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진짜 사장" 노란봉투법 시험대…공공부문 '사용자성' 논쟁 확산

중앙정부·지자체 향한 교섭 공문 잇따라…사용자성 범위 쟁점
노동위 판단 역할 커질 듯…정부 "사안별 선별 수용" 방침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3.10 ⓒ 뉴스1 최지환 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본격 시행되면서 공공부문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정부를 '실질적 사용자'로 지목하며 교섭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공공부문에서 원청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를 둘러싸고 노사 간 해석이 엇갈리면서, 정부가 교섭 당사자로 나서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도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제도 시행 초기부터 교섭 구조와 사용자성 판단을 둘러싼 충돌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18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노란봉투법은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경우 사용자로 본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를 근거로 공공부문 하청노동자들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을 '실질적 사용자'로 지목하며 교섭 요구에 나서고 있다.

공공부문, 대정부 교섭 움직임 본격화…241개 조직, 118개 원청에 공문 발송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노조의 원청을 상대로 한 교섭 요구는 급증하는 모습이다. 노동부는 법 시행 이후 이틀 동안 248개 원청 기업이 453개 하청 노조로부터 교섭 요구를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공공부문에서도 대정부 교섭 요구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10일 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 5개 산별조직 241개 단위조직이 118개 원청사용자에게 교섭요구 공문을 발송했지만 다수의 기관은 "노동부 판단을 받아보겠다", "법률 검토 중"이라는 이유로 교섭을 유보하거나 사실상 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노동계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노정 간 긴장도 확대되는 분위기다. 민주노총은 전날(17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부문 사용자들이 단체교섭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며 정부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을 '교섭 회피'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발했다.

노동계는 일부 지자체가 산하기관에 사용자성을 부정하라는 취지의 지침을 전달하거나, 공공기관이 법률 자문을 통해 교섭 회피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이양수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정부가 단체교섭 판단지원위원회를 교섭 회피의 도피처로 활용하고 있다"며 "공공기관이 노동자 처우 개선이 아닌 법률 대응에 비용을 쓰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법률원 측은 "개정 노조법은 노동조건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주체와 교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정부가 스스로를 예외로 두고 법 적용을 축소하는 것은 부당하다. 정부는 헌법이 보장한 단체교섭권의 직접적 당사자로서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계 "정부, 공공기관 예산·인사에 관여하며 '지배력' 행사"

노동계가 정부를 사용자로 보는 근거는 '지배력'에 있다. 공공부문 노동계는 정부가 공공기관의 예산과 인사 운영에 관여하는 구조를 감안할 때, 해당 기관 소속 노동자의 근로조건에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총인건비 제도와 각종 예산지침 등을 통해 임금 수준과 정원, 조직 운영 방향이 좌우된다는 점에서 정부를 단순한 정책 주체가 아닌 실질적 사용자로 봐야 한다는 논리다.

이 같은 시각에 따르면 공공기관 노사 갈등의 대상 역시 기존 기관 단위를 넘어 상위 감독기관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그동안 서울교통공사나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등을 상대로 진행되던 노사 갈등이 향후에는 각각 서울시나 국토교통부 등 상위 기관을 직접 겨냥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정부는 '일률적 사용자 인정'에는 선을 긋고 있다. 노동부는 해석지침을 통해 법률이나 국회 의결 예산에 따라 결정되는 사항은 공공정책 영역으로, 원칙적으로 개별 노사 교섭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 중이다. 다만 외부 위탁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경우에는 사안별로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여지는 열어두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기준에 따라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범위에서는 교섭에 성실히 임하되, 그 외 사안은 노사 간 소통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교섭 구조와 판단 기준을 정립한 뒤 민간으로 확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편 지역 현장에서도 실제 교섭 요구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경기신용보증재단노동조합은 경기도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지방정부의 사용자성 인정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노조는 경기도가 기관 운영과 예산 등에 실질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 노조는 교섭 요구 이후 경기도가 관련 사실을 공고하지 않자, 지난 16일 교섭 절차 이행을 촉구하는 공문을 추가로 발송했다.

정치권에서도 논쟁이 가세하는 분위기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최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이 교섭에 나서지 않으면 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하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는 "법 시행 직후부터 교섭 요구가 폭증하며 현장이 혼란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공공부문의 모범적 역할을 적극 추진하겠다면서 "앞으로도 개정 노조법 취지를 현장에 구현하기 위해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선도적 노사관계 모델을 구축해 현장의 신뢰를 쌓고 민간부문으로의 확산을 위한 주춧돌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freshness41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