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로 年38조원 증발"…정부, 기업 퇴출까지 겨눈 종합대책 가동

중대재해 기업에 영업익 5% 과징금·입찰 3년 제한
노동계 "취약계층 대책 보완 필요"…경영계 "처벌 일변도" 반발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 정부가 매년 2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산재공화국'의 오명을 끊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내놨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38조 원에 달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재 사망률이 여전히 최하위권에 머무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 그 배경이다.

정부는 중대재해가 반복된 기업에 영업이익의 최대 5%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하고, 공공입찰 참가를 최대 3년간 제한하는 등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는 한편, 소규모 사업장과 취약노동자 보호를 위한 맞춤형 지원책도 함께 추진한다.

산재공화국의 현실…매년 2천명 목숨 잃고 38조원 잃었다

1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자는 2023년 기준 2035명으로 하루 평균 6명꼴로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은 여전히 최하위권이다. 정부는 직접적인 인명 피해뿐 아니라 치료비·보상금·생산성 손실 등을 합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38조원에 달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이는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구조적 리스크로, 단순히 개별 사고 차원을 넘어선 국가적 과제로 제기돼왔다.

특히 5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서 전체 산재사망의 80%가 발생하고 건설·제조업 등 재래형 위험에 노출된 업종에서 사고 비중이 높다. 이주노동자·특수고용노동자·고령 노동자 등 취약계층의 산재율도 빠르게 증가해 정책적 사각지대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가 전날(15일)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은 기존 노동부 중심 대책과 달리 범부처 협업으로 마련된 종합판이다. 단순히 사고 이후 처벌에 그치지 않고, 기업 경영 전반에 안전 관리 책임을 내재화하도록 유도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핵심은 경제적 제재 강화다.연간 3명 이상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에는 영업이익의 최대 5%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하고, 최소 30억 원 이상을 물리도록 했다.

공공입찰 제한 기간은 2년에서 3년으로 확대된다. 낙찰자 평가 항목에 '중대재해 위반'을 신설해 건설공사뿐 아니라 물품·용역 계약에도 안전 실적을 반영한다. 이와 함께 법인 분할·명의 변경을 통한 제재 회피를 막기 위해 제재 승계 규정도 도입한다.

건설업에는 보다 강도 높은 장치가 도입된다. 최근 3년간 영업정지 처분을 두 차례 받은 건설사가 또다시 중대재해로 영업정지 사유를 일으키면 노동부가 관계 부처에 등록말소를 요청할 수 있게 했다. 등록이 말소되면 해당 건설사는 신규 사업·수주·하도급 계약 등 모든 영업활동이 중단돼 사실상 시장 퇴출로 이어진다.

금융·투자 분야 제재도 눈에 띈다. 대출금리·보험료 등 여신 심사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분양보증에 중대재해 리스크를 반영하고, 상장기업은 중대재해 발생 사실과 형사판결을 즉시 공시해야 한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는 이를 ESG 평가에 반영해 투자 제한이나 지분 회수까지 이어가도록 했다.

안전지원·산재예방 병행…2조원대 예산 투입으로 역량 '강화'

정부는 대책 시행을 위해 2026년 2조 723억 원을 투입, 산재 예방과 감독 역량을 강화한다. 1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는 방호장치·스마트 안전장비 지원을 확대하고, 안전보건관리자 선임 의무를 단계적으로 넓힌다.

외국인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서는 해당 사업주의 외국인 고용을 현행 1년 제한에서 3년으로 강화한다. 중대재해에 해당하는 부상·질병이 발생한 경우에는 1년간 고용 제한이 적용된다. 건설업에서는 고용 제한 단위를 ‘현장 단위’에서 '사업주 단위'로 변경해 실효성을 높였다.

감독 체계도 확충된다. 중앙정부는 산업안전감독관을 증원해 2028년까지 감독 대상을 7만 개소로 확대하고, 지자체는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3만 개소를 중점 관리한다. 민간 재해예방기관을 활용해 33만 개소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퇴직자를 안전지킴이로 채용해 현장 지도에 투입한다.

공공기관에도 안전 책임을 강화한다.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기관장 안전 경영 항목을 반영하고, 산재 예방 배점을 현행 0.5점에서 대폭 상향한다. 공공기관 사고사망이 집중되는 건설현장에 대해서는 안전관리등급제 심사 대상을 현재 28개에서 40개 이상으로 늘린다.

건설 현장의 불법 하도급에 대해서는 국토부·노동부 등 관계부처 합동 단속을 정례화한다.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등록 말소 기준을 현행 '5년 내 3회'에서 더욱 강화하고, 원수급인과 하수급인 모두에게 책임을 부과한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안전 사각지대 예방 △노사 역할 확립 △인프라 확대 △제재 강화 등 4개 축으로 제시하며 "올해를 산재왕국이라는 오래된 오명을 벗는 원년으로 삼겠다"고 천명했다. 김영훈 장관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존재 이유이고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것은 노사 모두의 이익"이라며 "산재예방의 주체로서 노사정이 함께 노력하고, 공공기관이 선도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기업 제재가 과도해 위축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와 제재·지원 병행이 제대로 현장에서 작동할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특히 원청-하청 구조가 복잡한 건설업에서는 노사정 협의와 집행력 확보가 최대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안전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2025.9.15/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한편 노동계는 대책의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실효성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은 "산재 근절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고무적"이라면서도 "소규모 사업장과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이주노동자 등 취약계층 대책이 여전히 미흡하다"며 재정지원 확대와 안전보건공시제 확대 등을 요구했다.

민주노총 역시 "대책이 성공하려면 현장에서 실제 작동해야 한다"며 "노동자의 예방활동 참여 보장과 사고사망 외 산재 전반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경영계는 기업 부담을 우려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경총은 "이번 대책은 기업경영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존폐까지 좌우할 수 있다"며 "처벌 일변도에서 벗어나 자율안전관리체계 정착을 위한 지원책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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