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 의견받아 탈바꿈한 막사…휴식·훈련에 집중한 공간력 시범현장 [르포]
6인실 생활관 개편…장구류 보관함과 침대 분리해 휴식 질 높여
민간 못지않은 새 체력단련실 마련…"체력 관리할 동기로 작용"
- 김기성 기자
(서울=뉴스1) 김기성 기자 = 2018년 여름, 강원도 화천군의 한 육군 포병대대에서 한 달간 파견 생활을 했었다. 삐걱거리는 수동식 개폐문을 거쳐 영내로 진입하니 암반을 깎고 두꺼운 시멘트로 외벽을 만든 두 평 남짓한 지휘통제실과 본부포대 행정반이 우리를 맞이했다.
세탁기 한 대 앞에서 선후임은 없었다. 적게는 2명, 많게는 6명이 한 번에 세탁물을 욱여넣고 세탁이 끝난 뒤에는 '내 거 네 거' 하며 뒤섞인 옷가지들 속으로 손이 바쁘게 오갔다. 세면장에는 청록색 물때가 가득했고, 흰색 석회수 물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거울은 내 얼굴의 클렌징폼이 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지 그 이유를 대신 말해줬다.
그로부터 8년이 흘러 2025년 말부터 육군은 장병들이 이용하는 공간을 재편·개선해 휴식과 전투력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에서 '공간력 혁신 사업'을 시범사업으로 진행 중이다.
용사(병사)들의 생활공간인 생활관과 세탁실부터 간부들의 공간인 간부연구실, 대대원들이 소통하는 다목적 소통 공간에 이르기까지 10대 필수공간을 조정·개선해 전투력 향상의 토대를 다지겠다는 구상이다.
간부들이 용접기와 페인트 붓을 들고 직접 작업하거나, 용사들이 목장갑을 끼고 석면을 해체하거나 도배하는 모습부터 머리에 그려졌다. 하지만 민간 전문 시공업체를 통해 이 같은 작업을 하고 있다는 육군의 설명을 듣고도 그 결과물이 머릿속에 좀처럼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달 21일 육군의 협조를 받아 올해 2년째 시범사업을 진행 중인 경기도 양평군 11사단 예하의 한 대대급 부대를 직접 찾아가 변화상을 살펴보고 실제 해당 부대에서 생활하고 있는 간부와 용사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공간력 시범사업은 새롭게 건물을 짓는 방식이 아닌, 기존 막사 내부의 생활·행정·유휴 공간을 통합·조정하고 재배치하는 한편 내부 인테리어를 바꾸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기자가 방문한 막사 생활관은 6명이 한 방을 사용하는 구조였다. 침상형으로 20명 이상, 2층 침대를 사용할 경우 16명까지도 수용하던 옛 생활관과 한눈에 대비됐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세 평 남짓한 외실이 나왔고, 미닫이문 너머로 병사들의 개인 침대와 관물대가 한쪽당 3조씩 양쪽으로 총 6조가 마주 보게 배치돼 있었다. 생활관 출입구부터 휴식 공간으로 들어가는 미닫이문까지의 외실에는 방탄복, 방탄모, 군장 등 전투 장구류를 보관하는 관물대가 있었고 텔레비전과 6인용 테이블도 놓여 있었다.
장구류 보관 공간과 휴식 공간을 구분한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침대 한 대당 성인의 배꼽 높이만 한 칸막이 세 장이 둘러쳐져 있던 것이다.
부대 관계자는 "개인 공간, 사생활 확보에 대한 용사들의 수요가 많았고, 어느 높이의 칸막이를 사용할지를 두고 다시 용사들의 의견을 듣는 시간도 가졌다"고 설명했다.
생활관에 방문했을 때 한 장병에게 한번 누워보라고 부탁해 보니 칸막이로 주변의 시선이 완전히 차단돼 보다 마음 편히 휴대전화를 사용하거나 침대에서 독서할 수 있을 것 같은 안락함이 느껴졌다.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고 대부분 단체 생활을 해야 하는 군 생활에서 잠시나마 온전히 개인의 시간을 보내며 마음 편히 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사들은 공간력 혁신 시범사업으로 마련된 6인 생활관의 장점으로 온전한 휴식, 개인 공간 확보, 위생 및 청결 등 세 가지를 꼽았다.
과거 10인 생활관을 써 본 A 병장은 "과거 군장과 방탄복, 야외 훈련에 사용하는 물품을 관물대에 함께 보관했을 때는 장구류에 묻은 흙먼지가 생활관에서 계속 날렸다"면서 "지금은 공간이 나뉘어 있어서 동선이 단순해졌고 휴식 공간에서의 먼지 걱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B 상병은 "개방된 환경에서 딱딱한 구형 보급 삼단 매트리스까지 사용하니 자다가도 자주 깨고 불편했지만 지금은 민간에서 사용하는 스프링 침대에 주변 시선을 막아주는 칸막이까지 생겨 보다 깊게 자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대 3중대 행정보급관(상사)은 "생활관이 바뀌면서 용사들이 '훈련에서 고생한 만큼 편하게 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복귀하기 때문에 생활관을 확실하게 휴식 공간으로 인식하게 된 것 같다"면서 "(공간력 개선이) 앞으로의 훈련을 위한 전투력 복원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 부대는 대대 전체가 하나의 대형 세탁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세탁실에는 드럼 세탁기와 건조기가 하나의 조를 이뤄 총 23개 조가 배치돼 있었다. 개인 세탁물을 담아 놓는 세탁 바구니와 공용 세제를 비롯해 세탁이 끝날 때까지 앉아 기다릴 수 있는 책상도 비치돼 있었다.
