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통일 담론' 바람...배경과 과제는?

장성택 숙청으로 촉발된 통일 논의, '北 붕괴'·'급변사태' 상정해 진행되는 양상
섣부른 통일론 제시는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 줄수도
'통일 대박' 이룰 정부의 구체적인 로드맵 제시 필요성 제기

(서울=뉴스1) 서재준 기자 = 지난해 12월 3일 우리 정보 당국에 의해 장성택의 실각 가능성이 알려진 뒤 12월 12일 장성택의 처형이 이뤄지기까지 약 열흘이라는 기간은, 북한 권력 내에서 장성택의 그간의 위상에 비춰봤을 때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와 동시에 국내에서는 북한의 내부정세 불안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정치권과 일부 전문가들로부터 한반도 '급변사태'에 대한 전망과 이에 대한 대응책이 쏟아져 나왔고 나왔고,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점차 북한의 강력한 도발 및 내부적 급변사태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됐다.

당시 상당수 전문가들은 장성택의 숙청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집권 후 2인자로 빠르게 부상하던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을 필두로 한 세력들이 북한 내부에서 장성택 등과 권력 다툼을 벌인 결과일 것으로 분석하며 향후 북한 권력층의 내부 정세가 급박하게 요동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었다.

한편으론 이에 못지 않게 김 제1비서가 이미 오래전부터 장성택에 대한 숙청을 준비해왔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등 이번 숙청이 오히려 김 제1비서의 집권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만만찮게 제기됐었다.

이후 정보 당국이 장성택의 실각 및 처형이 외화벌이 등 이권 다툼의 과정에서 장성택의 비리가 불거져 발생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이른바 '대북 소식통'들이 언론을 통해 속속 장성택의 비리에 연루된 측근들의 실각 및 북한 당국의 조사 상황을 전해오자 장성택 숙청의 원인에 대한 논란과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다소 수그러 들었다.

특히 장성택 처형 이후 곧바로 이어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2주기 행사와, 이후 북한이 '백두 혈통'을 강조하며 김 제1비서의 '유일영도체계'를 강조하는 대대적인 선전전을 펼쳤던 것도 이러한 무마 분위기에 일조했다.

그러나 이후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정원 송년회에서 "2015년엔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며 한반도 정세에 대한 논의는 돌연 '북한 붕괴론'에 맞춰지는 양상으로 흘러갔다.

남 국정원장은 이에 대해 "북한의 불확실성 증대에 따라 북한의 붕괴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상황을 예의주시하라는 취지로 한 말"이라고 해명했지만 정부의 핵심 고위직이 '북한의 붕괴'를 언급한 이같은 해명을 두고 오히려 일부 전문가들은 "정보 당국이 2~3년 안에 '북한의 붕괴' 가능성을 비중있게 살피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느냐"는 관측을 제기하기도 하며 '북한 붕괴론'의 불씨를 살려 나가기도 했다.

이후 김정은 제1비서가 북한의 한 해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 마련 필요성'을 언급하며 일면 유화 제스처를 취하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지펴진 '북한 붕괴론'의 불씨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특히 일부 언론들은 북한의 붕괴 및 남한의 흡수통일을 염두해 둔 듯한 대대적인 통일 담론을 앞세우고 통일비용, 통일로 얻어질 수 있는 이익 등을 제시하며 '북한 붕괴'에 의한 '2015년 통일론'을 뒷받침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한 발언은 국내 여론의 통일 담론을 정점으로 치닫게 하는 계기가 됐다.

다양한 성향의 언론을 비롯한 여론의 흐름은 통일 자체와 통일의 방식 등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의 제시로 이어져서 한동안 잠잠했던 '통일론'에 대한 논의가 모처럼 활발히 진행되는 듯한 양상까지 나타났다.

이같은 분위기는 최근 '대세'처럼 자리매김한 통일 부담론ㆍ회의론ㆍ기피론 등 통일에 대한 일종의 무관심 현상에 비춰보면 긍정적인 효과가 적지 않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다만 최근의 통일 담론이 제기된 배경이 국민 여론으로부터 출발한 '상향식' 논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집권층에 의해 '하향식'으로 촉발된 측면이 있다는 점은 심각하게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이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로 대표되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이 집권 2년차에 들어서도 그다지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더욱 아쉬운 대목으로 평가된다.

박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 언급은 신년 기자회견, 즉 올해 정부 정책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는 자리에서 이뤄졌으나 이후 주무부처인 통일부나 청와대에서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무엇이 '대박'인지에 대한 설명은 정확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전문가들은 남북관계의 개선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제기된 '2015년 통일론', '통일 대박론' 등은 사실상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론에 맞닿아 있는 것이라는 지적을 제기한다.

지난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북한 붕괴' 언급으로 촉발된 상황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관측은 이미 한반도 문제, 남북문제가 비단 남북 양측의 결정 사항만으로 주도될 수 없는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 없는 정부의 섣부른 통일론 제시는 우리 국민은 물론 자칫 북한에도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이에 대해 "당국간 대화는 물론 민간교류도 병행되는 과정에서 통일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양 교수는 특히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이라는 체제와 북한의 주민들을 분리해 대응하겠다는 면이 보이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의문"이라며 "이른바 '급변사태'로 인한 통일은 우리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 현 시점에서 흡수통일이 진행된다면 통일이 '대박' 아니라 '쪽박'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또 박 대통령의 집권 첫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추진되는 과정에서는 크게 언급되지 않았던 '통일론'이 장성택의 숙청과 처형이 이뤄진 뒤 정부 당국자들을 통해 제시되고 있는 듯한 모양새도 바람직 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장성택의 숙청이 '김정은 체제'에 불안정을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은 장성택에 대한 과대평가와 함께 기본적으로 '희망적 사고'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라며 "장성택의 숙청이 꽤 오래동안 준비돼 온 것으로 보이는 점에서 이번 숙청으로 북한 권력층의 불안정성이 발생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위원은 "정부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해 철저히 대비하면서도 한편으론 북한과의 대화 및 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 내에서도 이같은 '통일 담론'의 거세진 흐름이 유익할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통일부 당국자는 "과거에도 언급됐던 '급변사태'나 '북한 붕괴'라는 것은 결국은 언론이 만들어낸 환상이 아닌가"라며 "정부가 이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를 염두해 둔 정책의 추진은 자칫 부작용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seojib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