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정부, 미 관세협상 '선방'했지만…車관세 확정·시장 개방 '과제'
[李대통령 100일]짧은 기간 악조건 불구하고 선방한 한미 관세 협상
아직 명문화되지 않은 협상 결과…계속되는 美 압박 대응 과제
- 김승준 기자
(세종=뉴스1) 김승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센 '관세 압박' 속에서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통상 대응은 100일 동안 숨 가쁘게 전개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일주일도 채 안 돼 통상·외교 라인을 전격 임명하며, 미국과의 협상전에 전격 돌입해야 했다. 준비 시간이 짧은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정부는 관세 인하와 산업 협력이라는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며 첫 고비를 넘겼다.
다만 협상은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 자동차와 반도체 관세 인하가 행정명령으로 공식화되지 않았고, 미국의 추가적인 시장 개방 요구 가능성도 남아 있어 이재명 정부는 첫 성과를 지켜내는 동시에 새로운 압박에 대응해야 하는 중대한 시험대에 서 있다.
지난 6월 4일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2월부터 이어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시작 일주일도 되지 않은 6월 10일, 첫 차관급 인사로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을 임명했다. 당시 대통령실은 이 같은 속도감 있는 인사의 배경으로 '한미 관세 협상'을 지목했다. 같은 달 29일 첫 장관 인선에서도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포함되면서 통상 수장 공백을 최소화하는 조치가 이어졌다.
김정관 장관은 취임식 후 이틀 만인 7월 23일 미국으로 출국해 관세협상에 나섰다. 이후 김 장관과 여 본부장은 워싱턴, 뉴욕, 스코틀랜드, 다시 미국 워싱턴을 오가며 미국 측과 집중 협상을 이어갔다.
그 결과 7월 31일 한국 대상 국가별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자동차 품목관세도 유럽·일본과 유사한 수준인 25%에서 15%로 낮추는 성과를 도출했다. 아울러 아직 발표되지 않은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한국이 '최혜국' 대우를 받기로 하면서 다른 국가 대비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확보했다.
대신 한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이 중 1500억 달러는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로 불리는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에 투입되며, 2000억 달러는 반도체·배터리 등 전략산업 협력에 쓰일 예정이다.
또한 미국 측의 요구가 거셌던 한국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은 일단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권 교체로 인한 짧은 협상 시한이라는 불리한 여건 속에서 선방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 단장은 "정권 교체로 인해 준비·대응 시간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쟁국 대비 최소한 불리하지 않은 협상 성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며 "관세 협상 결과로 (조선업 등) 산업 협력을 이끌어낸 것은 일부 유리한 측면이 있으며, 농산물 개방이나 비관세 장벽과 관련해서도 넘어간 것은 성과"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대규모 관세 부과라는 큰 고비는 넘겼지만, 협상 결과를 확정 짓고 불확실한 통상 환경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은 일종의 구두 합의로, 아직 명문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한국의 대미 수출 주력 품목인 자동차의 관세를 15%로 인하한다는 행정명령이 아직 발효되지 않아, 현재 여전히 25%의 품목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한국보다 앞서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한 일본은 지난 4일 '미국–일본 협정 이행'이라는 행정명령을 통해 자동차 관세를 15%로 인하하는 내용을 공식화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일본은 미국과의 구두 합의 당시 쌀 시장 개방 등 이견이 적었기 때문에, 유럽연합(EU)이나 한국보다도 먼저 행정명령 서명을 얻어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은 일본에 비해 상황이 더 복잡하다. 미국은 자국 시장이 개방되며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한국에도 시장 개방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주한미군 관련 안보 이슈까지 얽혀 있어 고차방정식 같은 복잡한 상황"이라며 "정부가 미국을 잘 설득해 1차 합의는 이끌어냈지만, 최종 합의문 도출까지는 더 큰 고심이 필요할 것이다. 일정 부분 시장 개방은 불가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과일과 같은 원예 분야에서 일정 수준의 시장 개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수동 단장은 "사과 등 일부 과수는 국내 가격이 너무 높은 상황이라 소비자 후생을 고려해 일부 개방 정도는 수용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장상식 원장도 "미국이 요구하는 디지털 분야 독점 규제 도입을 미루는 등 일정 부분 양보하고, 농축산 분야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가격이 높은 원예·과일 등에 대해서는 양보해야 하지 않나 싶다"며 "정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미국의 요구가 강경할 경우, 국내 핵심 산업이 아닌 분야에 대해 조금 더 양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해당 업종에 대한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수출 시장에서의 미·중 의존도 완화를 위해 시장 다변화에 나설 방침이다. 특히 일본, 호주, 캐나다 등 12개 국가가 참여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CPTPP) 가입을 검토 중이다.
CPTPP에 가입하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회원국들과의 시장 접근성이 높아지지만, 그만큼 한국 시장도 개방해야 한다. 이미 2022년 한 차례 CPTPP 가입 논의가 있었지만, 농업계를 중심으로 한 국내 반발로 절차가 진전되지 못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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