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광탈' AI MV의 역주행…'HELLO WORLD'의 기후 경고 [황덕현의 기후 한 편]

유니세프·농식품부와 일한 이기헌, 수주 낙마 뒤 AI 디스토피아
제작비 낮추고 속도 높인 생성형 AI…영상 제작자 일감까지 위협

편집자주 ...기후변화는 인류의 위기다. 이제 모두의 '조별 과제'가 된 이 문제는 때로 막막하고 자주 어렵다. 우리는 각자 무얼 할 수 있을까. 문화 속 기후·환경 이야기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끌고, 나아갈 바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광고대행사 악당컴퍼니 이기헌 감독이 제작한 인공지능(AI) 기반 음악영상(MV) 'HELLO WORLD' ⓒ 뉴스1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파이선(python)이나 자바(Java) 등 프로그래밍 언어는 대개 첫 화면이 'Hello, World!'를 띄우며 시작한다. 새로 만든 프로그램이 세상에 건네는 첫인사다. 그런데 인공지능(AI) 뮤직비디오 'HELLO WORLD'에서 이 말은 시작보다 고별에 가깝다.

노란 옷을 입고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AI 캐릭터 '코디'는 밝은 목소리로 세상에 인사한다. 화면은 이내 뒤집힌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인 해변과 바다, 그물에 얽힌 물범과 거북, 불타는 숲과 도시, 핵폭발과 전쟁, 사람 없이 남겨진 자동차와 상점이 빠르게 지나간다. 놀이공원의 운행 종료를 알리듯 코디는 인류에게 이제 '최상위 포식자'의 왕관을 반납하라고 말한다.

노래는 인간이 기후 위기와 전쟁을 일으키고도 이를 '진보'와 '평화'라고 불렀다고 비튼다. '플라스틱 바다, 완벽한 범죄'라고 조롱하다가, 끝내 "인류가 인공지능을 만들었다"며 책임을 되돌린다.

AI가 어느 날 스스로 악당이 됐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인간의 역사와 거짓말, 유행과 공포를 학습한 기계가 입력받은 세계를 그대로 비춰 보여주는 구조다.

광고대행사 악당컴퍼니 이기헌 감독이 제작한 인공지능(AI) 기반 음악영상(MV) 'HELLO WORLD' ⓒ 뉴스1

약 2분 50초 길이의 영상은 종합광고대행사 악당컴퍼니의 이기헌 감독이 생성형 AI를 활용해 만들었다. AI 캐릭터 코디를 중심으로 음악과 영상, 서사를 하나의 작품으로 엮어 AI 공모전에 출품했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탈락 이유가 공개된 것은 아니다. 다만 AI가 탄소중립과 더 찬란한 문명을 열어줄 것이라는 낙관보다 인간과 기계가 함께 파국으로 향할 가능성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주최 측이 기대한 방향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모전 밖의 반응은 달랐다. 영상은 공개 뒤 인스타그램에서 조회 수 300만회를 넘겼다. 기술적 완성도보다 이야기가 먼저 보였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 감독은 음원에 대한 반응이 이어지자,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 등 음악 플랫폼에도 곡을 등록했다.

이 작품의 역설은 AI가 그린 파국 안에 AI 자신도 들어 있다는 데 있다. AI는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영상과 노래를 빠르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연산에는 데이터센터와 전력망이 필요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2025년 약 485TWh에서 2030년 950TWh 안팎으로 거의 2배 늘고, 이 가운데 AI 중심 데이터센터의 소비량은 3배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은 2025년에만 17% 늘었다. 효율은 빠르게 개선되고 있지만 이용량과 고성능 연산 수요는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가사에서 AI는 인간에게 '나는 네가 선택한 결과'라고 말한다. AI의 기후 영향도 알고리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데이터센터를 어디에 짓고, 어떤 전기로 가동하며, 효율을 얼마나 높이고, AI를 어디에 활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사람과 기업, 정부다. 재생에너지와 저장장치가 늘어나더라도 급증한 전력 수요의 일부는 당분간 가스와 석탄 발전이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영상 뒤에는 또 다른 현실이 놓여 있다. 이 감독이 세운 악당컴퍼니는 유니세프와 농림축산식품부, 서울우유, 파라다이스시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등과 작업하며 경력을 쌓아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치열한 업계 경쟁에 AI를 활용한 저가·고속 제작까지 겹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HELLO WORLD'도 여러 차례 수주에 실패한 뒤 짬을 내 만든 영상이다.

광고업계 전체가 마주한 변화이기도 하다. 미국인터랙티브광고협회(IAB) 조사에서는 광고 구매자의 80%가 미디어 기획과 집행에 생성형 AI를 사용하거나 도입을 검토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 현재 캠페인 전 과정에 AI를 완전히 통합한 광고회사·브랜드·매체사는 30%였지만, 아직 통합하지 않은 곳의 절반은 2026년까지 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광고회사 절반은 브랜드가 AI 역량을 내부에 구축하면서 외부 대행사 의존도를 낮출 가능성을 우려했다.

AI는 작은 제작사가 과거보다 적은 비용으로 음악과 캐릭터, 3D 장면을 갖춘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했다. 동시에 다른 제작사와 프리랜서, 촬영·편집 인력의 일감을 줄이고 가격을 낮추는 경쟁자이기도 하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생성형 AI가 영화와 음악, 언론 등 문화산업의 제작 업무뿐 아니라 창작과 판단 과정까지 바꾸면서 일자리 대체와 보상, 창작자의 통제권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 점에서 'HELLO WORLD'는 AI로 만든 AI 비판물에 그치지 않는다. AI를 활용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지만, 활용할수록 자신이 하던 일의 가격과 방식이 바뀌는 창작자의 현실까지 작품 밖에서 재연한다. 인간에게 학습된 AI가 인간을 밀어내는 영상 속 장면과 AI를 이용해 살아남으려는 광고회사가 AI 때문에 일감을 걱정하는 현실이 겹친다.

공모전 심사는 이 어두운 이야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온라인의 젊은 이용자들은 달랐다. 이들이 파국을 좋아해서라기보다 기술이 언제나 더 깨끗하고 풍요로운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자신의 현실을 납득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일 수 있다. 기후 위기와 전쟁, 불안정 노동과 AI 자동화는 이미 같은 화면에 떠 있다.

코디는 인간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 뒤 알고리즘 안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작별이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AI가 학습할 다음 역사는 지금 인간이 만들고 있다. 'Hello, World!'를 인류의 퇴장문이 아니라 새로운 첫 문장으로 남기는 일도 결국 인간의 몫이다.

황덕현 경제부 기후환경전문기자ⓒ 뉴스1

ac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