과거 중대별로 약 100여 명이 세탁기 3대를 돌려 쓰고, 한참 돌아가는 세탁기 위에 세탁물을 올려놓아 '찜'해 두거나 세면대의 대리석 손빨래대에 세탁비누를 치대던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막사 3층 중앙계단을 타고 올라가자 등변사다리꼴 형태의 병영도서관이 나타났다. 막사 중앙의 대형 통창을 그대로 살려 햇살이 고스란히 들어오는 복층 형태의 도서관이었다.
육군 관계자는 "당초 도서관은 단층으로 보수할 계획이었으나 공사 과정에서 천장 석면을 제거하니 활용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확인돼 복층으로 계획을 수정했다"면서 "용사들에게 복층형으로 도서관을 만들지 물어보고 추진 과정에서의 개선 의견을 추가로 접수해 공사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도서관 2층에는 책장들이 놓여 있었고, 1층에는 8명이 한 번에 앉을 수 있는 개방형 테이블과 1인용 독서실 책상이 창가와 벽면에 줄지어 놓여 있었다. 이들 자리 일부에는 컴퓨터를 놓아 도서관과 사이버지식정보방(사지방) 기능을 한 공간에 합치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도서관은 일과 이후 개인 정비 시간이나 오후 10시 이후 야간 연등 시간에 용사들이 독서를 하거나 개인 공부를 하는 공간으로 쓰인다.
도서관은 육군에서 개발한 '소통과 공감'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대대 장병들을 대상으로 도서관 개선 공모전을 진행해 선발된 의견들이 집약적으로 반영됐다고 한다.
한 용사는 스케치북에, 또 다른 용사는 컴퓨터로 도면을 직접 제작해 공모전에 참가할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고 한다. 또 부대는 장병들에게 도서관에 들어갈 책상, 의자, 책장의 종류를 공개하고 이 중 장병들이 사용하고 싶어 하는 것을 고를 수 있도록 했다.
사실 이번 현장 취재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민간에서는 수십만 원을 내고 사용할 법한 시설을 자랑하는 대대 체력단련실이었다.
새 체력단련실 자리는 원래 장병들이 식당에 가기 위해 잠시 집합하고 이동 중 비를 피하거나, 팔굽혀펴기나 윗몸일으키기 등 간단한 운동을 하는 지붕 있는 공터에 불과했다.
시범사업으로 문을 연 새 체력단련실은 막사 2층을 떠받치는 건물 기둥 사이에 유리창을 설치해 사실상 새로운 실내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충격 흡수 고무매트와 운동기구들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러닝머신은 기본이고 △벤치프레스 △체스트 프레스 △시티드 케이블 로우 △케이블 프레스다운 등 각종 머신과 아령이 비치돼 민간 헬스장 부럽지 않은 모습이었다.
장병들은 새 체력단련실이 생긴 이후 이용자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노후 시설을 새롭게 개선하면서 운동을 해야겠다는 동기 부여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대대 3중대장(대위)은 "과거 체단실에서는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와이어를 당기면서 스스로 안전 걱정을 했었는데, 이제는 용사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어 체력 증진에 장기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용사들이 부위별로 운동하기 위해 기구와 머신을 어떻게 배치할지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했고 실제 반영되면서 체력단련에 참여하는 인원도 많아졌다. 체력 단련을 할 동기가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D 일병은 "과거 체단실은 햇볕이 잘 안 들고 곰팡내와 땀 냄새가 뒤섞여 있었고, 낡은 기구가 많아 '쇳독 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면서 "지금은 좋은 새 기구들이 많이 들어왔고 훨씬 쾌적해서 일주일에 6회, 거의 매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육군은 2040년까지 상비 병력의 간부 비율을 47%에서 63%로 높이고 대대급 부대를 통폐합하는 등 군 구조 개편 상황을 고려해 공간력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기자가 방문한 부대에는 우선적으로 간부 비율이 늘어나는 미래 상황을 선제적으로 반영해 간부연구실을 리모델링했다.
과거 간부연구실은 개인 자리에 컴퓨터 1대를 두고 관물대들을 안쪽에 몰아놓은 방식이었다. 각종 훈련 교보재가 어지럽게 바닥과 책상 위에 놓여 있고, 각종 서류와 개인 짐들이 좁은 공간에 뒤엉켜 좀처럼 간부들이 '연구'를 할 수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통상 중대 간부가 약 30명 내외인데 앞으로 40명 이상 배치될 것을 감안해 간부연구실을 세 배 이상 키우고 연구 및 회의 공간과 간부 탈의 및 개인 물자 보관 장소를 구분해 업무 효율을 높였다.
3중대장은 "관물대는 별도의 방으로 몰아넣고, 넓은 공간에 개인 책상과 회의 테이블, PC가 개별적으로 마련됐다"면서 "중대 간부들끼리 결산 회의나 협조 토의를 할 환경이 마련됐고 개인 장구류 보관 및 환복 장소가 업무 공간과 분리돼 누군가 업무 중일 때 그 옆에서 옷을 갈아입는 상황이 해소돼 일에 보다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대대 지휘통제실에는 여러 영상 모니터를 조립해 하나의 벽처럼 만든 비디오월(Video Wall)을 설치해 각종 작전 상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야간에는 폐쇄회로(CC)TV와 위병소 원격 개폐 장치를 활용해 장병들의 야간 근무 부담을 줄이고 있다.
육군본부는 올해까지 진행한 시범사업 추진 성과를 평가해 전투력 창출에 효과적인 공간과 기능별 표준 모델을 정하고, 이를 모듈화해 향후 추가될 시범사업 부대들에 적용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인 장병들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기존 원칙을 지키면서 기술 발전 양상과 작전환경 변화 등도 고려해 각 부대의 실정에 맞게 맞춤형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goldenseagul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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