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투자 첫발 뗀 한미…핵잠·원자력 협력·전작권 논의 재점화도 기대
韓, 투자 약속 이행하며 美의 불만 관리…워싱턴 후속 협의 주목
트럼프, 미확정 원전·LNG 투자도 발표…추가 협상 변수
- 한상희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한미가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의 첫 사업을 공식 발표하면서, 석 달 넘게 멈춰 선 핵추진잠수함(핵잠) 도입과 원자력 협정 개정을 위한 한미의 '안보협의'에도 다시 속도를 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정부가 올해 안에 '목표 연도'를 설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논의의 활성화 여부도 1일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은 그간 한국의 대미 투자 지연을 다른 현안과 연계해 사실상 대부분의 외교·안보 현안 논의를 미뤄왔다. 이제 가장 큰 장애물을 치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에서, 미국도 '성의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할 시점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간 최종 합의가 되지 않은 원전·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까지 '합의된' 내용으로 언급하면서 이 사안이 한미 간 향후 협의의 불씨가 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30일 백악관에서 "한국 정부가 최대 2000억 달러를 들여 텍사스에 6기가와트급 발전 시설 등을 건설한다"는 등 한국의 대미 투자 첫 사업을 공식 발표했다.
1호 사업은 약 223억 달러 규모의 미국 텍사스주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다. 당초 지난달 18~20일쯤 공식 발표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막판 협상과 미국 측 내부 절차 등을 거치며 약 2주 늦게 공식 발표됐다.
대미 투자 문제는 올해 한미 간 최대 현안이었다. 미국은 한국의 투자 결정이 너무 늦다면서 정부가 원하는 핵잠·원자력 협정 개정을 위한 실무협의를 사실상 보이콧 해왔다. 그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발표와 함께 막혔던 안보협의에도 숨통이 트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실제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핵잠 도입과 원자력 협력, 조선 협력, 전작권 전환 등 한미 현안 관련 분야의 협력을 심화하고 후속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당시 대미 투자 문제가 안보협의의 진전을 가로막은 가장 큰 요인이었다며, 투자 논의가 진전된 만큼 안보협의를 복원할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 진전을 위해 후속 협의를 워싱턴 D.C.에서 갖기로 했다. 가급적 빨리하려고 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핵잠·원자력 협력은 지난해 정상 간 합의에도 실무 논의가 지연돼 왔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공동 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에서 미국은 한국의 핵잠 건조를 승인하고 핵연료 조달 방안 등을 협의하기로 했다. 미국 법의 요건에 부합하는 범위에서 평화적 목적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올해 1월 개최하기로 한 첫 실무협의는 6월에야 서울에서 열렸다. 이후 매달 협의를 갖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미국 측이 호응하지 않으면서 석 달 넘게 후속 논의가 지연됐다.
정상 차원의 합의에 이어 첫 투자 사업까지 발표된 만큼, 이제는 후속 협의의 일정 확정 등 실질적인 진전으로 이어질지가 관건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대미 투자 진전이 한미관계의 분위기를 좋게 하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라며 "한미 관계 전반의 현안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도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통상과 안보 현안이 패키지로 논의된 만큼 투자 진전이 핵잠·원자력 협력을 위한 협의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보 현안 가운데 정부가 임기 내 전환을 추진하는 전작권은 한미 국방 당국 간 별도 채널에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한미는 지난달 16~18일 부산에서 열린 제29차 한미 통합국방협의체(KIDD)에서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에 대한 그간의 노력을 평가하고,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지난달 19일 엘브리지 콜비 미국 전쟁부 정책차관과 만나 전작권 전환을 조속히 마무리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22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작권 전환 문제를 정상 차원에서 처음으로 직접 제기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조건 충족과 함께 조속한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설명하고 이를 위한 고위급 협의도 제안했다.
다만 미국은 전환 '조건' 충족에, 우리 정부는 '속도'에 방점을 찍고 있어 온도 차는 여전하다. 실제 속도를 가늠할 무대는 오는 11월 제58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가 될 전망이다. 정부는 이때 전작권 전환의 '목표 연도'를 정한다는 방침이었다. 미국이 이에 호응할지가 관건이다.
변수는 후속 투자 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텍사스 발전소와 함께 "한국이 대형 원자력 발전소 8기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파이프라인도 한국의 대미 투자에 포함된다"라고 밝혔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원전 8기에 1200억 달러, 알래스카 LNG에 500억 달러 이상이 투입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아직 한미 간 실무 협상이 진행 중인 사항으로, 완전히 합의가 된 내용이 아니다. 미국이 이를 선제적으로 '합의 사항'으로 발표한 것은 한국에 대한 압박 혹은 11월 중간선거(상·하원 선거)를 앞둔 성과 과시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만일 미국이 한국의 빠른 추가 투자를 압박하고 나선다면, 안보협의 문제가 다시 대미 투자와 연계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미국의 의중을 확실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민정훈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가 "중간선거를 앞두고 투자 유치를 정치적 성과로 내세우려는 국내 정치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동시에 미국이 세 사업을 모두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도 풀이했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했다고 우리가 따라가야 될 이유는 없는 것"이라며 추가 협의를 통해 구체적 사업 내용과 조건을 조정할 여지가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외교가에서는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로 투자 문제가 안보협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완전히 제거되진 않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후속 투자 협상이 길어지면 거래주의적 성향이 강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다시 다른 한미 간 현안과 연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그 때문에 후속 협의 과정에서 안보 관련 사안과의 연계를 막기 위한 논의를 병행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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