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만나는 '쉬었음' 조카…"눈 낮춰라" 조언이 '비수'인 이유

기대임금 3100만원·중소기업 선호 48%…눈 낮춰도 갈 곳 없는 '쉬었음' 76만
구직 14개월 넘으면 은둔 위험 7배 급증…방치 시 사회적 비용 연 5조원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시민들이 채용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2026.2.11 ⓒ 뉴스1 오대일 기자

(세종=뉴스1) 김승준 기자 = 명절이면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 사이로 "요즘 뭐 하고 지내니?"라는 안부가 오간다. 대학을 졸업한 지 1년 된 김모(27) 씨에게 이 질문은 가장 부담스럽다. 그는 6개월째 '쉬었음' 상태다. 대기업 대신 중소기업 위주로 지원했지만 서류 전형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주변에서는 "눈높이를 좀 낮춰보라"는 조언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김씨는 이미 연봉 기대치와 직무 조건을 여러 차례 조정했다. "경력직 우대 공고가 많아 신입이 설 자리가 좁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씨와 같은 15~39세 '쉬었음' 청년은 올해 1월 기준 76만 명에 달한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유보임금은 3100만 원으로 다른 미취업 청년층(3200만 원)과 큰 차이가 없었다. 가장 선호하는 일자리 역시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48%)이었다.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조언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눈높이 낮춰라?"...쉬었음 청년 48% "중소기업 가고 싶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쉬었음'은 비경제활동인구 중 지난주 활동 상태를 별다른 구직 활동 없이 '그냥 쉬었음'이라고 답한 경우를 말한다. 육아·가사, 통학, 구체적 취업 준비 활동 등에 해당하지 않는 청년층이 포함된다. 올해 1월 기준 연령대별로는 10대 3만 8000명, 20대 39만 6000명, 30대 32만 6000명이다.

지난해 8월 비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20·30대의 쉬었음 사유는 '원하는 일자리 찾기 어려움'(31.0%)이 가장 높았다. 이어 건강(20.7%), 다음 일 준비(19.1%), 일자리 없음(9.3%) 순이었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쉬었음 청년을 단순히 '더 나은 일자리만을 고집하는 집단'으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임금 기대 수준이 다른 미취업 청년과 유사할 뿐 아니라, 선호 일자리도 중소기업(48%)이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창업을 선호한다는 응답 비율(14.5%)도 취업자(11.5%)나 구직자(4.6%)보다 높게 나타났다.

보고서는 최근 들어 일자리 경험이 있는 청년 중 비자발적 이유로 일을 그만둔 사례가 늘고 있으며, 4년제 대졸 이상 비중도 증가하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인공지능(AI) 기반 기술 변화, 기업의 경력직 선호 강화, 경기 둔화 등 구조적·경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쉬었음'이라는 통계 언어의 어감과 달리, 상당수는 스스로 쉼을 택했다기보다는 기술 변화와 경력직 선호, 경기 둔화 속에서 '쉬게 된' 청년들에 가깝다는 것이다.

ⓒ 뉴스1 김지영 디자이너
10명 중 8명 "불안", 휴식 아닌 '절망의 시간'...전문가 "사회적 지원으로 고립 막아야"

문제는 쉬었음 상태가 길어질수록 심리적·사회적 위험이 커진다는 점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쉬었음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7.2%가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는 경제적 어려움(71.1%), 사회생활 단절로 인한 자신감 하락(62.5%), 미래 준비 부족(53.9%), 이전 수준 또는 희망 수준 직장 취업의 어려움(37.3%) 등을 꼽았다. 쉬었음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불안과 고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실업자와는 달리 청년층 '쉬었음' 인구는 이러한 상태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경우, 노동시장에서의 영구적 이탈이나 취업·교육·직업 훈련 등을 하지 않는 니트(NEET)족이 될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이들은 사회적으로 주요한 정책적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경제인협회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동으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쉬었음 청년의 은둔 확률은 취업 청년 대비 약 7배 높은 것으로 추정됐다. 구직 기간이 14개월에 이르면 은둔 확률은 24.1%로 상승하고, 42개월이 지나면 50%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둔 청년 1인당 연간 사회·경제적 비용은 약 983만 원으로 추산됐다. 이를 전체 규모에 적용하면 연간 약 5조 3000억 원에 달한다. 연구진은 쉬었음 상태에서 고립·은둔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조기에 차단하는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은 쉬었음 청년 증가를 개인의 '눈높이' 문제로 환원하기보다 노동시장 구조 변화와 경기 상황을 반영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미 기대 수준을 낮췄음에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층이 적지 않은 만큼, 직무 전환 지원과 경력 연계 프로그램 등 안전망 강화가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seungjun24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