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위 포뇨' 현실로…탈플라스틱 지연, '쓰레기 바다' 커진다 [황덕현의 기후 한 편]
산유국, 연료 수요 감소 대응…신재 플라스틱 생산 확대 가능성
-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최근 한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며 초여름 같은 날씨가 이어졌다. 폭염의 강도, 기간 모두 무섭지만, 이와 더불어 우려되는 건 찬 음료 테이크아웃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여름에는 푸른 바다가 떠오르지만, 그 바다에는 육상에서 흘러들어간 플라스틱 쓰레기가 '섬'(島)을 만들고 있다.
이런 생각은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2008년 작품 '벼랑 위의 포뇨'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바닷속 쓰레기 더미에서 시작된다. 플라스틱과 병, 캔이 뒤엉킨 바닷속에서 물고기 소녀 포뇨가 등장한다. 밝고 따뜻한 애니메이션으로 기억되지만, 출발점은 인간이 버린 쓰레기로 뒤덮인 바다다.
포뇨가 육지로 올라오자 바다는 곧 균형을 잃는다. 파도는 커지고 도시가 잠긴다. 포뇨의 아빠인 '후지모토'는 바다와 해양생태계를 해치는 인간을 증오하며 인간을 '멸종'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영화는 이를 환상적으로 그리지만 구조는 단순하다. 인간의 소비가 자연의 질서를 흔들고, 그 결과가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설정이다. 바다를 떠도는 쓰레기는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탈플라스틱 논의가 확산하고 있지만, 구조는 오히려 반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중동 전쟁으로 석유와 나프타 공급망이 흔들리자 화석연료 기반 소비 체계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동시에 산유국과 석유기업은 연료 수요 감소를 메우기 위해 플라스틱 원료 생산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에너지 전환이 오히려 플라스틱을 늘리는 '역설'이다. 재생에너지로 전환되더라도 남는 석유는 플라스틱으로 흘러간다. 글로벌 석유화학 산업은 이미 공급 과잉 국면에 접어들었고, 원유에서 직접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공정 확대까지 맞물리며 저가 플라스틱 원료 공급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값싼 신재 플라스틱이 쏟아지면 재생원료나 바이오 소재는 경쟁력을 잃는다. 재활용 확대만으로는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생산 자체를 줄이지 않으면 탈플라스틱은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상황도 비슷하다. 이상고온으로 일회용품 소비 증가가 예상되는 가운데, 핵심 정책인 '컵 가격 표시제'(컵 따로 계산제) 도입은 시행이 지연되고 있다. 지난해 말 제도발표 이후 구체적인 시행 시기와 방식이 제시되지 않으면서 현장에서 체감되지 않고 있다. 정책이 예고에 그치며 흐지부지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상반기 중 '탈플라스틱 종합대책'의 구체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이지만, 여름철 소비 증가를 앞둔 4월 말까지도 세부 실행 방안에 대한 공식 언급은 제한적인 상황이다. 일회용품 사용이 가장 급증하는 시기를 앞두고 정책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전남 여수에서 열린 녹색대전환(GX) 국제주간 및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기후주간에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중동 전쟁 발발로 쓰레기봉투 등과 관련해 원천적으로 플라스틱을 감량하고 이미 생산된 것은 자원순환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조만간 탈플라스틱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계와 민생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국무회의 등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영화 속 바다는 한 번 무너지자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전쟁은 에너지 공급을 흔들고, 에너지는 다시 플라스틱으로 전환된다. 그 결과는 결국 바다와 인간 모두에게 돌아온다.
포뇨가 떠오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영화 속 바다가 더 이상 상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래세대에 '쓰레기 바다' 또는 '인류 멸종'을 남기지 않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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