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파고 속 한은 신현송號 출범…환율·물가·성장 '3중고' 시험대
21일 취임해 공식 업무 시작…임기 4년
고물가·고환율에 성장 둔화까지…'통화정책 운용 폭' 제약
- 이철 기자
(서울=뉴스1) 이철 기자 = 신현송 한국은행 신임 총재가 21일 공식 취임하며 4년 임기를 시작한다.
국제금융기구와 학계를 거치며 이론과 실무를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 신 총재지만,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와 맞물린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취임 초기 시험대로 부각되고 있다.
현재 한은은 고물가·고환율 압력 속에서 경기 둔화까지 방어해야 하는 정책적 딜레마에 처해 있다. 통화정책의 운용 폭이 극도로 제약된 상황인 만큼, 신 총재가 내놓을 취임 일성에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신 총재는 이날 취임식을 열고 공식 업무를 시작한다. 한은 총재의 임기는 4년이다.
앞서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는 전날 전체회의를 열고 신 총재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같은 날 보고서를 재가했다.
신 총재는 총재 취임 직후 물가 상승 압력이라는 핵심 과제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8.80(2020=100)으로 전년 동월 대비 2.2% 상승했다. 상승폭은 지난 1월과 2월 상승률인 2.0%에서 0.2%포인트(p) 확대됐다.
물가 상승을 주도한 것은 석유류다. 중동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석유류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9.9% 올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인 2022년 10월(10.3%)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여기에 석유를 원료로 쓰는 가공식품·외식 등 2차 제품에는 아직 가격 상승이 본격 반영되지 않은 상태다. 이에 따라 다음 달부터 물가 상승률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수입물가도 크게 올랐다. 지난달 수입물가(원화 기준)는 전월 대비 16.1% 급등해 1998년 1월(17.8%) 이후 28년 2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원유 수입물가는 전월 대비 88.5% 급등하며 198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신 총재도 최근 물가 추이에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물가 상승세가 강할 경우 통화 정책(기준금리 인상)에 변화를 줄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15일 인사청문회에서 "한국처럼 유가에 민감하고 비중이 높은 경제에서는 유가 충격에 상당히 취약하다"며 "중동 사태가 신속하게 해결되지 않는 이런 상황에서 물가 압력은 계속 더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동 리스크가 계속 진행돼서 근원 물가나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전이되고 2차 파급효과가 있으면 통화 정책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율 역시 변수 중 하나다. 달러·원 환율은 미국·이란 간 2주 휴전 합의 이후 1470원대(20일 주간거래 종가 기준)로 내려왔다. 하지만 최근까지 1520원대에 이르렀고, 언제라도 1500원을 넘을 수 있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신 총재의 데뷔 무대가 될 다음달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주목하고 있다. 당초 한은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동결 기조를 종료하고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금리를 인하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동 전쟁 여파로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다만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최근 중동 전쟁으로 인해 저성장 우려가 확산하고 있는 점은 신 총재의 운신의 폭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앞서 중동 전쟁 시작 전 국내외 주요 기관은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일제히 상향 조정했다. 반도체 업황 개선에 성장 기대감이 커진 영향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2월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을 기존 1.8%에서 0.1%p 상향한 1.9%로 제시했고, 한은도 '2월 경제전망'에서 성장률 전망값을 1.8%에서 2.0%로 0.2%p 상향했다.
그러나 2월 말 중동 상황으로 인한 공급망 차질이 현실화하면서, 주요 기관과 글로벌 투자은행(IB)은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연이어 내려 잡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달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1.7%로 0.4%p 낮췄다. 씨티는 2.4%에서 2.2%, 바클리는 2.1%에서 2.0%로 하향 조정했다.
이와 관련해 신 총재는 경기 부양보다 물가 안정이라는 중앙은행 본연의 책무에 무게를 두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다만 정부가 26조 2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는 등 경기부양에 힘을 쏟는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재정정책과 엇박자가 날 수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신 총재는 지난 17일 "통화정책의 핵심은 물가 안정"이라며 "한국은행은 한국은행법에 명시된, 바로 그대로 통화 정책을 통해서 물가 안정을 이루는 것이 가장 큰 책무"라고 말했다.
'물가보다 성장을 약하게 보는 것 같다'는 지적에는 "약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성장의 기반이 물가 안정이고 금융 안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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