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노동 줄인다"…노사정,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본격 착수

OECD 평균보다 151시간 더 일하는 韓…AI 활용시 주 1.5시간 단축 효과
제도 개선 병행 목소리도…주 4.5일제 시범·연차휴가 개선 추진

청계천에서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2025.5.13/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 장시간 노동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노사정 협의체가 본격 가동된다. 고용노동부와 근로자·사용자 대표, 전문가가 참여하는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이 24일 출범하면서, 법·제도 개선을 넘어 생산성 향상과 일·생활 균형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 논의가 시작됐다.

한국의 연간 실노동시간은 2023년 처음으로 1800시간대에 진입했지만 OECD 평균보다 여전히 151시간 많다. 저출생·고령화, 산업재해, 낮은 노동생산성 등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시간 단축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이번 논의가 추진됐다.

앞서 2015년 노사정은 이미 OECD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 문제를 공동 과제로 설정하고 주 52시간제 정착, 근로시간 단축 지원제도 확대, 유연근무제 확산 등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 2023년 처음으로 연간 실노동시간이 1800시간대로 진입했지만, 여전히 OECD 평균 대비 긴 노동시간 구조는 해소되지 않았다.

장시간 노동 관행이 지속되는 한, 일·가정 양립은 물론 산업재해 감소나 노동생산성 향상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이에 따라 추진단은 OECD 평균 수준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주요 논의 의제는 △포괄임금제 금지와 연차휴가 활성화 등 제도 개선 △노동생산성 향상 방안 △고용률 제고 △일·가정 양립 지원 등이다.

추진단은 배규식 전 한국노동연구원장과 김유진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이 공동 단장을 맡았으며, 노사정 대표와 전문가 등 총 17명이 참여한다. 향후 3개월 동안 집중 논의를 진행해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날 첫 회의에서는 한국은행이 'AI 빠른 확산과 생산성 효과'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AI 활용 시 전체 노동시간은 평균 3.8% 줄어 주 40시간 기준 약 1.5시간 단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5.4%)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경력이 짧은 노동자일수록 단축 효과가 크고 업무 숙련 격차를 줄이는 '평준화 효과'도 확인됐다.

직업별로는 전문가·관련 종사자가 AI 활용률(69.2%)과 노동시간 감소율(2.8%) 모두 가장 높았으며 두 요소는 양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이는 전문 직군에서 AI 활용이 노동시간 단축과 생산성 제고를 동시에 견인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AI 활용 효과가 일부 직군에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지만, 한국은행은 "AI 도입이 업무 숙련도의 격차를 완화해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즉 AI는 단순히 노동시간을 줄이는 수단을 넘어 노동시장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AI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시간 단축 효과를 현실화하려면 제도 개선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포괄임금제 폐지나 휴가 활성화 같은 법·제도적 장치가 병행돼야 하고, 동시에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 활용이 맞물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AI와 디지털 전환이 노동시간 단축과 직결되는 만큼, 정부의 노동정책과 디지털 정책이 함께 가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해 국정과제에 '주 4.5일제 시범사업'과 연차휴가 개선을 포함시키면서 추진단에서는 포괄적으로 이같은 논의를 이어갈 전망이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장시간 노동의 원인인 포괄임금 금지, 연차휴가 활성화 등 법·제도적 개선부터 추진하겠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한 주 4.5일제의 합리적 정착 방안을 모색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실노동시간 단축은 장시간 저임금 노동체제와 산업현장의 근본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다. 단번에 강제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노사가 주체가 되어 자율적으로 다양한 방안을 찾고, 정부도 이를 적극 지원하겠다"라고 밝혔다.

freshness41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