 용도별 판매전력량(2021년 기준)에서 가정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14.5%다.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등 산업용이 전체 77%를 차지하고 있다.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에 대한 조정 없이는 한전의 누적적자 해소는 어렵다는 애기다.
한전은 지난해에만 32조6034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는 전년(5조8465억원)보다 26조7569억원이 증가한 규모다.
단순한 시장논리를 적용하면 더 많이 팔아 수익을 내면 될 일이지만,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글로벌 에너지 위기 속 전기요금은 '팔수록 적자'가 급격히 커지는 현상이 더 심화했다.
전기 생산에 드는 연료비 인상 폭을 요금 결정 시 제때 반영해야 하지만, 물가관리를 이유로 한 정부 결정에 발목이 잡히면서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한전 관계자는 "누진제 도입 취지가 수익적인 부분에 기여한다기보다는 에너지 과소비를 막기 위한 효율화 측면에 맞춰진 만큼 현 재정난 타개에 기대하는 부분은 많지 않다"면서 "워낙 긴 시간이 걸린 소송에 종지부를 찍은 만큼 경영정상화에 더 매진하겠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연료비 원가를 반영하지 못하는 고질적 병폐를 해소하기 위해 현재 '전기요금 현실화'를 추진 중이다. 단계적 요금 현실화를 통해 우선 한전의 누적적자를 해소하고, 나아가 연료비 원가반영을 통한 요금 결정 체계 시스템을 구축해 추후 요금 결정에 있어 외부 환경적인 요소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막겠다는 구상이다.
한전 정승일 사장도 지난 28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원가 기반의 전기요금 체계 합리화와 경영 전반의 효율 극대화를 통해 경영 정상화 시기를 단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정부는 오는 31일 2분기 전기요금 인상안 발표를 앞두고 있다. 한전이 제시한 2분기 요금 인상폭은 1분기(㎾h당 13.1원)와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부의 물가 부담 기조 등을 고려해 소폭 인상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uni1219@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